12월 15일 새벽예배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 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행 5:7~11)
녹취자: 전인현
잠시 후에 이제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삽비라가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돌아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어본 것이 그것입니다. “이 땅 한 개가 다냐?” 그랬더니 아내가 즉시 “그렇습니다. 이것이 다입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너희가 둘이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성령을 속이느냐”하니까 그냥 떠나갑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죽어라 말하라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 이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이냐면 모든 범죄가 생각 없이 짓는 경우는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은 드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지었는데 그것이 죄일 경우에는 우리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경우에 따라서는 좀 적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그토록 양심이 부패해서 선악에 대한 판단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그냥 짐승처럼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경우에는 제외하고 신자들의 경우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를 동일하게 보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발적으로 어느 한 순간에 저지른 그런 죄, 어떤 죄든지 간에 생각을 안 하고 저지른 죄는 없지만 그러나 그렇게 우발적으로 지은 죄는 면밀하게 계획하고 또 궁리하고 해서 그러한 치밀한 범죄의 실행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죄와 하나님께서 똑같이 보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여기에는 어떤 죄를 짓고자 하는 강한 욕구, 그 욕구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정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워낙 클 경우에는 그렇게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서 많은 궁리를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정욕은 불과 같습니다. 탈수 있는 것은 모두 태우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어도 탈 수 없는 것은 못 태우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못 태우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모두 태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욕이 강해지게 되면 생각을 많이 하고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욕구가 워낙 강하니까 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범죄를 계획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범죄는 구약에서는 제사를 통해서도 용서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람들이 지은 죄의 심각성은 단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안 지켰다 정도가 아니라 아주 둘이서 꼼꼼하게 계획을 하고 모의하고 장시간동안 계획을 해서 실행된 범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질적으로 아주 굉장히 의도적이고 계획된 면밀주도하게 이루어진 그런 합의적인 범의,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악하고 나쁜 것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당시에는 강력한 성령의 부흥이 온 교회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살아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셔야 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범죄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강림과 함께 부흥의 역사가 이어지는 이 교회의 순결에 대한 최초의 도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핍박도 오고 사도들이 끌려가서 시련도 당하고 하는 것들이 오지만 이건 모두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세상으로부터 정말 흐르는 강물처럼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끊임없이 바꿀 수 있어야 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갱신되지 않으면 그것도 사실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그 핍박 속에도 기뻐하는 수많은 지체들을 만들어내고 그러면서도 세상에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단 말입니다. 강력하게 흘러가면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력한 힘이 있는데도 이 교회 안에서는 이 교회의 순교를 위협하는 이런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해서 참으로 교회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끊임없는 능력을 하나님 앞에 구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되지만 동시에 무서운 힘으로 자기 자신을 갱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의 삶을 보면 너무 잘 알게 됩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은혜를 받고 나면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사명을 감당해 나갑니다.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데 일하면 항상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 성령의 충만한 말씀의 은혜 이런 것들이 가득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결국은 무엇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까? 겉으로 늘 사랑하는 것보다는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이 이미 벌써 17세기 때 사람인데 항창 청교도의 전성기였고 끝물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전성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논문 속에서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가 참된 신자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의 저와 분투하며 복음적인 참된 죄 죽임에 헌신하는 이 전통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라고 한탄합니다.
그 길이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무엇이냐면 이런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정말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도 정말 흐르는 강물처럼 주님을 진정으로 섬기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성경에서도 이렇게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이었고 이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의 불길을 끄고자 하는 사단의 괴계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강력한 성령의 이 부흥의 역사를 꺼버리고자 하는 사단의 중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엄단하셔서 그래서 교회를 다시 정결케 하시고 그랬더니 다시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향후 십년동안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세상을 섬기면서 산다 그러지만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자체 즉 교회 자신이 순전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올곧은 가운데 마음을 드리는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 그 앞에서의 말하자면 공동체적인 참회와 깨어짐 그 속에서 그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실한 헌신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교회의 사명이 막중하고 또 기능이 이처럼 다기화되어가는 때에는 보다 철저한 내적인 갱신과 합리적인 것들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고강도의 쇄신이 교회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게 될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해서 흘러갈 수 있는 강물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에 흐르는 강물처럼 사는 그 교회의 섬김과 삶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바와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리라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 그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은혜 받은 삶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순전하지 않고 그리고 쇄신되지 않은 교회 속에 어떻게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까?
사람은 일하고 모이지만 사람들끼리 그렇게 움직이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변화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