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느니라”(눅1:80)
녹취자: 이은정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특히 본받고 싶은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때는 사도바울을 좋아했는데 아내와 결혼을 하고 나니 아내는 다윗의 팬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조금 좋아하다 보니까 다윗보다는 조나단이 훨씬 훌륭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바울 못지않게 ?? 본받을 만한 느낌이 들었고, 이렇게 오락가락하면서 성경을 읽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30년 전쯤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람의 삶과 사역이 저의 본보기가 되도록 마음에 확정하였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이 사람의 생애는 저에게 깊은 감화를 주고, 하나님의 사람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무엇이어야 하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 세례요한이 자라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 나타난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저는 이 80절 한 절을 가지고 오늘 1학년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줄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라는 책을 6개월 만에 썼습니다. 이 시간에 그 모든 내용을 말할 순 없지만, 개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는 어쨌든 광야로 보내어졌습니다. 누구에게서 양육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에세네파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마는 그러나 사실은 이후에 연구할 연구결과로 보면 에세네파 사람들도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파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예루살렘에 종교에 염증을 느낀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서 광야에서 양육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아이라고 번역된 파이디언은 어린이라는 뜻이지만 성경에서 보면 베이비라는 뜻도 자주 쓰이기 때문에 아주 어린시절에 유아기에 광야로 보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자랐고, 그것이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 등극하기 전에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그가 선지자로 나타날 때는 완전히 능력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서 예수 오시는 앞길을 사람의 마음에 예비할 수 있는 위대한 선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오시는 앞길을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의 길을 낼 것이 이미 이사야서에서도 예언이 되었고 구약의 성경 말라기가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끝나고 신약이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을 보면 정말 위대한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자 중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느니라 라고까지 극찬을 한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몇 편의 설교를 남기고 그 목이 떨어져 죽임을 당하였으나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치던 손가락과 같은 그의 사역은 우리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사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대충 살다가 죽으려고 신학교에 들어온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설령 그렇게 못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이 조국교회를 품고, 온 세계 교회를 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씀을 전하다가 죽어야 하겠다고 이 길에 들어섰을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목회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습니다. 목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피 뿌리고 죽어간 선지자들의 후예이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간 사도들의 후손이다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자의 길입니다. 해서 목회자는 특별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평신도와의 소명이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똑같은 종류의 소명이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매우 특별한 소명이라고 마르틴루터는 말했습니다. 마르틴루터는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목회자가 되는 것은 독서하고 사색함으로써가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 죽고 다시 살아남으로써 목회자가 된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시대는 세례요한이 살던 시대만큼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정말 특별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내고 인생을 바꿔놓고 세상을 변화시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신학교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그런 목사가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여러분들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은 아예 핏줄을 타고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를 움직였던 위대한 인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설적인 18세기 영국의 설교자 조지휫필드는 술집의 보이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을 움직이는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결국은 핏줄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새로운 사람으로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적인 신학교의 졸업생 이어야하는 동시에 이런 영적인 계보를 잇는 광야의 신학교의 졸업생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교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있는 것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를 경험함으로써 그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준비를 해야 될까요. 첫째는 육체적인 준비입니다. 사람들은 웃습니다. 무슨 목회자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에 육체의 능력으로 오는 게 아닌데 무슨 육체적인 준비가 필요할까. 여러분같이 젊은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나이가 55세 될 때까지는 평생소원이 병원에 한 번 입원해서 문병을 받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5세 넘어서부터 11년 동안에 12번을 입원하고 10번을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 생애에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한 번의 수술은 저의 체중을 18kg이나 감소시켰습니다. 여전히 저는 건강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가운데에 목회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젊어서 열렬히 운동을 하십시오. 가능하면 아주 강도가 높은 운동을 하십시오. 체조 정도가 아니라 격투기 같은 것을 하셔서 그저 평범한 사람 3대 1 정도 상대해도 한방에 눕힐 정도로 평생 그 기술은 쓰지 않기로 하되, 그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그리고 철저하게 운동을 하십시오. 40세가 되기 전에 인생이 갈 방향을 확고하게 정해야 하고 30세가 되기 전에 건강에 대한 철학을 가지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빌려 쓰면 되고 지혜가 모자라고 겸손하면 지혜 있는 교인들에게 지혜를 구해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건강은 누구 것을 빌려서 쓸 수가 없습니다. 장로님들도 여기와 계시지만 교회는 어떻게 보면 한없이 너그러운 곳이지만 어떻게 보면 한없이 야박한 곳입니다. 6개월 목회자가 아프면은 개소주를 해오고 녹용을 달여오고 한약을 지어오지만 2년쯤 아프면 언제쯤 교회를 떠나 줄까라고 생각을 하고 3년씩 목회자가 병상에 누워있는데 회복을 기다려주는 교회는 없습니다. 