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이유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
남을 위해 기도해 본 사람들은 오늘 성경 본문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를 많이 해도 힘이 들지 않고 기쁨이 솟아나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온 몸과 마음의 힘을 빼앗아 가는 그런 기도가 있습니다. 사도는 오늘 하나님 앞에 빌립보 교회를 보며 두가지 경우에서 감사했다고 하는데 생각할 때 감사하고 기도해 줄때 감사하고...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해 줄때 그렇게 감사화고 기쁩니다. 그 사람 기도가 끝나고 다음사람 얼굴을 떠 올리면서 기도 하려고 하면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니까 하나님이 계속 그에게 베풀어 주실 은혜에 감사 합니다 하고 하나님께서 그 영혼에 은혜 주셔서 그렇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가 또 하나님 앞에 선한 뜻을 품고 섬기려고 계획을 합니다 하나님 그를 인도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한 없이 기쁜 기도입니다. 감사하고... 여러분들도 구역장 많이 해 보면 구역원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렇게 생각할 때에 구역장으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고 교사로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식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그런 성도들도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해 주는데 너무 괴롭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면서도 그런 사람 기도할 때 앞에 사람 기도할 때에는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마음에 기뻐하고 뒤의 사람 기도할 때에는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목회자로서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가 솟아난다고 했습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여러분들 가운데 제가 그런 사람 아닐까요? 목사님, 목사님은 제 생각만 하면 하나님께 눈물 없이는 감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기쁨이 솟았던 그것이 사실은 바울의 기쁨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이 바울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마음에 끊임없이 근심을 끼치면서도 하나님 앞에 놀랍게 인정 받는 성도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그렇게 마음이 저미도록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또 이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마음에 항상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앞에 간구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고통을 드렸던 삶은 지난날의 삶으로 충분하고 이제는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주님이 우리를 생각하실 때 기쁨을 느끼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사도가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근심시킨, 교회를 교인으로 본다면 고씨는 근심을 시켰습니다. 고린도 교회... 아침에 갈시각도 사도바울의 속을 다 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 교회는 사도가 생각할수록 위로를 많이 받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왜 이 교회를 생각할때 그렇게 기뻣는가 하면 이유가 아주 간단하게 나옵니다. 뭐라고 나오나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하기 때문이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씩 풀어 봅시다. 첫날부터라는 것은 언제부터 일까요?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두아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까? 그렇게해서 교회가 세워졌을때 그렇게 처음으로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날부터 지금 여기에 사도바울이 옥석에 갖히게 되었을 그날까지 그들이 교제했기 때문에 교제 하는 것 때문에 사도바울의 마음에 그렇게 큰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교제가 무엇인지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 하고 그런데 그 교제가 어떤 교제이었는가 하면 복음의 교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교제는 교제인데 복음이 중심이 된 교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정말 기뻣던 이유는 이들이 끊임없이 함께 교제하고 있었는데 그 교제가 복음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였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보기에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의 교제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 복음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복음의 교제라고 하는 것은 우선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교제가 복음의 교제입니다. 그러면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거기에서 복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것입니까? 아침에 설교한 것 하고 똑같이 나는 원래 하나님을 등지고 악을 행하고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인데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멸망 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여 대신 죽으셨고 나는 그 피로 용서함을 받았다 거기에서 우러 나오는 그 신앙에 입각한 교제가 복음의 교제입니다. 한사람만 그렇게 했으면 복음 신앙이 되지만 여러사람을 그렇게 깨뜨려서 함께 복음을 누리게 하셨으니까 복음 공동체가 되고 그 공동체속에서 복음의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사람 그것이 아니라 또 한사람 또 한사람이 그렇게 그리스도 은혜의 십자가 아래 깨뜨려지고 그 큰 사랑으로 구원을 얻게 되니까 그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쓸모 없는 죄인을 구원해 주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재물로 주셨습니다. 그 복음이 하나님의 사랑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복음의 교제를 이루게 되었을 때 그 교제의 핵심이 비로소 사랑의 교제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랑이 두가지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천상적 사랑과 지상적 사랑입니다. 