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에 관한 인터뷰
(진행: 유성헌 목사 / 질의자: 황규학 박사 / 답변자: 김남준 목사)
녹취자 : 오희열
질문 1) 안녕하십니까? 목사님께서는 청교도적 설교로 한국교회에 깊이 있는 신학적 목회가 뿌리를 내리는 데 많은 힘을 쏟으셨습니다. 설교자로서의 청교도들의 설교와 목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가 있습니까?
답변 1) 저는 신대원을 졸업을 하고 나서 이듬해에 주님을 깊이 만나는 영적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통해서 청교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청교도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청교도를 읽으면서 제가 처음 받았던 느낌은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와 아주 흡사한 신앙을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확고한 신념, 그리고 철저히 헌신된 삶, 이런 것들이 제게 깊이 인상적이었고 더 가슴을 울렸던 것은 그들이 심한 박해의 시기를 신앙으로 견딘 그것이, 마치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 때나 공산치하 때에 견딘 것 같은 그런 인상을 받으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질문 2) 그런 계기를 통해서 오늘날 김남준 목사님이라는 이름의 명성이 나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목사님께서는 200만권 이상의 책이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 작가시고 교회도 3000명 이상의 교인이 출석할 정도로 세상 말로 하자면 성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 이면에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청교도의 신학이라고 알고 있는데, 목사님께서는 존 오웬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존 오웬의 “죄 죽임의 교리”를 읽으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답변 2) 제가 1993년도에 교회를 개척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게 되고 교회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성장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약간 낙심한 상태에서 집에서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제 마음 속에서 “너는 왜 그렇게 낙심하고 있느냐? 내 종 존 오웬의 글을 한 번 읽어 보거라.”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 서재에 들어가서 한 6개월 전에 사 놓은 열여섯 권정도 되는 원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권을 빼 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존 오웬의 “죄 죽임의 교리”였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하루 종일 앉아서 열다섯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아주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존 오웬을 만나게 된 계기 였습니다. 60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예전에 청교도를 읽었지만 그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이었고 이 사람은 마치 에베레스트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깊은 인상을 받으면서 그때부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존 오웬의 거의 전 작품을 통독했습니다. 사실 청교도 때문에 존 오웬을 만났는데 존 오웬을 읽고 나서 청교도에 대한 흥미가 사라질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읽었던 청교도의 책들이 중학생 정도가 쓴 책이었다면 이 사람은 거의 학자가 쓴 글 같았고 확고한 신학과 철저한 경건, 주님을 만난 깊은 경험, 영혼에 대한 사랑, 격동하는 크로멜 혁명시대의 박해와 고난, 이런 것들이 모두 담겨서 펼쳐져 나오는 말씀의 세계에 깊이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청교도를 넘어서서 또 다른 세계를 보는 한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질문 3) 제가 목사님이 쓰신, 그리고 영문으로 영국에서 발표하신 “주기도문”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거기 내용에 보면 이제까지 주기도문은 관행에 의하고, 암송에 치우쳐있고 formal, 어떤 형식에만 치우쳐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living, 삶이고, 존재, there is a God, 하나님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 3) 영국에서 발표한 소논문은 제가 쓴 “주기도문”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챕터인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Our heavenly father, which is heaven.” 에서 “is”를 가지고 논문을 쓴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나님이 계시다”, “계시다” 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입니다. “be”의 뜻을 설명하면서 제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고 거기서 밝히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무신론의 매력에 끌리는 이유는 “있다”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에 컵이 있다.” 라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있다”와 “여기 우리 세 명이 모였는데 우리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라고 할 때는 주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있다”라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컵을 기준으로 “이렇게 컵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있다.” 라고 이야기하면 아무데도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전적으로 프랜시스 튜레틴 같은 신학자들은 ‘있다’는 것은 삼중적으로 나누면서 모든 사물들을 이 세 영역 안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한정적 사물이 있습니다. 둘레와 부피, 크기, 높이를 가지고 있는 이런 컵 같은 모양으로 있는 사물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장소적인 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영혼이 대표적입니다. 내 안의 내 영혼이 목사님 속에는 있지 않습니다. 영혼은 있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물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첫 번째 방식도 두 번째 방식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충만적으로 계셔서 모든 사물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만물은 어느 것도 하나님을 벗어나지 못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십니다. 무신론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이러한 “있다”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있다.” 라고 할 때 우리가 어떤 개념으로 그것을 접근해야 하는지를 강조한 것이 첫 번째 논지였습니다.
