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날을 보낼 때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31:14-16)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누구도 이 시의 연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다윗의 생애 후기의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욕을 끼치는 대적들과 이웃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친구들도 놀라고, 또 길에서 보는 자들도 피해갈 정도였다고 시편 31편 11절에서 고백하고 있으니 그가 당한 시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황은 마치 밧세바의 아내와의 간음 사건 직후나 혹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 시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큰 시련의 때에 시인은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악을 행한 누구의 실명도 거론하지 않고, 고요히 자신의 죄(罪)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의 날을 보낼 때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II. 고난의 날을 보낼 때
A. 새롭게 고백함
이 고난의 때에 시인이 한 일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로는 새롭게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시인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는 우리의 본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고 하였습니다(시 31:14).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로 앞 13절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리의 비방(誹謗)이 있었고, 사방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시인의 생명(生命)은 시시각각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시련을 만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依支)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당한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염려(念慮)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염려에는 합당한 염려와 합당치 않은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합당한 염려는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역할을 합니다.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성실하게 살도록 도전하고, 타인에 대하여 올바르고 공정하게 행하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또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계명에 묶어 놓는 역할도 합니다. 더욱이 경건한 근심,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와 자신의 변화되지 않은 인격과 다른 사람의 영혼의 불행한 처지에 대한 염려는 염려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더욱 하나님께 붙어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에 비해서 합당치 않은 염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에서 비롯되는 염려입니다. 16세기를 살았던 영국의 비국교도 유명한 윌리엄 퍼킨스(Willian Perkins)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근심을 할 때 갖게 되는 매우 위험한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거론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염려하게 될 때 첫째로 이 염려는 마음에 압박을 가해서 결핍(缺乏)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고, 둘째로 불법(不法)한 방법으로 염려되는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혹하며, 셋째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갈라놓고 지치게 하여 말씀과 기도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큰 시련 속에서 시인이 어찌 염려하지 않았겠으며 그 염려가 어떻게 모두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염려였겠습니까? 아마 이 두 가지 염려가 시인의 마음에 이리저리 요동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시인이 선택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고백(告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드리는 첫 번째 고백도 아니고, 최초로 하는 고백도 물론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이미 드린 고백이었고, 이 고백 속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큰 시련의 때에 이 시인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고백하였습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시 31:14)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시인은 이 큰 환란의 때에 자신의 온 마음을 실어 자기의 당연한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시련 속에서는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있습니다. 돈 많고 형통하고 잘 나갈 때는 친구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만나고 싶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환란과 시련을 당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친근했던 사람들도 낯선 사람으로 나를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시련 속에서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있습니다. 오해와 음모, 배신과 그리고 탐욕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시인은 12절에서 이렇게 토로합니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원래 “깨진 그릇”이라는 이 번역은 원래 히브리어에는 ‘깨어진 배’라고 나옵니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파도에 배 한 부분이 깨져 침몰 되어 가고 있는 배를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모두 그 배에서 뛰쳐나와 바다를 헤엄쳐 목숨을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사람에게는 잊혀져도 하나님께는 더욱 기억(記憶)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특별한 어둠 속에서 아주 평범한 고백을 하나님께 새롭게 드렸습니다. 무한히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을 미천한 지상의 자신과 묶어 주는 것은 신앙이었습니다. 이 고백의 위대한 힘을 아는 것이 신앙(信仰)입니다.
메마른 땅을 지난 것 같고, 누구도 의지할 것 없이 홀로 우주 공간에 버려진 것과 같은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이 아름다운 고백은 우리를 돌이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사실을 고백한다 할지라도 주님께는 아무것도 새롭지 않으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지언정 하나님이 당신 자신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 중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신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당신에 대해 고백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오래 묵은 고백을 주께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바뀌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번뿐만 아니라 많은 고난의 날을 지났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고백의 힘으로 그 모든 현실 난관을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의 본을 따라 시련의 마음으로 온 마음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환란(患亂)의 날에 드리는 시인의 이 고백은 크게 세 가지의 내용을 가진 고백이었습니다. 이 고백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께 올려 드렸을 때 그는 이 모든 환란을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찾겠나이다. 둘째로 어떤 환경에서라도 나는 당신을 의지할 것입니다. 셋째로 내가 외로울 때 더욱 당신의 사랑을 붙들겠나이다 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던 다윗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은 종종 그 사람의 죄 때문에 시련을 만나게도 하셨습니다. 때로는 다윗의 죄와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 연단의 불길 속으로 그를 몰아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안일한 모든 삶을 떨쳐 버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하고 새로운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시인은 그 고백의 힘으로 고난의 날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B. 새롭게 의지함