제가 이제 요즘은 잘 안다니지만 이번에 어떻게 여러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가보면 진짜 별의별 교회가 다 있습니다. 꼭 교회가 물속에 사는 생물 같습니다. 바다속에는 여러분들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별의별 짐승들이 다 있습니다. 모르시죠? 일년전인가 이년전에는 뉴스에 나왔는데 오징어가 17m짜리가 잡혔습니다. 한 마리가 잡혔는데 무게가 황소 한 마리보다 더 무겁고 오징어를 뚝뚝 잘라서 동그랗게 만들어서 튀기면 제일 작은 부분이 타이어 만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별의별것이 다 있듯이 교회도 진짜 별의별것이 다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는 진짜 교제하는 교회입니다. 수십년동안 일가친척으로 뭉쳐지고 뭉쳐졌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한 사람이 무엇인가 교회에 대해서 안 좋은 행동을 하면서 무리들을 규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같으면 만난적도 별로 안되고 하니까 나는 그건 아닌것 같다. 나는 그런게 생각하지 않는다 몇사람만 그러면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릴텐데 친구들이 30년지기 40년지기 주일학교때 같이 손잡고 다니던 동무들이 이제 할머니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잘못된 행동을 해도 인간의 정으로 차마 그 앞에서 그것은 아니야 이렇게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다 자기에게 동의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제는 그것이 바로 복음의 교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랑의 정을 따르는 교제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교제도 있습니다. 경제적 교제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있던 교회에서 있던 일인데 어느날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노발대발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못된 것들이 교회에서 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목사님이 그 계를 하든지 말든지 오야가 불든지 계원이 불든지 하기 전에는 탄로가 안 나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하면 세상에서의 곗날은 모여서 같이 국수라도 먹으면서 같이 돈도 주고 받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바쁘니까 주일날 만난김에 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보니까 항상 주일날 동그랗게 모여서 노방전도 나가려고 기도를 하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달러 가방 같은데서 꺼내서 돈을 주고 받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것이 뭐냐 했더니 계를 하는 것입니다. 집사, 권사 모여서 계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탈 차례이니 다음에는 네가 탈 차례이니 하면서... 그러다가 이제는 곗돈을 다 잘 내면 괜챦은데 이것이 또 타 먹고 돈을 안내면 권사하고 집사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꼴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도 사실은 잘 될 때에는 아름다운 교제 아닙니까? 오고가는 곗돈속에 싹뜨는 성도의 교제... 이런 교제는 모두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복음의 교제였습니다. 복음의 교제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누구인지를 아는 자각이 있기 때문에 이 복음에 대한 경험은 반드시 우리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고 사는 사람들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이 복음의 교제가 사랑의 교제라면 사도바울이 그렇게 감사하는 이 교제는 어떤 종류의 교제 였을까요? 우선 첫째는 영적교제 였습니다. 무슨뜻인가 하면 복음안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눈뜨게 되면 똑같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똑같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면 말할 수 없이 많은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이 복음안에서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면 그 사람에게 최고의 행복은 자기처럼 주님을 만난 사람과 함께 사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함께 교제하고 은혜를 나누게 되면 자기 혼자 품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이 둘이 만나서 교제를 하면 더 크게 이 사랑이 증대되는 것을 경험하고 그 사랑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차고 올라서 그래서 심령의 기쁨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교제는 우리의 영혼에 큰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어떤 모임은 함께 사귀다 돌아오면 마음이 건조하고 괴로워지는데 어떤 모임은 함께 교제하고 나면 돌아올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꽉 차고 주님을 더 알고 싶고 성경을 더 많이 깨닫고 싶은 사모함에 심령이 뜨거워지는 모임이 있습니다. 이런것이 바로 복음의 영적교제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러한 복음안에서의 영적교제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사도는 이 교회를 생각할 때 눈물이 나도록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마음 속에서 무거운 기도의 짊이라는 생각이 안들고 기쁨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속에 이런 영적인 교제가 아주 깊어지고 서로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가운데 복음의 본질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복된 교제가 충만하게 될 때 그때 우리 주님은 여러분들을 보시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육적인 교제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보면서 이렇게 감사하고 감옥속에서도 빌립보 교회를 보고 기뻐하는 이유는 이 빌립보 교회가 오직 이 교회만이 사도바울이 복음사역을 하기위해 힘겹고 어려울까봐 끊임없이 사도바울을 도왔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마음에 큰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결국 인간이 도와주지 않아도 결국은 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학교 다닐 때 한때는 하나님을 향해서 섭한 마음도 품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신학생들이 어려울 때 였습니다. 