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녹취자 : 허혜숙
혼자 사역할 때도 이것은 가슴이 뛰었지만 나중에 부장집사가 되고 교역 전도사가 되고 부목사는 안 해 봤습니다만 나중에 담임목사가 되고 나니까 이 구절이 더 더욱 가슴에 깊이깊이 와닿습니다. 2004년에 이 건물을 샀습니다. 이사 온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교회학교 학생들이 300명에서 600명으로 늘었습니다. 도저히 저 본당에서는 수용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더니 여기에는 모두 공장이어서 건물이 없었습니다. 길 건너편으로 알아보니까 비싸기도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만, 그 수백 명의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언젠가는 한두 번은 사고가 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돌아보니까 열린 빌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빌딩을 파는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불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를 했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참, 사장님도 일해 보면 알지만 진짜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 찾기 어렵죠?’ 하니까 ‘목사님, 말씀도 마십시오. 내가 그런 사람을 어쩌다 만나면 제가 돈이 아니라 신장 하나를 떼어달라고 해도 난 기꺼이 주겠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여러분들 중에 혹시 가을걷이, 추수 때 벼를 베어본 적이 있는 사람 손들어보십시오. 오, 그렇구나, 시골 사람들이구나. 가을에 벼를 거둘 때는 날짜를 흐린 날은 절대로 안 합니다. 왜냐하면 곡식을 베어 놓았다가 지금이야 탈곡 기계가 금방 해 주지만 예전에는 벼를 잘라서 옆에 놓고 가지만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그 곡식을 다 버립니다. 그래서 햇빛이 쨍쨍 나는 날이 추수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일렬로 죽 서서 낫을 들고 허리를 굽히면서 곡식을 베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똑같이 일렬로 서서 똑같이 박자를 맞춰서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저 뒤에 쳐지고 어떤 사람은 저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령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모내기도 똑같습니다. 줄을 띄고 박자에 맞춰서 앞으로 진전합니다. 휴식 시간이 없습니다. 허리를 펼 시간도 없습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저는 농사는 지어보지는 않았는데 직장에 다닐 때 제가 기획하고 서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솔선해서 직원들을 데리고 농촌봉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갔다 오고 나면 항상 그 다음날 항상 결근을 했습니다. 온몸의 사지가 다 쑤시고 손바닥이 낫에 다 부르텄습니다. 그만큼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추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추수하면서 논 골에다 쓰러뜨려 놓으면 뜨거운 햇빛에 마르면서 그 다음에 탈곡기가 그것을 가지고 탈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건조시킨 상태에서 자루에 담는 것입니다. 그러니 햇빛은 따갑게 내리쬐고 땀은 비 오듯 쏟아져서 눈을 찌르면서 눈에 짠물이 들어가죠, 허리는 펼 수가 없죠, 계속해서 볏단을 잘라야죠, 낫이 잘 들면 모르는데 낫이 안 들면 두 번씩 세 번씩 잡아당겨서 안 뽑아지는 머리털 뽑듯이 그렇게 하면서 잘라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오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반 작업을 하면 휴식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때 제일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냉수입니다. 엄청난 땀을 흘리니까 먹을 것도 필요하지만 냉수가 필요합니다. 시골에 얼음이 없으니까 읍내에 나가서 얼음을 사다가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까 주전자에 담아오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다라이에다가 물을 쟁여서 우물물을 퍼서 거기에 얼음을 넣어서 막걸리하고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냉수를 바가지로 퍼서 벌컥벌컥 마시는 것입니다. 그때 그 기분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땀이 흠뻑 흘러서 조갈이 나고 땀을 많이 흘려서 정신이 빙글빙글 돌 정도인데 시원한 냉수를 쭉 들이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온몸에 새 힘이 돋는 것 같은 힘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까 김훈 씨가 글을 썼습니다. 글 제목이 ‘호박잎, 오이지, 새우젓’ 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이지’ 이야기를 하면서 여름에 나른할 때 그때 어머님이 담가 주시던 물컹거리던 오이지 말고 사각사각한 오이지를 차가운 물에 밥을 말아서 그 위에 오이지를 얹어서 먹으면 오이의 상큼함과 그 다음에 시간이 빚을 수 있는 새콤함이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면서 새 힘을 준다. 이렇게 썼습니다. 그런데 아주 맛깔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오이지를 담글 수 있는 여성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냉수를 마시고 나면 확 새 힘이 돋아나면서 내가 설교시간에 잘 쓰는 ‘쇠락’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그 이야기를 듣고 와서 ‘목사님, 쇠락은 다 망가진다는 것인데 왜 그런 기도를 하세요?’ 그 쇠할 ‘쇠(衰)’자가 아니라 아름다울 여자 옆에 물 수변 셋을 더하면 ‘ 물 뿌릴 쇠’가 되는 것입니다. 마당에 아침에 쓰레질을 하면서 물을 싹 뿌릴 때 물 뿌릴 쇠자 떨어질 ‘락’ 입니다. 그렇게 쇠락한 정신이 싹 돋우면서 육체의 모든 것들이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문맥이 앞부분에서는 왕에게 할 의무 그 뒷부분은 이웃 간에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두 개가 분리가 되지만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국 사람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담임목사로 오래 일하면서 함께 일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교역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도 있고 이렇게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 재직들도 있고 많습니다. 교사들도 있고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잊혀 집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도 만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불과 몇 년 안 지났는데 이름까지 가물거리고 기억이 안 납니다. 저 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교역자로 있었는데 약 10년 정도 지나면 이름까지 가물가물합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의 부인 사모 이름까지 가물가물합니다. 간사로 있었는데 약 15년 지났는데 아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 잊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잠깐 만났는데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자기한테 잘해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은 나를 잊어버렸을지 몰라도 나는 잊혀 지지 않습니다. 