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이동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9-10).
이 시편 136편은 대표적인 감사의 시입니다. 그래서 이 136편에 보면 반복적으로 후렴되는 구절이 있는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면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다라는 이야기가 계속 반복됩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재미 있는 것이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후렴구가 아니라 거기에 하나 더 붙는데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선하심이 빠지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계속 나옵니다. 무슨 의미인가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신데 그 선하신 하나님이 이땅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인자하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슨뜻인가하면 사람의 선한것이 사실 겉으로 보면 모릅니다. 물론 인상이 참 선해 보인다 말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또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빗나갈 적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하다고 하는 것은 내적인 성품인데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피조물들과 관련을 맺을 때 인자함으로 나타나는 것 그러면 악을 행하고 주님께 덤벼드는 자를 향해서는 어떻게 나타 납니까? 공의로 나타나겠지요? 너무 비참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긍휼로 나타나겠죠? 그래서 한 하나님이 어떤 사람과 관련을 맺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성품들을 찬란한 빛들처럼 발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인간은 어떻게 살든지 결국은 하나님을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악한자는 악하게 살아서 마지막에 심판을 받음으로서 하나님의 엄격하심과 공의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것이 하나님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언약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인자하심이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집니다. 9절까지가 1부이고 10절부터가 2부입니다. 2부는 훨씬 더 깁니다. 10절부터 26절까지 계속 되는데... 그러면 1부와 2부를 나누는 분수령이 무엇인가? 그것이 감사의 이동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보면 전부 다 자연에 관한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룰 들자면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땅을 물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다음에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로 낮을 주관하신 이에게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신 이에게 하면서 자연에 대한 하나님을 향한 찬미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보면 우리가 태풍도 엄청나게 겪었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선하시면 티끌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지구가 오랬동안 많은 사람들이 살아 가지만 직경 10kg짜리 덩어리가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를 때리면 지구는 확실하게 멸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구가 지구의 반지름만 6,400km이고 지름이 13,000km되는 엄청난 큰 덩어리 인데 어떻게 말하자면 요만한 돌맹이 하나 날아 온 것인데 그 짱돌 하나에 그렇게 멸망할 수 있느냐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쾅하고 부딪히는 순간에 어마어마한 폭발력과 함께 화산이 치솟아서 일년안에 핵겨울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이 완전히 먼지로 뒤덥혀서 햇빛이 차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양빛에 민감한 모든 식물과 동물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 남는 생물들이 바닷속에서 축축한 곳에서 사는 그런 바다 밑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사는 생물들은 끝까지 오랫동안 살아 남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마어마한 추위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룡들이 많이 살았다가 멸종된 이유를 그런식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사실은 주도적인 의견입니다. 우주에서 날아온 물체가 부딪혀서 충돌을 해서 폭발을 일으켜 엄청난 겨울이 왔기 때문에 결국 생물들이 멸종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모든 우주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한 보호와 인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전에 미국에 있는 과학자들이 태양이 있고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이렇게 9개가 나가는데 지구는 세 번째에 있습니다. 화성은 아주 작은 것이고 목성 토성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실험을 했습니다. 만약에 태양이 있고 9개의 별 마지막에 명왕성은 짤렸던데 8개의 별들이 있는데 규칙적으로 돌고 있고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데 만약에 바깥에 있는 목성과 토성이 없으면 지구가 어떻게 될까 그것을 컴퓨터에 넣고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두개가 나왔습니다. 목성과 토성이 없으면 지구는 생각보다 빨리 멸망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주에서 날아 오는 운석들이 때로는 어마어마한 운석들이 날아 와서 여러해 전에는 그것이 목성에 부딪혀서 불길만 1,980km가 솟아 올랐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수없이 날아 오는데 이것이 지구의 80배쯤 됩니다. 이것이 날아 오면서 수많은 파편이 지구를 감싸면서 돌아 가면서 그 무수한 파편을 다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개가 없어지면 그 파편이 지구로 날아 오는 것입니다. 신기합니다. 두 번째 특이한 점은 시뮬레이션을 하니까 지구가 목성과 토성이 없으면 지구 궤도가 점점 달걀 모양으로 변하다가 푱하고 날아가서 우주의 미아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설계 자체가 얼마나 지적이고 치밀한 설계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운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훌륭한 증거이고 불신자들이 그것을 몰라서 그렇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 훌륭한 증거이고 사람들이 그 우주속에서 자연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들을 찿아 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감사의 제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2부의 감사의 제목에 의하면 그것은 달걀의 흰자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감사의 제목속에 가장 빛나게 하는 핵심이 있었습니다. 그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애굽에서의 사건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 내린 십대 재앙중에 마지막 재앙입니다. 그래서 장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출애굽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이 되는 것입니다. 