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에 힘을 주실 때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시 138;3)
녹취자 : 박나리
I. 본문해설
간절한 소원이 없는데 간구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간구할 소원이 없는데 하나님 앞에 매달릴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 죽을 때까지 비밀에 싸여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고 또 오랫동안 정들었던 사람과 작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나를 떠나 어디로 가겠나이까” 했습니다. 종종 우리는 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떠날 수 있으나, 자기 자신은 결코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죄 때문에 그렇게 하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 당신의 하시는 일을 보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우리는 자녀를 혼냅니다. 혼내는 이유는 자식의 몸을 때리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을 때리기 위함입니다. 평소와는 다른 어조로 야단을 치거나 홀로 방에 가만히 앉아 반성하게 하는 것들은 모두 그의 마음을 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마음을 일깨워 올바르지 않은 곳을 향하던 마음을 올바른 곳을 향하게 하기 위해 일깨웁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시인이 이 기도를 드릴 때는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있었고 고난이 큰 물결처럼 넘치던 때였습니다.
II. 하나님 앞에 간구함
그때 시인이 한 일은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어려움이 물러가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실 기도를 하면서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은 말씀에 큰 빛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서 깎여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더 큰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어려움이 물러가기를 기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참답게 변화되기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 말씀에 굳게 붙잡힌 사람들이 아니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은 괴로우니까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당신을 안 찾고 고통을 겪는 것보다는, 당신을 찾으면서 매달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A.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심
그랬더니 하나님이 시인에게 두 가지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응답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인이 기대했던 바였습니다. 간절히 자신의 마음을 쏟아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응답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도의 꽃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현란한 언어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면, 황금으로 만들었으나 맞지 않는 열쇠와 같은 것입니다. 응답이 기도의 꽃인데, 이 시인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르침을 줍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모르고 살았을 때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고 고통받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끌어안고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을 태우며 삶의 활력을 모두 잃습니다.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갔으니, 그 영혼의 파리함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었겠습니까. 신앙을 갖게 된 사람은 어려움이 올 때, 그때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B.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심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장 큰 유익은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응답을 받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항로이고 드넓은 바다이고 우리의 인생이 그 위에 떠 있는 배라면, 우리의 마음은 그 배가 가는 방향을 결정하는 키와 같습니다. 그것이 어디로 꺾어지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힘이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끌거나 위대한 승리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을 받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주십니다. 그래서 눈앞에 닥친 환란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정신과 찢어지던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서 마음에 평안을 갖게 하십니다. 일단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자신의 인생의 운전대를 자신이 붙들고 있게 되면, 일단은 살 수 있습니다. 운전대를 붙든 그 사람이 뒤에 있는 주님의 손에 붙들렸을 때,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적당한 시기에 우리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이 응답은 제일 먼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점치는 사람들이나 우리의 운명의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심지어 접신하는 것을 가장 더러운 죄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까. 바로 하나님께 맡겨야 할 자기 인생의 미래를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알려고 하고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아주 구역질 나도록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해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응답을 주십니다. 응답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구하는 바를 받도록, 또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질서를 찾아가도록, 하나님이 응답해주십니다. 그때 그 사람의 마음에 넘치는 감격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셨다고 믿으며 감격하는 사람은 모두 기도한 사람입니다. 시인은 그런 기도의 응답에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앞뒤를 다 자르고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어려움 때문에 응답을 경험하게 신앙이 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그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간구하게 하시고 응답을 경험하면서 하나님 의지하는 삶을 훈련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입니다.