진짜 어느정도였는가 하면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이 없어서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는 학생들이 있었고 제 자신이 대학원 다닐때인데 용인가는데에 캠퍼스가 있었는데 청량리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가면 서점하고 매점이 붙어 있었습니다. 너무 부러운것이 무엇인가하면 삼백원짜리 사발면에다가 김밥 짧은것 네 개 놓고 먹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사먹으면 되지 하는데 안 믿어지겠지만 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삼백원에다가 그 조그만한게 이백원이었는데 그것 먹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대학원 다니기 전에 야간 신학교 다닐때에는 라면을 끓여주는데 계란을 한개 깨뜨려서 반씩 넣어 줍니다. 그런데 아저씨 나 라면 주세요 하면서 계란을 넣지 마세요 라고 옆에서 들으면 저사람 계란을 싫어 하는구나 라는 것이 아니라 50원을 깍기 위해서 계란을 빼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나중에 저한테 알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1986년도에 학교를 가서 공부를 하고 점심때 밥을 먹으러 내려 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오백원을 들고 가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사는데 거기에 상추 이만큼하고 돼지고기 시뻘겋게 묻힌것을 이 만큼을 식당 아주머니가 주는 것입니다. 아주머니 이것이 왠일 입니까? 하니까 선배들이 졸업한지 20년이 되었다고 와서 후배들한테 고기를 구워주라고 사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날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때 제가 신학교 섬김의 날을 하겠다고 마음속에 작정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런 사연이 있는 것을 사람들이 모릅니다. 목사님이 무엇 때문에 신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냐고 하는데 정말 가난한 학생들 많습니다. 지금도... 엊그제도 제가 학교에 갔는데 지금도 백명 가까운 학생들이 산으로 올라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것이 식권을 줄테니 와서 먹으라 해도 자존심이 있어서 안 먹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감동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감정들이 나오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내가 가르친 학생이 있는데 분명히 고달프게 여기저기서 외판원을 하면서 야간에 와서 공부를 하고 내가 가르치고 했는데 어느날 희색이 만면해서 나를 찿아 왔습니다. 교수님 저 이제 공부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식구들이 있는데 뭘 벌어 먹고 공부만 하냐고 하니까 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사업을 하시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그 기업체에 와서 예배를 드려주면 한달에 칠십만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칠십만원이 큰 회사 부장급 월급 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교회에서 전도사 사례비로 십팔만원인가를 받을 때 였습니다. 그러니까 칠십만원이면 얼마나 큰 돈이겠습니까? 지금 따지면 삼백만원쯤 줄테니까 공부나 해라 그랬던것 같습니다. 느낌에... 돌아 오면서 굉장히 기쁘고 해야 하는데 샘이 나는 것입니다. 나는 계속 그렇게 고달프게 생활을 해도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데... 한번은 또 친구 전도사가 학교 근처에 방을 얻겠다고 왔는데 돈은 적은데 방을 얻겠다고 와서 김전도사님 저는 진짜 하나님께서 놀랍게 학교 옆으로 이사 오는 것을 인도해 주시네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하니까 전세를 얻으려고 하는데, 삼백만원이가 오백만원을 가지고 얻으려고 하는데 아주 방 같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집을 같더니 일층인데 약간 삼분의 일정도가 들어간 일층 있지 않습니까? 하여튼 지하는 전혀 아니고... 그러면서 이 돈을 가지고 방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 돈 가지고는 안되고 방두세게 전체를 한꺼번에 빌려 줄려고 한다고 해서 그러면 안되겠네 하고 가려고 하니 집 주인이 "뭐 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저 전도사에요" 하니까 주인이 갑자기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면서 주의 종이 집을 얻으신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돈을 받겠느냐고... 그래서 돈 삼백인가 얼마를 내고 한 팔백자리를 독채로 얻어 들어 갔습니다. 돌아 오는데 하나님이 나에게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크게 혜택을 주신 사람이 크게 감사하는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조금 주셨어도 하나님 앞에 가지고 있는 마음이 올바르면 그것이 큰 감격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제가 잊어먹지 않는데 우리 큰 아이를 낳는데 병원을 안 좋은데 가서 그런지 24시간동안 진통을 하고 나오지도 않는 아이를 24시간 동안 힘만 주라고 산모 진을 다빼고 마지막에는 제왕절개 하셔야 겠습니다 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의료보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돈이 얼마나 나올지 우리 부부가 계속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도들이 한사람 한사람 와서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사님이 와서 아기를 낳아 축하드립니다 하고 봉투를 하나 놓고 가는데 열어 보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4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4만원이 굉장히 큰 돈 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고마운 것입니다. 그것이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안 잊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저는 그 교회를 떠나고 다른교회 또 그 교회를 떠나서 개척교회를 하고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르고 유명해지고 또 이제 사만원정도 보태 주지 않아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방배동으로 이사를 오고 했는데 서울여자대학에서 나에게 강연을 해달라고 초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갔는데 그 동네를 지나 가면서 옛날 그 집사님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고마운 집사님한테 가서 고맙다는 마음을 십년이 넘게 있었던 일을 이십년이 넘도록 가슴속에 고마워하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못했으니까 이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있던 교회에 찿아가서 사무원한테 여기 아무개 집사님 아직도 나오냐고 하니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그 집으로 좀 안내좀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가는길에 돈을 주면 받겠습니까? 