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턴십 MT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녹취자: 원수연
10주 동안 우리들이 공부를 했는데 가르치는 저의 입장에서 보면, 가르쳐야 될 내용이 산 같다고 한다면 그냥 한번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서 이렇게 능선을 바라보는 것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매주 만날 수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여기에 에스라가 그 답을 우리에게 줍니다.
아시다시피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달했을 때 정치적으로 상황이 그렇게 만만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올 때 아하와 강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금식기도 하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도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결심한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율례를 연구하자.’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한다고 해서 모두 진실한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식이 없이 진실해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실력이 없으면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자신을 과장하게 되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힘써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남이 자기를 연구시켜주기를 바라며 공부하라고 하면 자꾸 학교를 가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60, 70살이 될 때까지 학교를 다닐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항상 무엇을 공부하든지 마지막의 결론은 성경을 성경답게 풀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공부가 그렇게 사용되어야 됩니다. 그게 제일 먼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해야 됩니다. 남이 쉴 때 나도 쉬고 싶고, 남이 제주도 가면 나도 가고 싶고, 남이 맛있는 거 먹으면 나도 그러고 싶고, 사람 마음이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사명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꾸 달란트라고 그러는데 달란트를 이야기하려면 우리나라에서 몇 명되는 학자를 이야기해야지 달란트지 그게 아닙니다. 전도에 크게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있지만 달란트를 받은 사람만 전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명은 자기에게 재능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그것은 해야 할 일입니다. 가장이라면 식구를 먹여 살려야 됩니다. 돈을 잘 버는 재능을 가진 가장도 있고 무능한 가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장이라면 아침이 되면 돈 벌러 나가야됩니다. 장가를 들지 말던지. 그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탐구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일 년 전의 나보다, 이 년 전의 나보다 나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준행하여’ 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면 남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에스라는 ‘준행하여’ 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준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말씀을 잘 지키면서 사는 것입니다.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려면 잘 먹어야 됩니다. 자기가 먹고 소화 시켜서 젖을 줌으로써 아이를 기르는 것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하다 보면 자신에게 적용이 됩니다. 배운 지식을 가르칠 때는 입술에 침만 바르면 되지만 그대로 살려면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피가 나야 됩니다. 그러니 지식도 없고 준행하려는 신앙도 없을 때 가르치는 재료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첫 번째가 ‘배우라’, 두 번째가 ‘살라’ 입니다. 살아내야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여기에 보면 율례와 규례란 말이 나옵니다. 이에 대한 해석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례는 제사에 관한 규칙이고, 규례는 생활에 관한 세부적인 규칙이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율법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지만 율례와 규례는 그것을 세밀화 한 것이다, 어거스틴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을 믿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런 지식들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이냐면 율법을 연구하고, 그 다음에 그 율법의 말씀대로 잘 살고, 그 다음에 그것을 구체화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화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획일적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학문이요, 준행하며 사는 것이 신앙이라고 한다면 율례와 규례를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실천을 신학화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도 성경을 연구하고 학문을 통해서도 성경을 연구하는데, 그것을 자기가 살고 그것을 교리화하고 이론화할 때, 이렇게 신앙의 결과들을 이성과 모든 것을 사용해서 논리를 세워 하나님의 말씀에 전문가가 되면 교인들도 잘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 율법의 정신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에스라가 결심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와서 비로소 결심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가 평소에 행하던 것인데 예루살렘에 와서 특별히 자기가 원래 가졌던 이런 결심으로 돌아가기로 다짐했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세 가지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학문, 신앙, 적용-실천하는 적용.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식과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해서 올바른 지식을 통한 진리의 빛, 올바른 생활을 통한 윤리의 빛이 교회에 가득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을 위해서 깊이 헌신하고 진심으로 주님의 교회의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