Ⅲ. 영혼을 강하게 하심
마지막 두 번째 간구하는 자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시인이 아마 생각하지 못했던 혜택이었을 것입니다. “나의 영혼을 강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입니다.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정밀하게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 많은 시련, 원수로 인한 고난과 박해를 통해 시인은 강해졌습니다. 강해졌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웬만한 것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고, 여전히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강한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저는 45년 이상 가까이 살았지만, 누구하고도 한 번도 주먹을 주고받은 적이 없습니다. 따귀를 때리거나 팔다리를 붙들고 씨름을 하는 갈등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육체의 힘을 그렇게 쓰는 사람도 있지만,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운동하는 것은 자신을 수련하기 위해서이지, 누구하고 주먹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결국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육체의 완력의 강함이 우리 인생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강한 정신의 힘입니다. 모든 슬픔과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정신의 힘입니다. 어떤 물질을 성능을 시험할 때 압착 테스트를 합니다. 수 톤, 수십 톤의 압력을 낼 수 있는 압착기를 아래에서 올리고 위에서 내리면서 금속이나 물질을 거기에 놓고 몇 톤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실험해봅니다. 인생은 그런 수많은 압착기를 통과하며 강해져 옵니다.
제가 요새 다음 공과를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온다면 두 허리에 두 손을 얹으십시오. 그리고 현실을 내려다보며 말하십시오. “네가 정말 나에게 닥쳐올 수밖에 없는 일이면 일어나라, 발생하라고 해라, 나는 너를 감당할 수 있다.”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 옹골찬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이 힘을 세상 사람들은 돈에서 찾고, 권력에서 찾고, 혹은 자기 인간성의 강함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찾지 않습니다.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 나의 상처 난 심령을 감싸주시는 하나님, 언제든지 자녀가 눈물 흘리며 하는 간구를 들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처음에 고등학교 다닐 때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만난 가장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쩜 이리 용감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 사르트르가 한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일종의 저주를 받아 자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와 이 온 세계의 무게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존재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고 용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남이 그런 말을 할 때는 감동이 오는데, 그걸로 현실을 이겨내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필요한 것은 인생을 바라보는 독특한 생각도 필요하지만, 문제는 정신의 강함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부인은 남편이 사고로 일찍 죽고 아이는 여섯이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냅니다. 훌륭하게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대신 자신은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반면에 다음은 제가 어려서 같은 골목에 살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이 성격이 고약하긴 했습니다. 남편은 아주 눈썹이 검고 짙은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둘, 딸 하나, 아내, 남편이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들을 쥐약을 먹여 셋을 다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죽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정신이 얼마나 강한가의 차이입니다. 고난을 겪으면서 괴로우니까 응답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응답을 기도하는 즉시 해주시는 때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매우 희귀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많은 눈물의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과정을 통해서 영혼을 아주 강하게 힘을 주셔서 정신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오늘도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에 같이 열심히 성경 공부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앞에 헌신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예배도 못 드리러 오고 얼마나 답답할까 묵상했습니다. 아마 굉장히 많은 사람이 이런 시간을 잘 활용하기도 하겠지만, 영적인 침체의 시기를 겪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전 국민적으로 보통이 아닌 상황입니다. 더 연약한 교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돌아오긴 돌아올까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우리의 간구는 하나님께 모아집니다. 우리의 손으로 다 돌볼 수 없는 어린 영혼들이 각기 있는 그곳에서, 그들의 영혼과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셔서 오히려 평안할 때 없던 기도를 주시고 눈물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감사의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우리는 모두 알 수 없으나 그러나 하나님이 이 과정을 통해 분명히 당신의 사랑하는 교회들을 강하게 하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인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주님 앞에 기도했더니, 응답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영혼에 힘을 주셔서 강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고 주저하고, 영혼의 힘을 잃고 회의를 품고, 그러다가는 또 방심에 빠지고 방종하게 되는 일들은 특별히 뜻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내가 주를 의지하리라, 이때가 내가 우리 하나님을 찾을 때니라’고 결심하는 것은 믿음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발동해서 하나님 앞에 주님을 의지하며, 이 길을 가려고 하는 마음의 간절함을 지녀야 합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는데,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이 사태가 불과 몇 주 안에 끝나지 않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법들로 자기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온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고난받지만, 응답도 주시고 그들의 영혼에 힘을 주셔서 강하게 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통해 설교를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면, 여러분이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될 때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 사랑과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힘주신 것을 보여주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