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 두 가지 당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녹취자:이솔
어디엔가 조심하는 표시가 되어 있으면 그것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중국말로는 ‘샤우신’이라고 합니다. 작은 마음입니다. 미끄러질 수 있으니 조심하시오. 아주 마음을 작게 먹고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21장은 종말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거의 결론 부분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조심한다고 하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고 특별히 마음을 쓰지 않으면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된다 이런 뜻입니다. 그 만난 일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 굉장히 힘겨운 결과를 가져오는 나쁜 일입니다. 부자가 될지 모르니 조심하시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지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총에 맞을 수 있습니다. 이게 조심하란 뜻이죠.
마지막 때에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교훈이 근신하라. 조심하라. 잘 살피라. 이런 뜻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신학적으로 종말은 예수님이 오시면서 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 종말에 끝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시간적으로만 끝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 어려운 실현이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일어나게 될 때 그 때는 더욱더 조심을 해야 될 때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일까요? 큰 환란이 일어날 것을 조심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조심해야 될 것은 너희 마음이 둔하여 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조심은 너의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 하라 이런 뜻입니다.
둔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감각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뜨겁고 차갑고 아니면 따가운 것을 잘 느끼던 사람이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없을 때 둔하여졌다라고 말합니다. 신자의 마음은 마치 살까지 벗겨진 피부가 벗겨진 살갗 같아서 죄가 닿으면 쓰라려야 합니다. 마음이 둔하면 죄가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도 크게 아픈지를 모릅니다. 오히려 죄의 지배 아래 있으면 그렇게 쓸고 지나가는 것이 참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이게 결국 마음이 둔해진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방법입니다. 불에 댄 아이가 그 불길만 보아도 두려워하는 것은 그 두려움으로 그 아이의 몸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마음이 죄에 대해서 둔하여지고 나면 그 다음에 인간은 상상도 못할 끔찍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에슐리 메디슨이라고 하는 사이트가 있었습니다. 기억납니까? 미국에서 만든 불륜 사이트였습니다. 3천 800만 명이 가입을 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을 피우세요. 근데 그 사이트가 철통 보안을 자랑했었는데 독기를 품은 해커 집단에 의해서 해킹이 되고 모든 이메일과 프로필이 모두 공개됐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살을 했고 이혼 소송이 줄지었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기독교 지도자 400명이 한번에 사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7만 명이 가입을 했고 캐나다에서는 인구의 6%가 그 사이트에 가입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에 정인양 살해 사건 같은 사건이 나타나는 거죠. 사건의 내막은 더 수사를 해봐야 되겠지만 어쨌든 그 가엾은 생명이 죽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러분들 처음부터 그렇게 나쁘게 지음 받은 사람들이고 태어날 때 천하에 악인들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안 됩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의 사모님이 가정 법원의 판사인데 이혼을 전문으로 하신답니다. 이 목사님이 물어봤다고 합니다.“ 여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혼을 해?” 이 판사 사모님이 아주 쿨하게 “당신하고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이혼해.”
누구나 마음이 죄에 대해서 둔하여지고 나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결한 다윗이 사람을 죽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야의 아내와의 사건이 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마음이 죄에 둔하여지고 났더니 사도 바울조차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겠느냐 탄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죄에 대해서 둔하여지지 아니하도록 하나님 앞에 특별히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별명은 마음 지킴이에요. 예전에는 마음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서 그 마음을 통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지만 이제 주님을 만나서 소희 메타인지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그 마음에 가는 길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이기면서 죄에 대해서 마음이 둔하여지면 그러면 그 죄는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우리를수렁 같은 인생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거죠. 자신이 하나님의 질서를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죄를 짓게 되고 죄를 짓게 되면 그 하나님에 질서를 더 크게 거역하면서 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피해자가 아니라 그것이 메아리처럼 돌아와서 자신의 영혼과 마음에 피해를 주는 거죠. 그러면서 영혼은 갈 길을 잃고 육신은 곤고한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민감함을 잃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마음이 둔하여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난로에 장작을 땝니다. 그 나무가 아무리 토치를 가지고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아요. 토치로 불을 쏠 때에는 불길이 오르다 가도 토치에 스위치를 끄고 나면 새까맣게 꺼져요. 왜 그럴까요? 장작이 아직 마르지 않았어요. 흠뻑 젖어 있는 것을 한 거지요. 그건 연기만 나고 도저히 나무가 타지 않아요.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몇 달 있다 말려서 쓰기로 하자. 그리고 포기합니다. 쓸모없는 사람들을 땔감이나 할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건 불을 때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얘기입니다. 그 땔감도 아무거나 땔감으로 쓰는 게 아니에요. 진짜 쓸만한 나무이여야지만 불에 태울 가치라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주위에 물에 흠뻑 젖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져도 그게 겉에만 새카맣게 타지 속으로 스며들지 않아요. 그래서 죄는 은혜를 죽이고 은혜는 죄를 죽여서 둘이 마음 안에서 서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느냐에 의해서 우리는 죄의 편에 설 수도 있고 은혜 편에 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이에요.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사랑에 감동이 있어요. 나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부딪혀 내가 죽는 비명 소리가 울부짖는 회개예요. 밀려오는 기쁨은 하나님 사랑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이겼을 때에 기쁨이 승리의 기쁨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감동은 아무렇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거죠.