두 번째 논지는 우리가 “주기도문”에 대해서 조롱할 때 “기도”를 빼고 “주문”이라고 칭하는데 모임을 마칠 때 그냥 외우는 정도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의 의도였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코 그것은 아닙니다. 그 주기도문 속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남겨두고 가시는데 당신 자신의 세계를 포함해서 돌아가신 후에라도 당신께서 꿈꾸시던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응집되어 나온 것을 “주기도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기도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속에 풍덩 담갔다가 꺼내 놓은 것이기에 우리가 주기도문 속에 있는 피와 땀의 냄새를 함께 느끼면서 그 주기도문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 속에 투영시키면서 사는 것이 주기도문을 주신 의도라는 것을 그 논문 속에서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질문 4) 논문 내용에 보면 “There is a God.” 두 번째는 “God is alive and working.”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활동, 주기도문 안에 있는 내용을 말씀해주십시오.
답변 4) 하나님은 계신데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영향을 받고 변화된다면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A 에서 B로 변하셨는데 B가 완전하다면 A때는 모자랐다는 것이었고 A가 완전했다면 B가 되었을 때는 필요 없는 것을 가지셨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신데 이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는,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으시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부동의 자기원동자”가 되는 것입니다. Unmoved mover, 자기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계시지만 인간의 눈에서만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세계와 상관없이 계신 것 같으나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차원에서 이 모든 세계와 관계를 가지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 들에 핀 꽃 하나도 하나님이 간섭하시면서 활동하시는 증거를 보면서 우리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질문 5) 주기도문 속에서 존 오웬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신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깊이 있는 신학을 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이런 신학자들을 통해 한국 목회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나 사상적 기반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5) 우리가 그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서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맨 처음 사도행전 초기로 돌아가면 기독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입니다. 그 사상은, 그들에 익숙해진 것은 둘 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사고하는 방식과 유대인들이 사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종교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기적을 찾는 사람들이었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개와 완전히 다르게, 완전히 충격적인 세계관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의 종파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사상은, 그들도 신에 대해서 양쪽 다 생각을 했고 세계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인간이 누구인지를 고민했는데 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창으로 들여다보면서 대답을 찾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었습니다. 왜 그것이 충격이었을까요? 특히 유대인에게 말입니다. 예수가 나무에 매달려 죽은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신명기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났습니다. 그 선두에 섰던 사도 바울은 두 사건을 모두 경험한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도 보았고 살아난 예수도 만났습니다. 이 젊은 지성인을 싸고 돌았던 큰 충격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모순이 펙트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믿었던 모세 같은 사람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부활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주하셨다면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고, 다시 살리셔야 할 정도로 훌륭한 분이었다면 죽이셨을 리가 없지 않았겠느냐? 이런 속에서 신학적인 혼란을 느끼다가 한줄기의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죽음의 이유였습니다. 예수 자신의 죽음 때문이었다면 다시 살리실 필요가 없으셨겠지만 그 죽음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대속의 사실에 눈을 뜨면서 그리스도를 렌즈로 해서, 하나님이 왜 이 세계를 창조하셨고 인간이 왜 비참함 속에서 살고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셨는가 하는 것들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입니다. 그 렌즈를 파는 사람들이 복음 전도자들이었습니다. 이 렌즈를 가진 사람들마다 완전히 다른 세계관으로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래의 기독교였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기독교를 전한다는 것은 병이 나았다거나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세계를 보는 렌즈를 끼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의 말로 설명해서 끼워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말로 설명은 하지만 성령께서 역사를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딸깍! 