잘 들어 보십시요. 아홉 번째 재앙이 어두움이었습니다. 그 어두움속에서 두려워 떨다가 그 다음에는 장자가 죽어 가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어두움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저쪽에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이루어 졌고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사건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9절과 10절 사이에 줄을 긋는다면 이쪽은 자연이고 은혜이며 이쪽은 일반은총이고 특별은총이며 이쪽은 창조이고 구속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속과 창조의 관계는 창조는 배경이고 그 한복판에 구속이 있는 것입니다. 구속이 담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뿔 형태로 있다고 생각 합니다. 원뿔 형태인데 창조와 구속은 나뉘어 지지 않습니다. 구분은 되는데 나뉘어 지지 않습니다. 창조가 없으면 구속은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구속은 창조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뉘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창조와 구속의 관계가 창조가 있고 구속이 담장을 쌓으면서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두개가 뭉개져서 창조와 구속이 섞인것도 아니고 그러면 구분은 되지만 나뉘지 않으면서도 핵심이라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원뿔형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넓은 산아래 같은 것들이 전체가 창조라면 그것의 핵심이면서도 높은 점에 있는 것이 구속입니다. 그래서 창조로부터 구속으로 올라오고 구속으로부터 창조로 내려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커다란 섭리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와 구속은 단절되지 않고 창조 되었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창조 되었기 때문에 타락할 수 있었고 타락되어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 하니까... 구속을 통해서 창조의 목적을 떠났던 이 세상을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구속은 다시 창조를 향하여 창조를 완성 시키기 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는 소위 이중의 지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는 것은 알아야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나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분을 찬송하고 그분께 감사를 올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것 만큼만 감사하지 하나님 알지 않고는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왜 태어 났습니까? 공부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세계를 배우고 세계와 하나님을 배우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 인간을 배우기 위해서 그리고 그 세 대상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배워지기 때문에 태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는데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크게 두가지 국면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창조주로서 그 다음에 구속주로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적 순서로 보면 제일 먼저 우리들이 갖게 되는 것은 창조주로서의 지식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신앙이 없어도 높은 산에 아주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 것을 보면 거기에서 신앙이 없는 사람도 조물주를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운 금강산에서의 노래 가사에서 누구이 주제런가... 누가 그렇게 재주를 부려서 만들었는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우니까 그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것들이 창조주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은 하나님을 온전히 보여 줄 수 없는 그런 불구의 지식입니다. 누구도 그 자연의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며 그 분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죄인이며 그 죄인된 우리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는 이런것들을 자연적인 지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구속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창조주에 대한 지식이 먼저인데 희미해져서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했다가 구속주에 대하여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구속주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될 때 그 구속주는 결국은 창조주는 창조를 통해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시지만 구속주는 구속을 통해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확실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다시 창조의 세계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때 예전에 구속주에 대한 지식이 없이 창조 세계를 바라 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아주 섬세한 솜씨와 살아계신 증거를 우주와 자연속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창조주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세계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쭉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면 창조주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가려 했다가 실패해서 희미했는데 잘못된 길로 빠지니까 이제 각종 이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신론에 빠지거나... 구속주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위에서부터 내려 올 때 그림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니까 구속주가 더 위대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속을 찬송하고 나니까 창조가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사람에게는 점점 더하여지고 없는 사람에게는 점점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식들이 증대해 지는 것입니다. 이런 지식들의 뻗어 나가는 증대의 정 가운데에 구속주를 알려주는 가장 훌륭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집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반학문의 지식속에서 펼칠 때 그때 성경의 진리가 학문속에 들어 갈 때 그 학문은 정말 아름답게 살아 나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그런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를 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전깃줄을 깔고 등을 매 달았는데 이것이 세상의 학문이라면 전기를 집어 넣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진리를 집어 넣을 때 찬란한 빛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감사 제목이 처음에는 창조 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속으로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면 십계명이 두 번 주어 집니다. 