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내 영혼이 소생하는 은혜를 누린다면 성도들이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교제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깨닫게 하고 성령을 주시니까 성령의 은혜를 주시니까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이 솟아나는 거지요. 그리고 아 그렇게 주님의 우리 뜻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자신이 도저히 그 사람 따라갈 수 없을 때 그 사람은 시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은혜에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제일 부러운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보다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아무 것 없어도 내가 저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기심이 생기지 않아요. 다만 저 사람도 저렇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사랑하고 행복하게 되었으니 주님이 나 또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오히려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람 사랑은 나누어질 때 사람들이 시샘을 하지만 하나님 사랑은 더 많이 나누어 더 많은 사람이 그 사랑 안에 들어올수록 그 사람은 마음이 더욱더 행복한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사랑에 특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사랑은 세상을 끊임없이 나누지만 하나님 사랑은 이 세상을 하나로 만들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비밀이에요. 이 은혜에 민감한 사람은 얼마나 큰 복이 있습니까? 잘못 살았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그릇 행했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아주 짤막하고 간단한 말씀인데 그의 마음을 스쳐갑니다. 회개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간절한 기도는 그 마음에 불이 되어서 마침내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있는 죄를 죽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런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 신랑의 음성이구나. 들을 수 있는 신부의 귀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신부의 귀에 들리는 그 작은 신랑의 음성을 듣고 신부는 기쁨에 뛰어나가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음성을 기억하고 있고 들을 수 있을 만치 마음이 예민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왜요? 그리워하기 때문이죠.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죄에 대해서 둔감해질 뿐 아니라 은혜에 대해서 둔감해질 때 그때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민감한 마음이 될 때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곤고한 마음으로 발길을 옮겨 예배당에 와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릅니다. 금방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옵니다. 내 마음은 그 은혜를 꽉 붙듭니다.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세상에 사랑할 분이 그분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기에 믿음은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사랑은 믿음의 샘에서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치고 그분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에 가장 뚜렷한 표는 그분의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상황이 나에게 어떤 비관적인 현실을 전달해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힘을 주실 때 믿는 거죠.
아마 제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시련을 만났던 때였습니다. 우리 영내 목사가 돌 때였으니까 뭐 벌써 35년이 넘은 이야기죠. 사면을 돌아보아도 헤어날 길이 없어요. 시련의 연속이에요. 살던 집은 빚쟁이한테 넘어가고 우리는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고 사랑하던 할머니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시고 집은 가난해서 한 학기에 두 번을 학교에서 쓰러졌어요. 영양실조였어요. 아무리 사면을 돌아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아요. 기도했어요. 간절히 제 생에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때가 그때 밖에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진짜 손에 꼽을 정도로 그렇게 기도를 하게 하셨어요. 한번 가서 기도를 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소방차에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됐어요. 그렇게 한 달 반 이상 사람을 만나기도 싫어요. 여러분 고난이 너무 넘치면 사람을 만나기도 싫어요. 그냥 조용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거나 공부하거나 혹은 성경을 카세트에 다 끼고 그냥 운동장을 돌면서 그걸 듣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데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내 마음에 들렸어요. 제가 이런 표현 쓰는 적이 거의 없는 걸 아실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너와 함께 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리라. 순간에 말도 할 수 없는 성령의 큰 임재가 주어지면서 마음이 기쁨으로 벅찼어요. 조금 전까지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 순간 이후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구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마음이 둔하여지면 말씀도 들리지 않고 기도도 들리지 않고 성도의 교제에서 소외감을 느낍니다. 마지막 때 이렇게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조심하고 또 조심해라. 예수님이 21장의 설교를 마무리하시며 이 충고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어떤 마음입니까? 죄에 대해 민감한 마음입니까? 은혜에 대해 민감한 마음입니까? 내가 돌보는 영혼들이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가슴 아프다면 여러분들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고통이 여러분들의 고통이 되어서 쓰라리면 여러분들은 깨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둔하여지면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둔하여 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 짐승이 덫이 있는 줄 알면 걸릴 리가 없죠. 바보가 아닌 한 덫을 놓는 사람은 지나가는 짐승이 늘 지나가는 길목을 찾고 절대로 짐승들에게 눈에 띄거나 냄새가 나지 않도록 위장을 합니다. 그래서 산속에서만 산 짐승들도 덫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언제 올지 알지 못하나 분명히 뚜렷한 징조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은 사람은 알아요. 절대 그들에게는 덫과 같이 임하지 않아요. 언제든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분을 맞이하고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죠. 등불을 예비한 처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둔하여 지면 그 날은 덫과 같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그 덫과 같이 임한 그 날은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이런 시련의 때에는 우리들이 더더욱 하나님 앞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들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우리의 마음이 죄에 대해 은혜에 대해 무디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특별히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용한 시간에 주님을 찾아 기도하고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주 앞에 드리며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어려운 때를 조심하며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사는 성도들이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