하고 끼워지면 완전히 새로운 시야를 가지고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앞에서 제가 만났던 네 스승, 존 칼빈,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그 후에 저에게 큰 감화를 주었던 프란시스 튜래틴 같은 사람이 포함된 17세기의 개혁파 정통주의 지성사에 있었던 인물들, 이런 사람들이 가르쳐준 엄청난 신학의 세계는 이런 렌즈로 본 하나님이 너희가 보는 하나님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전개되면서 거기에서 영적인 부흥이 함께 일어나면서 교회가 영적인 번영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6) 목사님이 말씀하신 이 새로운 렌즈로, 마치 렌트겐의 역사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속성을 보기 시작한 것인데, 진짜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통해서 후학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어져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렌즈를 끼워줄 수 있는 학자들이 이 시대에 많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이 만남 속에서도 귀한 렌즈가 오늘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지성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것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답변 6) 우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사명”이라고 하면 대개 교회당을 짓고 수양관을 짓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뮬론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묘지를 짓기도 하면서 그런 식으로 교회의 사명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도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순수성의 측면에서 보면 교회는 진리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의 진리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본이 없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미 근본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이기 때문에 내가 성경을 보고 지금 내가 믿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첫째로, 성경이 원래 무슨 의미인지, 두 번째로 그 성경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참된 신앙으로 해석해왔는지를 잘 계승한 후에 오류는 거울로 삼아서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고 참된 것은 또 거울로 삼아서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발전시켜서 다음 세대에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살았으니까 우리 시대에 충실하게 유산을 남긴 다음에 그것을 후대에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명은 오류와 싸우는 것입니다. 오류에 대해서 너그러웠다면 우리의 손에 참된 신학이 전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오류는 싸우는 가운데 그 유산을 우리가 누리고 우리 후손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첫째로 교회가 이런 사명에 대해서 사명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신학자들과 이런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아주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사를 주신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후원하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열렬히 기도하고 교회의 자원을 사용해서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방금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런 것들이 약화되는 이유는 신학교육이 철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육이 철저해지기 위해서는 정말 뼛속까지 예수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학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계에서 유명한 장인이라도 소나무로 백향목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장인의 손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사람들이 신학을 해야 하고 신학교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하부의 목표들이 상부에 집중해서 실력과 영적인 경건과 목회의 기술과 인격과 옳지 않은 것과 담대히 싸울 수 있는 사람들로 훈련을 시킬 욕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질문 7) 이제까지 목사님께서 존 오웬의 개혁신학을 학문과 삶과 목회에 실천하며 오셨는데 지금 합동교단이나 통합교단에서 나름대로는 학문과 경건, 개혁신학을 추구하고 있는데 합동교단의 경우에는 칼빈이나 메이첸이나 근본주의적인 교리적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리 신학을 개혁신학으로 생각하다보니까 어떤 국가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들, 여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교회는 발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시대적 역사적 소명에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진정한 개혁신학인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또 통합은 목사님께서 이제까지 추구해 오신 개혁신학에서 조금씩 멀어지다 보니까 통합은 통합대로 여러 가지 자유주의 물결이 흘러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7) 역사적으로 개혁주의라고 하면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제일 넓은 의미로는 가톨릭에 반대한 것은 모두 개혁주의입니다. 가장 넓은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그중에서 이단은 제거하고 나머지입니다. 