절대 안 받겠죠?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하나... 너무 이상한 선물을 사 가지고 가면 화제꺼리가 될것 같고 해서 그때 이상하게 오렌지가 굉장히 비쌌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오렌지 큰 것 한박스를 샀습니다. 사만원이 넘었습니다. 큰것 한박스를 사서 사만원을 사만원으로 갚는 것은 아니고 어쨎든 그것을 사 가지고 들고 갔습니다. 그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갔더니 봉사 좋아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중고등부 수련회 한다고 닭을 튀긴다고 부부가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앉으라 해서 차를 내 왔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집사님 다 잊어버렸겠지만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했더니 "아! 기억도 안나는데"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때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사실은 그 후에도 그 생각을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이것 성의니까 바깥 양반하고 맛있게 드시라고 하고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목사로서 기도밖에 없는데 기도해 주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마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시도록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그런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고백하는데 나는 가난한대로 처 할줄도 알고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거기도 내가 처할 줄 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재물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너무 기뻣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런 교제가 사도바울과 이 교회 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도들 사이에서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신 그것들을 감사하면서 연약하고 약한 성도에게 나누어 주어서 그래서 풍요로운 내가 가난하신 그리스도 때문에 풍요로워졌기 때문에 또한 내가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곤궁한 자들을 위해서 가난해짐으로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교제가 바로 복음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맨처음 한국교회에,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 왔을 때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욕했고 그리고 억울하게 교회가 박해를 받았습니다. 마치 옛날에 로마시대때 교회가 핍박을 받았는데 뭐라고 하냐면 예수쟁이들은 모여서 근친상간하고 그리고 밤이면 모두 모여서 촛불을 켜 놓고 아기를 죽여 피를 먹는다더라 즉 이것이 뭐냐면 성찬 이것은 내 살이요 피요 하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을 것입니다. 식인종들이 모였구나 생각하면서 그냥 박해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터툴리안 같은 사람이 그런 박해가 사실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아주 강력하게 제국에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조선에서도 똑같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모임에 가지 말라고 자식들을 나무라면서 그 인간들은 통화통색하는 무리라고 했습니다. 통색은 무엇인가하면 색이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색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막 통한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남녀가 함께 모인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녀가 함께 모였는가 하면 그것이 아니라 교회를 지을 때 'ㅁ'자로 지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여기 있고 교회가 이렇게 기억자로 꺽어져서 여기는 남자가 앉고 여기는 여자가 앉고 해서 기왓집 같은 것이 기억자로 꺽어졌고 가운데는 포장을 쳐서 서로가 볼수 없게 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좋습니까? 남자 옆에 여자, 여자 옆에 남자 이렇게 앉으니까?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나온 통화가 무엇인가 하면 돈을 서로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어느 사회에서든지 힘든 일입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돈을 안주고 돈 몇푼 때문에 소송을 하는 세상인데 그런데 저 인간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려우면 서로 나누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안에서의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교제가 이루어 졌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큰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그리고 또 그리스도의 마음에 이렇게 기쁨을 드리는 사람이 된다면 주님의 마음 안에 있는 감사가 여러분 속에 오히려 넘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빌립보 교회는 어려운 교회였지만 이렇게 서로 영적으로 교제하고 육적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이 교회가 온전한 복음의 사랑을 이루어 우리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고 그리고 즐거움을 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만 감사가 넘친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마음에 이런 감사의 정이 넘치게 하였던 이런 교회의 마음안에도 또한 기쁨과 감사가 넘쳤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교회의 본을 따라서 그렇게 복음안에서 교제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복음 안에서 사랑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육적으로 교제함으로서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린다면 그 감사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