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충성 된 종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맡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 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을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마 25:23-27).
우리가 읽은 이 달란트의 비유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비유지만 사실 오랜 세월 읽어도 이 안에서는 진리가 참 끝없이 나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오늘 신년 예배 때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주인이 먼 나라에 가면서 세 조에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두 달란트를 맡은 종은 잘 그것을 활용해서 두 달란트를 다시 남겼습니다. 여기를 보니까 이 사람이 행한 것에 대한 주인의 평가가 셋으로 나옵니다. “잘 하였도다.”라고 하는 것이 먼저 입니다. 이것은 일이 이뤄진 어떤 결과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인 앞에 이 사람이 일을 잘 했단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도 주님의 종으로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으니까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 일을 하는 것과 우리의 본성의 변화는 아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회심하고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다가 소명을 받게 되었는데 목회자로써의 소명을 받기전에 누구든지 영적인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 영혼의 깊은 변화를 섬기다가 받게되었습니다. 그 섬기다가 받게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면…..
(예화) 24살 집사직분 시절 책임자로 여름성경학교를 섬기게 된 일과 놀라운 부흥의 경험
그때 난 그걸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할 때에 잘 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본성과 영혼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은행에서 오랫동안 근무 하던분 퇴근할 때엔 일원까지 맞아야지만 금고 문을 닫고 그리고 굳게 닫아 놓았던 사무실 문을 열고 전직원이 겨우 퇴근 해야 하는 그런 금융인들, 은행원들 있죠. 이런 생활을 오래 하면 그 사람 성격이 변할까요? 안 변할까요? 변하죠. 꼼꼼하고 틀림없는 사람으로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뭐가 그렇게 만들죠? 일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맡겨주신 일을 대충대충 설렁설렁 노골적으로 설렁설렁은 아니지만 그냥 뭐 그렇게 까지 완벽을 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그냥 해나간다면 우리도 그냥 그런 사람이 됩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사역을 할 때에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심령을 짜서 바치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없다면 밤을 세워서 기도를 하고 그리고 금식을 하면서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 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사람의 마음은 잘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화) 1997년도 폐기처분 된 1만 권의 책
무엇 때문이죠? 잘 하려고 하면 때론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희생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역을 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들의 인간성도 드러나고 사역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영혼의 상태도 알 수 있고 여러분들의 손에서 이뤄지는 일들의 결과를 보면 여러분들의 인생의 미래가 보입니다.
‘행정직원이긴 하지만 저 사람은 우리 교회를 떠나 어디를 가던지 그 직장에서 참 환영을 받겠다. 지금은 하나님의 사명을 주셔서 교회에 있지만 어디를 가던지 어느 회사에서든지 참 좋아하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회니까 있지 아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회사에 들어가면 잠간을 같이 근무할 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버림받겠구나’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인가 하면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 그 사람의 존재와 이렇게 관련이 되는 거죠. 사물의 작용과 기능, 습관, 경향성 이 모든 것들은 그 사물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 원천이라면 작용과 기능은 그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죽부대에 술을 담았으면 구멍이 떨어져서 샐 때에 술이 새지 물이 새지 않습니다. 참기름 병이 떨어져서 기울이면 그래도 한 방울이 떨어져도 참기름이 떨어지지 콩기름이 떨어지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잘 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거꾸로 잘 하면 잘 하려고 애를 쓰면 그렇게 잘하는 가운데 그 사람이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주인이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일이 잘 하였도다. 이렇게 칭찬을 해준 것입니다.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잘 하여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끝없는 도전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내 밖에 잘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이제 발견이 되기 때문이죠. 자기 안에 잘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자기 주위에도 잘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그 속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러면 이제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투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사람이 변해 가는 것입니다. 덜렁덜렁 대던 사람이 꼼꼼해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무걸호인처럼 살아가던 사람이 예리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고 그렇게 변해 가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하면 한참 그 일을 하고 난 다음에 망가진 하나님의 일 그 다음에 고장 나버린 자기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하는 사람이면 마지막에 완성된 하나님의 일 그리고 아름답게 가꿔진 영혼 이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잘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잘하는 방법만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도 일이니까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 자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되겠죠. 그러니까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배우기를 더디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뒤로 퇴보합니다.
