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새벽예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녹취자 : 김세나
결국 11장에서 그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증거를 받았지만, 아직 약속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야기 했던 그 이유가 무엇때문인지는 12장에서 이제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증거는 받았지만, 약속은 못 받은 사람이로되, 우리는, 우리는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래서 그들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믿음생활했지만, 이제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믿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제 여기에 보면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랬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가 되시는가. 믿음의 주가 되시는가. 우선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의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이 일생을 사시는 동안에 믿음으로 사셨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죠. 이렇게 죄가 많고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에수님이 예수님이 사셨던 이 지상에서의 생애에서 보여줍니다. 연약한 육체를 가진 우리 인간이 얼마만큼까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인가, 예수님의 이 지상생애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진정으로 믿음을 가진 삶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것을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라는 것이죠. 그러한 점에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시다 부를 수 있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그 분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음의 주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을 떠난 인간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불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게 하셨죠. 그렇게 우리의 죄 값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지불하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가 그 구원의 사건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덕을 입히게 되는 구 비결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들이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또 아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 이런 이야기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음의 주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것들은 이미 예수님이 계시던 때에도 잘 나타났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상황 가운데 오셔서 그것들을 해결해 주시면서 예수님이 즐겨 하시던 말씀이 네 믿음이 크도다. 믿음이 크도다. 그리고 저의 믿음이 저를 이렇게 이렇게 구원하셨느니라. 예수님이 그 사람들을 향하여 최고의 칭찬의 말씀이 바로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역사하였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 하나님 앞에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그 최고의 아름다운 결단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의뢰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신뢰,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라고 하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의탁, 이것이 바로 이제 신약에 와서 가장 중요한 그 우리의 신앙의 의무가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시다 라고 하는 것을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우리가 왜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믿음으로 살수 있는가를 배우게 되고, 또 보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이제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이게 무슨 뜻일까.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 앞에 보면 온전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나오죠.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며,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우리의 온전하지 못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덕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예수님을 온전히 의뢰하게 되면, 그러면 그 온전한 의뢰 안에는 반드시 그 안에 이 그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도 포함해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들에게 주어진 그 구원 사건을 받아들일 때, 그 때에 우리는 어떠한 효과를 보게 되냐 하면 점점 더 온전해져 가는 거예요. 그래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그리고 인내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나고 그래서 점점 완전하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이 점점 변해 가는 거예요. 예전에는 한쪽에는 세상에 한 발을 담그고, 또 한발은 교회에 담그고,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다가 믿음의 주를 온전히 바라보면서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탁하게 될 때, 의뢰하게 될 때, 그 때에 죄와 여러 가지 것들로 불완전하던 인간들의 신자의 삶이 온전해지게 된다라고 하는 거죠.
(예화) 여러분들은 그 나다니엘 호오든의 큰 바위의 얼굴이라는 유명한 소설을 모두 읽으셨을 거예요. 동네에 큰 바위가 있는데, 누가 깎아 놓은 것이 아닌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의 모습이 말이죠. 그 인자한 사람처럼 생겼어요. 그 동네에 전설이 내려왔어요. 동네에서 저러한 인자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그 한 소년도 그것을 보면서 계속 자라죠. 세월이 지나면서 아, 저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이다. 그래도 뭐 전쟁터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군인도 왔고, 돈을 많이 번 부자도 왔어요. 그런데 이제 소년도 점점점점 자라서 이렇게 왔는데 아니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왔는데 아니에요. 그러면서 세월이 점점점점 흐르면서 이 아이는 생각한 거죠. 아 언제쯤 내가 저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갔어요.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아요. 어느 날 석양이 늬엇 늬엇 지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 빛을 받으며 서있는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소년을 보면서 야, 여기 있다. 이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 똑같구나.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거예요. 그 바라보는 것을 닮아 가는 거예요. 바라보는 것을 닮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엇을 바라보면서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바라보는 것을 닮아가는 거죠. 그래서 오늘 성경이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닮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온전해지는 사람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믿음의 주시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죠.
이렇게 되어서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 하잖아요. 맨날 믿는다고 하면서 말이지. 인격도 안 변하고 사람도 안 변하고 어떻게 맨날 믿습니다만 하면서 안 변하냐 그러는데 사실은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믿기만 하고 다른 것은 변화가 되지 않는다. 그런 믿음일 수가 없다는 것이죠. 보십시오. 이 그런 게 아니다 하는 거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빠져도 그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그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데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예화) 제가 아는 분이 회사를 하는데 여직원들이 많은데 어느 해 직원들을 채용을 하는데 하여튼 못생긴 여직원들만 채용을 했어요. 그게 참 그렇잖아요. 다른 회사들은 전부다 보거든요. 어느 회사는 보면요, 체중하고 키하고 해서 전부다 제품 찍어낸 것처럼 사람들을 다 맞췄어요. 유니폼이고 이런 것들이고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도 입는 사람이 그게 모양이 안 나는데 그렇겠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머리 모양까지 쭉 해서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이 사람은 왜 쌀자루 같은 여직원 그 다음에 짤막한 여직원, 그리고 어깨 딱 벌어진 여직원 뭐 이렇게 해 가지고 못생긴 사람만 뽑았냐. 자기도 한 때는 이렇게 뽑았다는 거예요. 왜, 회사도 좋고 월급 많이 주고 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줄 섰는데 그렇잖아요. 예쁜 여직원들을 뽑아 놨는데 이게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는 거예요. 맨날 어디에서 오든지 남자한테 전화가 와가지고 전화통에 불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니까 딱 6시 되면, 5시 40분부터 보따리 싸가지고 기다리다가 5시 땡 하면 튀어 나가요. 이제 못 생긴 여자 직원들만 잔뜩 뽑아 놓으니까 회사 밖에 없는 거야. 전화 올 데도 없고 무슨 전화할 데도 없고 야, 저녁 때 되면 집에 가라고 해도 자장면 시켜놓고 일하고 그냥 너무 열심인 거예요. 그게 뭐 참 그것 뭐 얼굴 좀 예쁘다고 들여다보고 마음은 콩 밭에 가있는 사람들 보다도 보기는 좀 그래도 늘 자장면 시켜놓고 일하고 그런 사람이 더 좋다 이거죠. 책임감이 강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일 좀 시키려고 하면 말이죠. 어느 녀석이 와 가지고 탁 채가지고 시집 가 버리는 거예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만 사랑해도 인생이 바뀌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보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예수님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고 믿음과 상관없는 삶이라고 할 것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반드시 우리의 삶이 온전해 집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 묵상집을 만들어서 여러분들을 한 권씩 다 갖게 했잖아요. 사랑은 생각하는 거예요. 생각을 많이 하면 변해요. 세상 생각 많이 하면 세상처럼 얍삽한 인간으로 변하고, 하나님 생각 많이 하면 하나님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어 가는 거예요. 예수님의 생애를 많이 생각하면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게 신앙이에요. 그게 믿음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