세 번째는 가장 좁은 의미로, 칼빈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운동들입니다. 제네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칼빈주의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칼빈이 가르치려고 했던 가르침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의구심을 가지고 봐야 합니다. 칼빈의 신학의 특징은 전포괄성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Five solar에 따른 것뿐만 아니라 전 포괄성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문, 예술, 모든 것에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역사를 보면 알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북장로 교회나 남장로교회의 선교사들이 선교를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보수적인 신앙을 계승하고 있었지만 진짜 정통 칼빈주의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상적으로 경건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이 자유롭게 되거나 근본주의로 나가거나 하는 가운데 교회에 갈림이 있었고 어떤 전통에 서서 신학을 할 것인지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의 스펙트럼은 넓은데 그중에서 자기가 신념으로 생각하는 한 가지 경향을 꽉 붙들고 이것 이외에는 개혁주의가 아니라는 사람도 나왔고-극단적인 네오퓨리탄 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음- 또 한 쪽에서는 신학적으로 너무 자유로운 사조가 나온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공부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혁주의라고 하는 것은 개혁주의라는 한줄기의 물만 흘러온 것이 아니라 멀리 보면 적어도 중세가 서서히 몰락하는 13세기로부터 시작해서 14세기 르네상스 운동을 거쳐서 그 위에 기독교 인문주의가 흘러나오는 거대한 르네상스까지 봐야 합니다. 중세시대부터 보존되어 오기 시작했던 지성사의 흐름이 중세 말기에 니콜라스 쿠자나 윌리엄 오캄과 같은 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그것이 깨뜨려지는데 이것과 함께 시도된 새로운 학문에 대한 해석, 유명론 논쟁, 쌓아진 것들이 허물어지는 사상의 변혁과 르네상스라는 인본주의 운동, 이 모든 흐름 속에서 사실은 개혁주의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지성사의 커다란 흐름들을 눈에 놓고 그 속에서 개혁주의를 해석해서 진짜로 그 개혁주의가 의미하는 바가 역사적으로 무엇이었는지, 그중에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수 있으며, 소모적인 논쟁들이 사라지고 기독교의 전통을 훨씬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을 개혁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8) 그러다보니까 이 시대의 역사와 상황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단절할 수밖에 없게 되고 한편으로는 통합이나 기장에서는 이러한 개혁신학의 전통에 대해서 조금 미약하다보니 기존의 개혁신앙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8) 저는 기독교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텍스트, 컨텍스트, 그리고 중간에는 해석입니다. 해석이 신학입니다. 보수 쪽은 텍스트에 집착합니다. 컨텍스트를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도 지금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원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비극입니다. 그리고 다른 편으로 가면 컨텍스트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텍스트에 너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 컨텍스트 속에 들어가도 컨텍스트를 읽지 못하고 텍스트에 들어가도 텍스트를 읽지 못합니다. 그러면 두 개를 해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학문입니다. 신학에 있어서 신학의 레귤레이션을 계속 받으면서 텍스트를 읽어가고 텍스트를 위로 올려가면서 신학을 두드려 고칩니다.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텍스트를 연구해보니까 선배들이 해 놓은 이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텍스트와 신학과 교류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것을 가지고 이쪽에 관여하여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바타”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하면 어떤 한 사람이 재밌는 영화를 만들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앤 롤링 같은 사람이 해리포터를 썼는데 그 책이 왜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팔렸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이 글을 잘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호흡하게 하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무엇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에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시대 속에 첨벙 뛰어든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시대의 사조를 분석해내는 철학과 역사와 문학, 특히 오늘날에는 과학, 과학을 분석하는 철학의 도움이 없이는 컨텍스트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텍스트에 빠져든다고 해서 텍스트에의 헌신이 아니고, 컨텍스트에 몰입한다고 해서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 두 가지를 잡아주는 학문에, 양쪽이 함께 소통하며 교류하면서 텍스트와 컨텍스트에 대한 다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 9) 지금 한국 교회가 한기총, 한교총, 한교연, 연합단체가 세 개로 갈라져 있고, 같은 장로교의 우산 아래서 합동, 통합, 기장으로 갈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개혁신학을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서로 일치할 수 있는 에큐메니컬 운동이나 서로 하나 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신지요?