출애굽기에서 주어지고 신명기에서 반복이 됩니다. 그런데 신명기에는 이 십계명을 지켜야 되는 이유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창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에 넘어 가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셨기 때문에 이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숙한 후에 마지막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사역을 마칠때쯤에 가서는 하나님의 이 구속의 사건에 대한 큰 감격이 느껴질 정도로 이 사람들이 성숙한 신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에서 시작한 십계명이 구속으로 시작하는 십계명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도 예전에는 창조에 대한 휴식이었는데 후에 가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속해 내신 그 구속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안식일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구속에 대한 감사가 이스라엘 백성의 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속에서는 해와 달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서서히 밀려나고 그 다음에 애굽에서 우리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바산과 옥의 군대를 격파하시고 이스라엘을 광야 가운데서 인도하신 하나님, 가나안의 일곱족속을 멸하고 그 유업을 얻게 하신 하나님, 요단의 강물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메아리 치는데 전부 다 구속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니까 구속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하고 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하신 것인가 하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찾은 사람이 그 사람들만이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살아 있는 것이 죽을 것 같은 고통, 죽음을 매일매일 생각하는 비관주의자들에게는 창조는 잔인한 것일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제목을 창조에서 구속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해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먹고 살지 않았습니까?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 평안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이고 직장이고 영위하고 살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바로 창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구속의 은혜, 십자자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해 주신 은혜, 그 사랑을 더 느끼며 살게 해 주신 은혜, 말씀에 붙잡혀서 생활하게 해 주신 그 은혜, 교회를 주셔서 주님께 봉사하고 풍성되게 살게 해 주신 은혜,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감사가 우리속에 뿔과 같이 솟아 날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힘 주시고 건강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아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감사를 두가지 방식으로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고 사람들을 향해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세미나때 배울 보에티우스라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만이 아는 이 기독교 신앙을 이교도들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사람들과 어떻게 이 기독교적인 경건을 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결국 무엇인가 하면 비난 받지 않은 탁월한 도덕적 모범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고백하고 그래서 더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 그것을 또한 사람들에게 고백합니다. 가족들에게 비난 받지 않는 그런 탁월한 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 제가 이야기 하지만 추석날 시집온 사람들은 추석날 전날이라도 가든지 아니면 한두시간이라도 다른 형제보다 더 먼저 가서 손 담구고 더 일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기쁨 속에서 그렇게 가족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덕스러운 모습 그 자체가 신앙이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평소에 좀 아껴 쓰다가 그렇게 가족들을 만나고 어려운 형제들을 만나고 하면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무엇이라도 좀 얻을것이 있으면 나는 덜 얻어 갖고 다른 형제들에게 베풀고 로이드존스 목사님도 가족을 구원하지 못해서 애닳파하는 자기의 교인들에게 늘 그렇게 충고 하셨습니다. 가족을 전도하는 길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꼭 붙들지만 사소한 것은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양보하십시요. 그것이 복음이 전파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넘칠 때 우리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 휴가나 갈까 하지 말고 찿아 뵙기 바랍니다. 그리고 "목사님! 시골에만 내려가면 죽을 맛이에요 전부 제사 지내고요 불신자뿐이어서 너무나 힘들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예수 믿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제사 지내면 어떻습니까? 옆에 가만히 있으면 되지... 절 하지 말고... 그리고 가족들과 웃고 따뜻하고 명랑하고 대부분 가족들이 신앙에 시비를 걸 때에는 그 사람과의 신뢰의 관계가 깨졌을 때 신앙에 시비를 거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이야기 해서 인정머리가 없어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어른 못 알아 보고 가족들 챙기지 않고 하니까... 그리고 늦게 가서 시집 금방 온 새댁이 한다는 소리가 "왜 이렇게 늦었어?" "아! 구역에서 봉사하느라 늦었어요" 그 사람들이 구역이 뭔 구역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하철의 구역인지 동네 구역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주님 의지하고 그렇게 살아 가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교인 하나가 있었는데 부인이 무지하게 상처가 많았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어머니가 돌아 가셨는데 남편이 상주인데 상주방에서 인사를 해야 하는데 상복을 벋더니 갑자기 나는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한다고 갔다고 합니다. 그것이 평생에 못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 그렇게 가방 메고 나갈 때 성경구절 하나 생각했죠?" "네" "이 구절 아닙니까? 죽은 자들은 죽은자들에게 장사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어! 맞는데요" "적용이 틀렸습니다." 우리가 거기 있는 것은 죽은 사람을 지키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아직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할 가족들... 그래서 항상 덕스러운 삶의 모본을 보이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서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와 구속에 대한 감사를 간직한 사람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