너무 어려운 시기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입니다. 혹은 모두 시련을 당한 시기에 그 때에 꿋꿋이 그 자리에 서서 나와 함께 해 준 사람들, 잊혀 지겠습니까? 안 잊혀 집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에서 기준은 일을 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어떻게 시원하게 한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당신이 창조하신 예술작품 같은 세계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무슨 뜻입니까?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세상이 그대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좋은 맛에 자기가 열심히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해 놓는 것이 충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자기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고 자기의 일을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사자’입니다. ‘사자’가 무엇입니까?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주인이 사자를 보냈을 때는 그냥 보냈을 리가 없고 임무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 임무를 가지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 사자인데 그 사자가 충성스럽다고 말합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기준과 초점을 그 하나님께 맡겨서 그 뜻이 그대로 구현되기 위해서 최고의 열심을 다하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의 영혼과 인격과 행동까지 일관성 있게 그 사람을 데리고 갈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충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너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일을 시킨 사람이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끊임없이 어긋나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데 어떨 때는 조금 덜 열심히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잡음이 일어나고 끊임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상황이 그 열심 있는 사람에 의해서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옛날에 야구선수 한 명이 있었는데 후크 볼의 명수였습니다. 야구에서 나오는 용어인데 후크 볼은 공이 똑바로 날아가다가 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타석 앞에 서 본 적은 별로 없겠지만 선수들이 서는 그 자리에 서 보면 초심에는 어마어마하게 무섭습니다. 공이 나를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날아옵니다. 적어도 120, 130, 심지어는 160km까지 날아옵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데 내 앞에서 확 꺾어지면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갑니다. 나 같은 경우가 야구하기 좋은 손입니다. 후크 볼의 명수가 있었는데 손가락이 짧았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고민을 하다가 2cm를 성형수술을 해가지고 잘랐습니다. 기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술을 받고 너무 뛸 듯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제야 내가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결국 무엇이냐 하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맞춰야 할 목표가 여러분들을 사자로 부르신 하나님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했듯이 기독교는 혼자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 사람, 절대 충성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충성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길대로 가니 나한테 적응할 사람들은 남고 아니면 나를 떠나라 이런 사람도 절대 충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모셨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으로 말하면 극단적 좌파도 있었고 우파도 있었고 요한과 같은 우레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셀렙 당원들도 있었습니다. 아주 다양한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사람들을 녹여내서 충성스런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요한 빼놓고 모두 순교하잖습니까? 그것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그래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충성스럽다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이 자기를 보내신 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없습니다. 사람한테 일을 시켜보면 똑똑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담임목사한테까지 다 따지고 설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안 그러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동료들은 다 좋아하는데 저는 아닙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준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 진실성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못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 이야기를 해서 좀 미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4학년이 되어서 공부도 못했고 정돈도 못 하고 그래서 내가 회심하기 전에 저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우리 부부가 인정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착합니다. 거짓말을 하려고 그러면 자기 엄마가 그러는데 ‘영래야 너 지금 거짓말하려고 그러지?’ 얼굴에 다 쓰여 있습니다. 내가 그래서 야 너는 하지 마라 너는 안 어울리니까, 너는 말하기 전에 벌써 얼굴이 말하기 전부터 나는 지금 거짓말을 생산해 내려고 합니다. 라고 쓰여 있어서 보인다. 넌 진실하게 살아라 그랬습니다. 엄마가 야단을 치면 어렸을 때 자기 방에 들어가서 막 울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엄마가 화가 나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뭘 잘했다고 울어? 그러면서 대화가 시작이 됩니다. 제가 우는 것은 내가 왜 엄마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해 드릴까?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린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못 해 드리는 것을 괴로워하는 사람만 그렇게 해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때서? 이 정도면 괜찮지, 내 주위에서 나만큼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교구에서 내가 간다고 해 봐, 아마 난리 날걸? 그런 사람은 그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내가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 물질을 낭비하지 않고 더 그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 수 있었는데 그것입니다.