두 번째는 새롭게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이) 비록 큰 시련(試鍊)을 만났으나 새롭게 고백을 드리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비관적이어도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오직 나의 아버지 하나님뿐이라는 의존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절대적인 의존의 감정은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그는 말하기를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고 말합니다. 눈앞에 전개된 현실을 보면 미래에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낙관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볼 때는 그에게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는 땅을 바라던 자신의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러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제까지 어떠한 사랑을 자신에게 베푸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지, 시련과 고난의 날에 어떻게 자기를 은밀한 당신의 그늘에 감추시고 자비를 보여주시는지를 상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당신의 선(善)하신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시인은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미증유의 큰 시련을 통해 더욱 하나님만을 새롭게 의지하기로 결단(決斷)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염려와 근심으로 지친 무력감(無力感)이 토해낸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경건한 소망(所望)이 가져다 준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시인을 대적하는 자들은 아주 많았고, 그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신자가 고통을 겪을 때 경계해야 할 것은 고립감(孤立感)입니다. 인간은 결코 시련이 크다는 이유 때문에만 절망(絶望)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하고도 상관없이 홀로 버려졌다는 고립감 때문에 삶의 마지막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주 내성적이었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습니다. 마당발처럼 발이 넓어서 온 학교에 모르는 선후배 동료가 없었고, 누구든지 만나면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즐겁게 웃었습니다. 불량 학생은 아니었고, 공부를 그리 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모든 친구가 좋아했습니다. 벌써 그 나이에 말술을 먹을 정도로 주량이 대단한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로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스스로 라이터에 불을 붙여 분신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며칠 동안은 살아있었지만 결국은 병상에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그랬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쩜 모든 사람과 낙천적으로 외향적으로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며 호탕하게 살던 아이가 그렇게 죽을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온 우주의 홀로 버려졌다고 하는 고립감을 느낄 때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인생의 끈을 놓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리 큰 시련을 만났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그 순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그 마음 안에 이미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의지할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련 속에서 주님의 은혜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을 당신 의지하도록 부르시고 계십니다(시 31:20).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믿음을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고백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새롭게 간구함
마지막 세 번째는 새롭게 간구하였습니다. 시인은 많은 시련을 겪으며 인생을 살아왔으나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은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아담의 후손이었기에 본성의 죄가 있었고, 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위대한 증인들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큰 시련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새롭게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큰 시련 속에서 큰 기도를 새롭게 간구하였습니다.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련 속에서 그는 이를 갈며 자기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배신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처벌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대신 고요히 이 큰 시련 속에서 자신을 더 깊은 은혜의 세계 속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시인이 구한 것은 주의 얼굴을 자신에게 비춰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성경에서 “주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榮光)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대면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인데 악인에게 매우 특별한 심판을 행하기 위해 쳐다보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백성들에게 매우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기 위해 얼굴빛을 비추시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축복은 사물들의 질서를 움직여서 우리에게 이익을 주시는 축복이지만, 영적인 축복은 하나님이 직접 초자연적으로 우리의 영혼(靈魂)을 어루만지시는 신령한 복입니다. 신자는 그 신령한 복을 통해 근원을 알 수 없는 영혼과 마음의 힘을 얻고, 인생을 살아갈 하늘의 자원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사도 바울도 똑같이 이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빛이 자신의 모든 삶속에 얼마나 큰 능력이 되는지를 알았기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1절에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통을 만나지만 거기에서 낙심하여 미끄러지는 사람이 있고, 능히 그것을 감당하며 기쁨으로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힘이 하나님의 영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신(確信)하면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시련의 날에 그는 자신을 주의 종으로 자처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큰 시련 속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일뿐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상전에게 복종하며 주인을 일편단심으로 섬겼던 충성스러운 종들을 떠올리면서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기를 다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은혜로 구원 받았을 때에 하나님은 죄인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子女)로 옮겨주셨고,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친아들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받은바 은혜가 너무나 크고 베푸신 사랑이 한량없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행복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도 때로는 시련의 때를 지나게 하십니다. 거기서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신앙의 무게를 달아보게 하십니다. 거기서 당신의 품으로 피하는 모든 사람에게 시련이 주는 고통보다 더 큰 영광을 보여주시고,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쓰심을 받기 전 미디안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임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으나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광야로 보내어져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지만 아라비아 광야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계시를 받은 요한은 그때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아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의 지체들과 떨어져서 절해고도의 외로운 섬에 홀로 있을 때였습니다. 모두 그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부르셨고, 또 남들이 알지 못하는 신앙의 세계 속에서 들어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시련의 날에는 언제나 물결치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 현실은 우리에게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결치는 현실에 마음까지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시로 흩어지려는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기도 속에서 고요히 하나님 한 분을 대면하십시오. 간절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經驗)하고 시련을 겪기 전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던 미답의 은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묵상하며 시련을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恩惠)의 세계를 보여주셔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추운 겨울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어느 나무가 늘 푸른 나무인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자의 믿음은 시련을 통해서 입증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신앙의 방식이 아닙니다.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마음까지 산란하지 말고 마음을 다독거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말씀을 통해 부어주는 성령의 은혜와 간절한 기도로 능히 시련을 이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고난의 날에 묵었던 옛 고백을 새롭게 하십시오. 주님을 의지하던 마음을 더욱 새롭게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으로 바꾸십시오. 예전에도 기도했으나 새롭게 간구함으로 결국 큰 힘을 얻고, 이 시련 때문에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