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새벽예배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행 5:12~13)
녹취자 : 한지인
어제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이 정리되고 나니까 다시 강력한 은혜의 복음이 선포되고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올바르게 하려고 해도 교회가 순결하지 않으면 이런 영적인 능력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은 교회 전체가 순결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들이 제대로 알면 개인적인 삶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아는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니까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개인의 신앙인 동시에 교회 전체에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많은 교회들이 있어도, 또 한교회가 그렇게 오래도록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 땅에 존재해도 이런 강력한 복음과 하나님 능력의 역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주고 은혜를 끼쳐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때가 매우 적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그런 면에서 정말 슬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예수믿고 변화되었더라고 하면 소문이 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누가 교회에 몇 달이나 나왔는데 변화가 되지 않았더라.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나.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보면, 결국은 피곤하도록 많이 일하고 애쓰지만 열매가 너무 적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토할 것 같이 힘이 드는데 열매가 너무 적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취에 감탄할지 모르지만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 휘어져서 추수하게 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내부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교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고 토할 것 같이 매일 애를 쓰는데 열매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순결의 문제가 이렇게 중요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틀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지만, 신앙이 어린사람들이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하실 필요가 있을까 참 무섭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왜 하나님이 교회를 순전하게 다루고 싶어 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찬양)
정결한 맘 그곳에서 신령한 빛 비취오니 그보다 더 원하는 것 정결한 맘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 그 속에 신령한 빛이 비취는 것이지 정결한 마음이 없는 곳에는 신령한 빛이 비취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것은 큰 희생이 덜 따릅니다. 그러나 순결해지는 것은 완전히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 자신이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순결이라는 것은 결국은 교회가, 개인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순결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순결함으로 가득차게 될 때에 비로소 주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신령한 능력과 은혜 이런 것들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시고 나니까 표적과 기사가 계속 행해지게 됩니다. 잠시 멈추었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말 사모하고 그리워해야 될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문제는 좀 더 보편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제도 새신자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고받으면서 정말 몇 사람들의 가슴속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 완전 불신자였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기뻐하는 것. 그것이 몇 사람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있었기 떄문에 교회가 이만큼 성장해 왔습니다. 그것 말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순결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났더니 그 다음에 다시 복음이 전파되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한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한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한마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품게 해주시는 한마음입니다. 그 한마음은 각 사람이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는 데서 오는 공통된 한마음입니다. 그들은 각각 섬기는 일도 달랐을 것이고, 신앙의 기질도 달랐을 것이고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반응하는 구체적인 삶의 적용도 달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고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사회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야지 누군가의 억압에 의해서 모두 같은 의견을 내게 되면 사회가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서 갖게 되는 한마음은 그런 억압 속에서 나오는 한마음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더욱 하나되려고 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추구하려고 할 때에 한마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마음을 찾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셔서 이 위대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마음을 품게 된 것은 결국은 각각의 사람이 달라도 하나님을 찾는 데는 하나가 되어서 한마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다시 순결하게 하신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세 번째는 모인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순결하게 만드시고 은혜를 부어주시니까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도 모였지만, 다시 새롭게 한마음이 되어서 모이게 됩니다. 교회가 모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의 역량을 이야기할 때에 어떤 필요가 있어서 사람들을 모았는데 얼마나 모으느냐를 보고,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에 끈 없이 물건을 포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끈이 있어야지만 물건을 단단히 매어 들 수 있지만, 끈 없이 사람크기 만한 물건을 들려고 할 때에 가벼운 물건이라 해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끈이 단단히 묶여 있다면 들 수 있고 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일을 한마음이 되니까 성도들이 모두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순결하게 하셨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날도 바로 이런 일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이 정결해지고 교회가 순결해진 가운데 자기 자신이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넘쳐서 한마음을 품고 모이기에 힘쓰는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중요합니다. 이것은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성도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모이는 것은 성도의 거룩한 특권이고 큰 의무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백성들이 사람들을 칭송하였습니다. 두려워서 상종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은 무서웠다는 것보다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영적으로 강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결단을 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에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큰 두려움이 임하게 하여 주위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떨었던 것처럼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에 부흥이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보면서 믿는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런 두려움이 생겨난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기는 굉장히 어려웠지만 그들을 칭찬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칭찬했겠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것을 보고 칭찬했겠습니까. 아니면 열심히 모이는 것을 보고 칭찬했겠습니까. 아니면 열렬하고 뜨거운 기도회를 보고 칭찬했겠습니까. 그것은 도덕적인 삶입니다. 그들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이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흘러나오는 거룩한 삶, 거룩한 생활, 거기로부터 흘러나오는 도덕적인 삶.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을 행하는 이타적인 삶을 보면서 사람들이 칭송하게 된 것입니다. 한사람에게 임한 놀라운 은혜는 항상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며 살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강한 순종하는 힘과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고, 믿음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날마다 가게 하시는 것이 교회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분투하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충성스럽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을 직접 섬기지만 혼자 섬기지 아니하고 교회를 통해서 섬겨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잘하면, 그로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것이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칭찬과 축복의 몫이 됩니다. 교회가 시험에 드는 때는 성도들의 온 삶이 시험에 듭니다. 저는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큰 축복 안에 있으면 성도들의 삶이 그렇게 됩니다. 때론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