함께 사역했던 어느 교역자가, 그렇다고 해서 나를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마십시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담임목사로 어느 큰 교회로 갔는데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웬만하면 다 써 줍니다. 그래서 사실 외국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써 준 추천서는 믿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절대 마음이 안 들면 추천서를 안 써줍니다. 심지어는 추천자를 잘 못 고르면 최악으로 평을 써주고 추천서가 봉함이 되어서 학교나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는 추천서를 믿습니다. 제가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뭘 써야 할지 머리가 하얗습니다. 그래서 제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짧은 시간 함께 있었지만 나는 그대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니 써주고는 싶다, 어떻게 추천했으면 좋을지 써서 보내라 그러면 내가 도장을 찍어주마. 라고 보냈습니다. 충성의 기준은 제멋이 아닙니다. 그 멋도 없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비록 열심히 일한다고 할지라도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초점이 모든 면에 있어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주님은 나의 어떤 모습을 원하실까? 이것을 생각하면서 그렇지 못한 것이 매일 매일 보여야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그르쳤습니다. 내가 어떻게 더 우리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것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사람이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십니다. 기뻐하는 것을 모두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일마다 그와 함께하면서 놀라운 간증을 기록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사역입니다. 비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가슴이 뜁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셔서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구나, 하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수많은 기록들을 남기면서 사역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던 난관을 극복하고 웬만해서는 사람들이 갈가리 마음이 찢어질 그런 위기의 순간에서 오히려 어려움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통합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성경은 ‘능히’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충성된 사람은. 그래서 이 충성과 함께 항상 따라오는 하나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충성과 짝을 이루는 말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나의 지론은 이것입니다. 지혜롭지 않은 사람은 덜 충성되거나 빗나간 충성입니다. 빗나간 충성은 충성이 아닙니다.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세우고 나 자신을 수립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또 지혜가 안 생깁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지혜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십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충성되면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올바른 지혜를 가지면 그는 충성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은 올바르게 충성되면 반드시 지혜로워지고 올바르게 지혜로워지면 반드시 충성되게 됩니다. 왜 그런지 설명을 하면 지혜를 뭐라고 정의를 내려줬습니까? 지혜가 뭐라고 했습니까? 영원한 사물에 대한 오성의 판단이 지혜입니다. 그러면 이 지혜는 원래 성경에서 ‘성자’에게 속하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에 지혜 없이 계시던 때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영원히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참답게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견한다’라고 하는 것은 의욕이 있기 때문에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욕을 해서 그것을 발견할 때는 그 의욕이 곧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탐색하는 지식과 그 대상과 하나가 되려고 하는 사랑은 나누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지혜를 발견하게 되면 사랑도 함께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성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끊임없이 지혜롭게 일할 때 그 사람은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자기 아집에 뒤틀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래전에 한 설교 속에서 한 이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어가지만 충성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어갑니다. 서서히, 서서히.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살인하고 강도하고 신문에 오르내리는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역자가 안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과 되어 감은 하나입니다. 사람됨과 행함은 하나가 되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밀을 나누면서 살았던 사람들이고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나의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것을 자신의 사역 속에서 보면서 자신을 깎아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더 보석과 같이 소중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