중국이 문을 연 현대개방의 역사를 보면 말이죠. 불란서를 비롯한 열방에서 부터 와서 통상에 문을 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위협을 느끼게 되니까 이제 와서 황제에게 ‘이 불란서 사람들이 통상을 요구하면서 저렇게 군함을 끌고 와서 우리들에게 시비를 겁니다.’ 황제라는 인물이 하는 이야기가 ‘ 그놈의 대장의 이름이 뭐냐? 당장 잡아서 대령하거라’ 어떻게 대령을 합니까? 블란서 함대가 쏘는 대포는 육지까지 날아오는데 육지에서 쏘는 대포는 그 함대에 까지 미치지를 않아요. 자신들이 온 세계에 중심인 것처럼 으스대 다가 현대의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일에 뒤쳐진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잘하려고 하면 그 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한 지식을 잘 배워야 합니다. 하다못해 이 바닥하나를 청소하려고 해도 이 바닥의 재질과 특성 그리고 물기와 이 바닥과의 관계 같은 것들을 이해를 해야지만 걸레질이라도 하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물에 대한 이치를 계속 배워야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이미 벌써 그 일을 잘 할 의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묻지 않습니까? ‘자네가 하고 있는 일이 뭔가?’ ‘유년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네가 가장 본받고 싶은 사역자가 우리나라에서 누구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둘에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배울만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없는 독보적인 사역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이거나 자기 사역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없이 자기만족 또는 자기포기에 빠져서 하루하루 연명해 나가는 사역자..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주 쓸모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에 그렇게 한 20년 정도의 삶을 살고 나면 그 사람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덕성과 인격과 신앙 그 자체에 있어서도 아주 사람들의 발에 밟힐 정도로 하위의 사람이 됩니다. ‘자네가 맡고 있는 일이 뭔가?’ ‘예 제가 맡고 있는 일은 이 교회를 관리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교회관리의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교회는 어디인가?’ ‘모르겠습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시시해서 배울 것이 없어서 신기원을 열어가는 사람이던가 아니면 그냥 급사의 정신으로 매일매일 마당을 쓸고 물을 푸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에는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미 인성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일터에는 아무것도 정리된 게 없고 그런 사람들의 사역지에는 아무것도 매듭이 지어지는 일이 없고 그런 진취적인 기상이 없는 사역자와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주 우울한 마음으로 12월 31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지도자와 헤어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면 한 인간으로 이세상에 태어나서 그 얼마나 비참한 것이겠습니까? 내가 어떤 것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평범하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할 때 없습니까? 저는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 영화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입니다.
(예화) 아마데우스 영화의 마지막 사리데우스의 대사
저는 제가 가장 싫을 떄 중의 하나가 나는 뭐하나 특별한 데가 없을까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할까 진짜 내자신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도록 부름을 받았으니까 탁월한 사람으로 1년을 살다가 죽고 싶어요. 1년을 살아도 지성이면 지성에 있어서 덕성이면 덕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한 재능이면 재능에 있어서 불꽃처럼 확 일어나서 살다가 잘 했다 그리고 죽어야 하잖아요. 근데 이게 뭐냐 이 얘기죠. 얼마나 시시하고 향기가 없냐 이겁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잘 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을 때에는 죽은 사람이예요. 정신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지식을 잘 터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슨 사역을 하고 있으면 여러분들의 멘토를 찾는게 중요한 것입니다. ‘초등부 사역에 있어서는 내가 누구를 본받고 싶다. ’ 산 사람들 중에 없으면 죽은 시체 가운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러던지.. 독보적인 길을 가던지..
(예화) 수학 포엔카레의 가설과 난제를 푼 30대의 소련남자
(예화) 클린턴 앞에서 대담성을 보인 백남준 작가
일에 대해서 전심을 다해 배워야 합니다. 거기에서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해 전 마틴루터의 전기를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예화) 마틴루터의 주해 능력의 원천
일 자체에 대해서 사역 자체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오늘 성경에 다 나옵니다. 주인이 와서 한 달란트 맡은 종에게는 심하게 책망을 하면서 두 가지를 지적했어요.
‘이걸 이렇게 했느냐? 차라리 그러면 은행에다 맡겨서 이자라도 받게 하지 왜 이랬느냐’ 그건 뭐죠? 일에 대한 지혜를 추구하지 않은 거죠 이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또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주인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성품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이렇게 주인에 대한 이해 자체가 앞에 있는 종들과는 전혀 틀렸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사역을 잘 하려면 잘 들으세요. 일만 배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워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교회의 행정실에서 안내를 본다면 도대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와서 우리를 괴롭히는데 그렇게 끊임없이 상냥한 태도로 안내하는 교회는 어디인가 올 초에 각실을 돌면서 물어보려 합니다. 어디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하나 그것도 배워야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우면 그 일을 잘 하게 되요. 교회를 청소하는 것도 하나님을 배워가게 되면 청소 더 잘하게 되요. 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조국교회의 한 모퉁이를 섬기고 있는데도 나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이시구나 그리고 그 예수님이 바로 내가 이렇게 쓸고 청소하는 이 교회에 속한 지체들이 영적인 연합의 머리 이시구나. 그렇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회전의자에 앉아 계시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내가 지금 섬기는 이교회의 머리이시구나 를 깨닫게 될 때에 빗자루 들고 마당을 쓰는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걸 용서해 주십니다. 잘 하려고 했는데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데 어떡합니까? 열심히 일에 대해서 배우고 그리고 잘 하려고 하나님도 배워가는데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데 어떡하느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한 달이 지나면 아.. 주님이 이런 분 이였구나… 설교를 한번 듣고 나면 아…예수님이 이런 성품을 가지신 분 이였구나…설교시리즈 한편 끝나고 나면 아… 은혜의 세계가 이런 것 이였구나…깨닫게 될 때에 그때에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 정신 이 모든 것들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잘 하는 사람들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충성스러워야 됩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다 저녁 고요한 시간에 다리 뻗고 기대어서 따뜻한 방에 누워서 티브이 보는 게 좋지 추운 밤길을 걸어와서 차가운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몸이 찌뿌드듯하고 힘이 들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 상쾌한 아침 날아갈 것 같아’ 저의 경우에는 26, 27살에 끝났어요. 모두 다 아침에 일어나면 힘이 들고 이렇게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면 따뜻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인지상정 입니다.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게 좋아요. 근데 그것을 떨치고 일어나는 것 그게 무엇인가 하면 그게 충성 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수 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보고계시니까…그게 충성입니다. 누구나 다 쉬운 게 편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이런 편안한 일은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다 걸어가는 길이고 앞서서도 걸어갔고 나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못한 일을 나도 못할 수 밖에 없고 다른 사람이 잘 못한 일을 나도 잘 못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 못했는데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하고는 틀려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셨죠. 하나님의 아들 이셨잖아요.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능력이 무한 하셨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능력 가지고 일하셨습니까? 능력이 많으셨기 때문에 그 능력의 도움을 받아서 헌신을 세이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드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성교리를 부인하는 거죠 그런데 새벽 미명에 일어나셨죠. 깊은 밤에는 한낮의 환자들에게 시달리셨을 테니까 깊은 밤엔 주무시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한밤에 기도하셨죠. 왜 그랬을까요?