답변 9) 제가 포이시(Poissy)라는 프랑스에 갔을 때 깊이 감동받은 것이 있습니다. 칼빈파와 가톨릭의 마지막 종교대담이 열렸던 곳입니다. 칼빈은 직접 가지 못하고 제자를 보냈습니다. 칼빈이 죽기 2년 전이었습니다. 칼빈은 죽기 2년 전까지 가톨릭과 대화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며칠 전에 나온 저의 작품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속에서도 언급했습니다. 키프리아누스라는 교부가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교회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이것은 “교회의 통일성”이라는 책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나는 이것을 키프리아누스라는 교부만 가진 것이 아니라 어거스틴도 공유했고, 심지어는 짤려나갔던 터툴리아누스도 공유했고, 심지어 칼빈도 이것을 공유했습니다. 한 어머니인 교회에 대한 사상을 그렇게 장구한 기독교의 역사 속에 보존해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최근에 쓴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가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사실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입장은 이렇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침례교이고 어떤 목사님은 감리교이고 나는 장로교라고 할 때, 우리는 각자 자기가 믿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각자 그렇게 믿도록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서 있는 이 신학적 입장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단 하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학 공부를 가르치면 신학의 칼을 쥔 후에 먼저 세속주의의 목을 치거나 이교의 목을 치거나 이단의 목을 치지 않고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복음주의 신학의 목을 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 꼰대밖에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속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세속주의와 한판 겨루기 위해서 칼을 들려면 세속주의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신학을 배운 것들을 자기가 배운 신학과 약간씩 다른 사람들의 목에 겨누는 것입니다. 서로 이단이라고 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 아니라고 풀어줍니다.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그런 모습을 바깥에서 보면, 교회를 통해 울려 퍼져야 할 하모니와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질문 10) 우리의 신학적인 개념과 가치를 목사님을 통해서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다시 배워야 할 문제들이 너무 포괄적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설교의 대상은 성도들이 아니겠습니까? 회중들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이것을 통해서 회심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면 이보다 더 귀한 설교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분명히 설교를 통해 변화되는 영혼들을 많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10) 설교자의 가장 큰 행복은 불신자가 자기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덜 사랑하던 사람들이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기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교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될 때에 자신을 향한 가장 큰 격려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설교자들이 목회의 가치 자체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예수를 믿게 하는가”, “교회를 얼마나 성장시켰느냐”, “얼마나 발전시켰느냐” 이런 것에 두면 안 되고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정확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자신의 온 삶과 인격을 담아서 전했느냐”에 두어야 합니다. 윌리엄 포사이스라는 설교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설교자는 설교의 결과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다.” 한 사람의 설교자가 피를 토하듯이 설교를 하려면 그가 피를 토하듯이 살아왔어야 그것이 가능하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이들 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이든 존스 목사님은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나에게 희미한 진리의 빛을 하나라도 보여준다면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하겠습니다.” 설교자들은 어떤 진리를 채집하여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를 회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섭취하여 그 진리들이 설교자의 안에서 용해될 때,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두루마리를 먹었더니 입에서는 달았는데 속에서는 쓰다고 한 것처럼, - 말씀이 자기를 허물어뜨리고 깨드린 그 경험들이 피가 되고 용해가 되어서 자기의 언어로 토해져 나올 때에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정치하고 치열한 학문의 탐구를 통해서 체계적인 사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 들은 설교와 오늘 들은 설교가 모순된다든지, 설교한 사람과 설교자의 삶이 모순된다든지, 작년에 했던 설교와 올해 했던 설교의 사상이 다르다든지, 그렇게 되어서는 기독교의 교회를 제대로 세울 수 없습니다.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철저히 신학과 신앙, 인격, 훈련, 영혼에 대한 사랑, 현대에 대한 이해, 이런 것들이 학습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질문 11)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진리의 지적인 면이, 학문적으로 신학적이 요소가 저를 가득하게 채워 넣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인생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는데, 목사님께서 “설교는 한 사발의 피”라는 말씀하셨고, “목회는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하게 목회하신 것이 저도 공감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11) 설교가 한 사발의 피라고 한 것은 1995년에 제가 작가로서 데뷔작이 있었는데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였습니다. 그 책이 나오게 된 동기는 돌아가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께서 제가 쓴 글을 어디서 읽으시고 이 사람의 책을 한 권 내주자고 하며 사람을 시켜 저에게 연락을 보내셨습니다. 