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구하는 자를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시145:18)
녹취자 : 김경애
어차피 인생을 사는 것은 뜻밖의 일들을 만나게 마련이고 그 뜻밖의 일들은 행운보다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어려움과 시련들을 잘 극복하면서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의 특징이 하나님을 매우 가까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쳐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있습니다.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지만 기도만 할 수 있으면 결코 신자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시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자기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음의 깊은 어두움이 찾아와서 유혹에 이끌려 불순종하든지 혹은 연약해져서 낙심하여 주저앉든지 이 어떤 경우든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진 거리감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찬송 시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워낙 많은 신앙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보기도 하고 하나님께로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울부짖기도 하였습니다. 주께 버림받은 것 같이 되었다고 탄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니 하나님이 자기와 가까이 계시는 복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어떤 사람에게 가까이 해주시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살점을 찢어서 그리고 뼈 사이로부터 흘러나오는 체험적인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과 그렇게 가까이해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은 죄가 없는데 흉악한 원수들에게 에워싸인 때도 있었고 때로는 주위에 흉악한 사람들은 없었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것같이 영혼이 깊은 웅덩이에 내던져진 때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친구였던 사람들이 원수가 되어 자신을 배반하는 상황을 겪기도 하고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여 망명의 길을 떠나는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야말로 굽이치는 수많은 삶의 상황을 시인은 겪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 있든지 자기에게 간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이 연약하면 주님을 의지해야 하고, 그 사람이 교만해지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가 없이 신실한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니 그 삶을 계속 살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죄 많아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 자’는 수적으로 모든 인간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든지 ‘모든 경우에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시인이 실제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죄가 있으면 용서해 주셨고, 깊은 웅덩이에 빠졌으면 건져 주셨고, 자기보다 힘센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있으면 놀라운 방법으로 그 원수들을 물리쳐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마치 원한을 풀어주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을 시인이 오늘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시 속에서 모든 사람을 향해 권면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자기에게 간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주듯이 시인은 다시 풀어서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그러면서 동격으로 설명합니다.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요소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간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가까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당신을 의지하는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시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흐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제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처한 삶의 상황이 워낙 비관적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미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께 큰 징벌밖에 더 이상 받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그것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기 위해 같은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바리새인은 정말로 도덕적인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의무를 모두 이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리는 진짜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까? 도대체 어느 면에서 세리가 의롭다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리새인이 자신의 행위로 쌓아올린 그 모든 의보다도 마음으로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울부짖었던 그 세리의 의를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세리가 받은 의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렇게 당신에게 어린아이처럼 고백하며 간절히 하나님 이외에는 어디에도 소망이 없는 것처럼 매달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의를 주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경건의 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물같이 쏟으며 그분께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를 의지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나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모든 욕심은 함께 녹아버리고 그리고 하나님만을 어린아이처럼 의지할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의 뜻대로 살고 싶지 않고 하나님보다 더 내세우는 것을 갖고 싶지 않은,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나와 가까이 해주시면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괜찮다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요소는 ‘진실하게’ 라는 표현입니다. ‘간구하되 진실하게’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진실하다는 말은 진리에 자신의 마음과 삶이 합치되어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추는 것이 없는, 표리부동하지 않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숨겨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는 일이 없는, 겉과 속을 뒤집어 봐도 한결같은 상태를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합치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는 그 진리에 비추어서 자기가 잘못된 것, 옳은 것, 그리고 모자라는 것, 합당한 것을 분간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느끼는 고통 때문에 자신이 괴로워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까이 해주시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으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니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쏟아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하게’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사이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무한하신 분이고 알려주신 것조차도 우리가 이해할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 중 하나님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심사를 모두 알고계시는 하나님으로 우리가 기도 속에서 그것을 그대로 쏟아놓아 숨김없이 기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쏟아놓아 진실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결국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꾸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여러분들이 부족한 무엇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실 것이고 고통을 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위험에 처해있다면 여러분보다는 하나님이 먼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결국 그 기도 속에서 고쳐져야 할 것은 우리를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도 우리가 말할 때 기뻐하십니다. 온 땅과 하늘의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당신 자신이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을 고백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마음에 없이 앵무새처럼 그런 말을 뇌까리면 하나님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은 찬송이든 기도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바꾸게 하시기 위해서 간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실하게 간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불같이 열렬하게 소리를 지르는 기도가 가장 열렬한 기도가 아닙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속으로만 기도하는 것도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가 아닙니다. 간절한 기도는 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의 마음의 북을 두드리면서 올라오는 기도소리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 토해놓는 기도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기도가 될 때 그 기도가 진실한 기도이고 그 진실이 있어야지만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 추운 겨울 모닥불을 피울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온 땅에 눈이 쌓이고 얼었다면 아마 여러분들은 그래도 양지바른 땅을 찾아 마른 땅을 발견할 것입니다. 지푸라기같이 불에 타는 물체들을 모아놓고, 호호 불면서 모닥불을 살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뭇가지를 얹고 통나무를 얹으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만들 것입니다. 그것으로 추위를 피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찾는 기도가 진실한 기도이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여러 마디의 기도를 못 하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차피 이 기도는 내 마음에서 타오르지 않으면 풍부해질 수 없으니 추운 벌판에서 부싯돌로 불꽃을 떨어뜨려 덤불에 불을 붙이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희미하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싯돌에서 튀는 모든 반짝이는 불꽃이 모두 불을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성냥이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튀는 불꽃 없이는 솜털처럼 모아놓은 그 지푸라기에 불이 붙을 리가 없습니다. 수없이 자신의 마음을 두드리며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이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이렇게 함께 모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무시로 시간이 날 때 하나님의 교회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진실하게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그 어떠한 환경이나 심지어 여러분의 죄까지도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진실하게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가까이하십니다.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