(찬양)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예화) 김성환 목사님을 보필하던 동창 목사님의 김 목사님 이야기
우리 예수님의 생애는 당신 자신의 고난을 줄이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는 생애였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다 드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액체의 생애였습니다. 땀과 눈물과 피의 생애였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의 별명이 충성입니다. ‘아멘이시오. 충성 된 증인 이시오.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의 별명은 이세상에 계실 때 아멘 이였습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헌신하라고 명하시던지 아멘…그 일이 마지막에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길이였는데도 아멘…. 하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는 죽기까지 복종하시다가 십자가에 죽으신 생애였습니다. 충성스럽게 섬기셨다는 거죠. 하나님의 부흥의 불길은 인간의 기력이 남아있는 제단 위에는 부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를 다 드려서 이제는 마지막 진액까지 다 쏟아 부었다고 느껴질 때 그때 하나님의 부흥의 능력이 부어 집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 피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죠. 천사가 와서 도왔는데 언제 도왔습니까? 예수님이 모든 기운을 다 소진하셨을 때 아버지는 천사를 보내어 도와주셨습니다. 새해를 맞이 하면서 저는 여러분들이 맡겨주신 모든 사역에 하늘의 복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 혼자 하는 것은 그냥 혼자 하는 겁니다. 그 이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피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이 부어질 때 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스치던 영혼들이 회심합니다. 변화됩니다. 회심한 영혼의 간증을 들으면서 회심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은 그 정신의 그 자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충성이 안됩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자아를 버려야 됩니다. 포기해야합니다. 자기를 다 드려서 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칭찬을 했습니다. 대개 교회에서도 충성 된 사람들은 확신이 있기 때문에 또 독선이 있죠. 그래서 대개 교회에서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게으른 일꾼들이 아니라 충성 된 사람들이 화합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정말 충성 되면 착해집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저에게 이렇게 묻고 싶겠죠? ‘그런데 목사님 우리 주위에 보면 정말 충성 되었는데 그런데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두 가지로 이야기 하고 싶어요.
첫째, 기다려라. 계속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니까 좀 기다려 보라 이겁니다.
두 번째, 여러분 눈에는 충성 되게 보이지만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충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그냥 일을 할 뿐 이지만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충성하면 그러니까 어떤 역설이 나오냐 하면 이상하게 충성 된 사람인데 기도를 못하는 겁니다. 충성 된 사람이네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힘이 많은 겁니다. 결국은 착한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왜 충성 되면 그 사람이 착해지는 지는 여러분들에게 입증해 보일수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가서 그렇죠. 한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으로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희생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이루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가 있습니다. 그 사랑의 감화가 그를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잘하는 사람의 마지막 마무리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끔 사역하다가 혈기를 부리고 심지어는 동역자들과 다투기도 하고 하는 사람들 많이 보죠? 우리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됩니다. 그러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충성 된 것이 아닙니다. 일에 대한 욕심과 탐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안됩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사역의 방향이나 영적인 깊이에 대해서는 동의가 안되어도 누구 그러면 유능했던 사람 권한이 주어지면 칼처럼 휘둘렀던 사람으로 기억되지 말고 20년 전에 나와 함께 열린 교회에서 근무하던 그 전도사? 그 착한 사람… 눈에는 언제나 기도의 눈물이 베어있고 감동을 잘 받던 착한 사람.. 그렇게 기억에 남게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섬기면 섬길수록 예수의 모습을 많이 닳아 가서 우리를 보는 사람마다 착한 예수님의 성품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금년에 이런 사람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