그 당시에 두란노 같은 출판사에서 저 같은 무명의 사람의 책을 낸다는 것은 언감생심으로 넘겨 다 볼 수도 없는 것이었는데 원고를 갖다 드리면서도 그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설교자들이 많이 사간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많이 사갔습니다.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라고 했는데 왜 우리 목사님은 안 타오를까 하며 구입했나 봅니다. 어쨌든 그 책이 2주에 3천부씩 찍혔습니다. 단번에 3만부를 돌파했습니다. 그 후에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 두란노 잡지사에서 그 책이 나온 후 저와 인터뷰를 하면서 설교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마흔한 살이었는데 한 편의 설교는 한 사발의 피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전 존재를 쏟아 붓는 것이 설교라고 생각했으며, 기본적으로 청교도들이 가졌던 목회자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목회자, 설교자는 구약시대에 죽어간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던 사도들의 후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설교하는 일이고 이 설교 때문에 핍박을 받고, 설교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벡스터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매순간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사람을 향해 마지막 설교를 하는 것이다.” 유언과 같은 외침이 한편의 설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후의 일인데, 하나님 앞에 제가 고난을 많이 겪을 때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목회에서 고생은 좀 했지만 고난이라는 것은 모르고 달려왔습니다. 다른 목회자들에 비하면 고난도 아니었지만 제 자신이 견디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마당에 앉아있는데 예고도 없이 어떤 후배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분도 청교도를 전공한 분이었습니다. “목사님, 목회가 무엇입니까?” 묻길래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힘들지?”하며 어깨만 툭 쳐도 눈물이 쏟아지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목회입니다. 제가 그때 깊이 느낀 것은, 제가 공부해왔다고는 하지만 제가 공부한 것, 제가 주님을 사랑해왔다고 하지만 사랑한 것, 내가 믿어왔다고 하지만 믿은 것, 그리고 내가 혈혈단신으로 교회를 개척해서 이만한 교회를 일구었다고 한 이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가 깊이 깨달은 것은, 사람들은 500명 목회가 힘들다, 1000명 목회가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때 저의 경험에 의하면 수천 명을 목회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한 사람을 목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나였습니다. 교인들은 기도해주고 가르치면 말을 듣는데 나는 여전히 내 안에 내 말을 듣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깨뜨려지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어거스틴을 깊이 탐독하면서 자기 깨어짐에 대해서 깊은 은혜를 받고 “자기 깨어짐”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김남준 자신의 신학의 시작이 아니었는가 생각합니다.
질문 12) 그 눈물이 주님의 눈물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끝으로 목사님을 롤모델 삼아 한국교회의 설교자로서 거듭나기를 원하는 후배 목회자들과 열린교회 성도님들, 한국교회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답변12)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사랑함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사랑함
주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하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사랑함
제가 외국의 학자 친구들이 많이 모인 모임에 갔습니다. 그 친구들이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분들은 대부분 개혁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어떻게 학문을 해왔고 목회를 해 왔는지 잘 아는 분들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칼빈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정말 크다. 그러나 나는 죽은 후에 칼빈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른 목사님들은 그렇게 불리길 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 내가 존 오웬에 깊이 심취했고 존 오웬을 나의 담임목사님처럼 생각하면서 목회하려고 애쓰지만 나는 죽은 후에 김남준 목사는 오웬주의자였다고 불리고 싶지 않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깊이 심취하고 에드워즈를 통해서 배운 것이 너무나 많지만 에드워즈주의자이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고 천국에 가면 만나고 싶은 두 사람, 우리 할머니와 어거스틴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은 후에 어거스틴주의자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으로 불리길 원하느냐고 물으면 ‘김남준,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 김남준’으로 불리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어거스틴도 칼빈도 그 위대한 신학자들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인데 그것은 나에게 칼빈이 되라고 주신 선물이 아니라, 나에게 어거스틴이 되라고 주신 선물이 아니라 그들을 본받아서 참 나를 사랑하는 김남준이 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고, 나는 그것에 감사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함이며, 그 사람들은 내 인생이 끝날 때까지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내가 죽고 나면 천국에서의 내 지식은 그 사람들의 모든 지식보다 다 능가하게 되기 때문에 용도 폐기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어거스틴에게서 배운 것이지만, 제가 모든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뭔가를 가진 사람, 뭔가를 이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어찌하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으려고 했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서 이런 모든 신학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니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오늘 김남준의 눈물도 보았습니다. 김남준의 디마에 대해서도 공감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오늘 이렇게 함께 해 주신 황박사님께도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