건강은 빌려 쓸 수 없습니다. 목회자는 그런 의미에서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운동하셔야 합니다. 철저하게. 그래서 체강의 체력을 가지고 그리고 목회 전선에 나가고 목회자가 된 다음에도 열렬하게 운동을 해서 건강을 활기차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만 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육체의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간음의 죄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이 건강한 육체와 함께 순결을 지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격적 준비입니다. 목회자는 설교는 본문이고 목회자의 인격과 삶은 각주입니다. 본문이 좀 어려워도 각주에 설명이 잘 돼 있으면 학문적인 깊이를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자신이 목회에서 사람 만들고 싶은 그 목표를 이미 살아가려고 애쓰는 본보기를 보여줘야 합니다. 고신에 왔으니까 고신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다행히도 저는 박희찬 목사님을 담임목사님으로 모시고 횟수로 7년 동안 내수동 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분이 고신 출신이었고, 그분의 스승이 한상동 목사님이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분의 성함을 알까 모르겠습니다. 어출옥 성도이시죠. 그리고 고신의 학장을 지내셨었습니다. 또 놀랍게도 제가 신대원 시절을 조교로 있으며 모셨던 이상근 박사님이 고려신학교에 또 교수셨습니다. 전 재산을 고신을 위해 내어놓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 숨겨진 일화들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박희찬 목사님은 한상동 목사님집에서 6개월 동안 함께 생활을 하며 그분의 삶과 인격을 보았다고 합니다. 한상동 목사님은 대학교육을 못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결국은 학교도 예과로 들어오셨어요. 일찍부터 들어오자마자 개척을 하셨습니다. 개척하면서 공부를 하니까 매우 어려웠겠죠. 성경 신학이면 설교라도 한 편 쓰고 가면 설마 교수가 빵점을 주겠습니까마는 시험이 영어시험이었습니다. I’m a boy가 입력이 안 됐는데 출력이 될 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주여” “주여” 하면서 한상돈 전도사가 답안지에 손을 못 대고 있는데 옆에 학생이 계속 시험지를 밀어주는 겁니다. 이 순진한 한 전도사는 ‘이 사람이 게를 먹었나, 왜 이렇게 삐딱하게 앉아서 왜 이렇게 시험지를 자꾸 이리로 미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숨 쉬는 전도사가 불쌍해서 그것 좀 보고 쓰라고 보여 준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백지로 덮고 일어나서 뒷산에 올라가서 회개했답니다. ‘하나님 평소에 제가 어떻게 살았길래 나의 가장 가까운 학우가 영어답안지를 보여주면 뱉겨 쓸 사람 정도로 나를 알고 있었으니 이런 내가 어떻게 목사가 되겠습니까 하고 회개를 했는데 영어 실력이 좋아서 시험지를 보여준 그 학생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영어시험을 빵점 맞은 그 한 전도사는 후일에 고신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결국은 목회자의 중대한 범죄 혹은 교인들의 모함 빼문에도 일어나고 교회와는 상관없이 바깥에서 흔들어놓는 정치에 의해서도 교회의 분쟁이 발생하지만 사실은 절반 이상의 많은 문제들이 꼭 죄라고는 할 수 없는데 평소에 목회자가 인격적으로 부족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그것들이 쌓이고 쌓였다가 터지면서 결국은 교회에 갈등이 촉발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가 완전한 인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끊임없이 닮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로보트 맥체인이라는 영국의 경건한 설교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제가 할 얘기가 가장 많은 지성적인 준비입니다. 목회자는 진리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진리는 성경이 그 진리의 핵심입니다. 그렇지만 성경만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이 진리의 핵심이고 그 성경의 진리는 모두 가지처럼 뻗어 나가서 그래서 이 세계 안에 깃들여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진리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어거스틴의 말을 우리는 상기해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의 파편들을 함부로 조직하여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쓰고 있기 때문에 학문이 발달해도 그 학문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교의 신학을 배우면서 헤르만바빙크의 실재론에 대해서 공부했을 것입니다. 바빙크의 학설에 의하면 인류가 학문을 통해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스도가 그 모든 사물 안에 실재해 계시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영국의 체스터턴 이라는 사상가는 이 세상은 난파된 옛날 보물섬과 같다고 했습니다. 언제 파손되었는지 모르는 보물섬을 발견하면 거기서 발견되는 모든 그 유물들을 가지고 그 시대를 추정해 가듯이 세상에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사물은 창조되기 전 하나님의 관념 안에 있었고, 관념 안에서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통일성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은 태어나고 죽고,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고 사라지면서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입니다. 진리를 다루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시작할 때부터 지적인 기반이 그런 걸 다루지 않는 사람보다 우월하면 너무나 좋습니다. 그러나 현재 형편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들어오고 나서는 열렬히 공부해야 합니다.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요. [신학 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라는 책 속에서 제가 언급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꼭 해야 될 신학적인 공부의 준비를 몇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첫째는 우선 크게 3가지 분야인데 역사와 그리고 조직신학과 성경 신학 그리고 실천신학 이렇게 4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여러분은 원어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열렬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원어를 공부하지 않고 설교를 하겠다는 것은 마치 해군이 바지에 물 안 묻히고 바다에서 전쟁하겠다고 하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지금 젊은 시절에 열렬하게 그리스어 그리고 히브리어 그리고 아랍어까지 공부하고 할 수만 있으면 고대 그리스어 공부를 해서 신학 시대의 문헌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두고두고 저의 충고에 대해서 감사할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에 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몰두해서 히브리어 성경 전권을 3분의 2 가령을 모두 파싱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몰두한 세월은 2, 3년밖에 안 됐지만 지금도 설교할 때 강단에서 펼쳐보는 히브리어 성경은 나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공부하셔야 합니다. 실력이 닿으면 현대어로써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그리고 고대어로써 가능하면 여러분들이 우가리드어 수메르어, 아카드어 같은 것들도 공부해서 학문의 지경을 넓혀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조직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사상의 근간이 되는 조직신학을 철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학자를 골라서 그 신학자들을 몰두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사람에게 푹 빠져서 한 몇 년을 그 사람과 함께 씨름하며 그 사람처럼 사색하면서 읽어가는 것이죠. 열렬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덜자고, 덜 놀고, 덜 먹고, 그리고 낮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른 것은 하나님 앞에 커다란 죄입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주위에 있는 친구를 보면서 자기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의 경쟁 상대는 세례요한과 모세와 엘리야와 엘리사와 사도바울과 사도 요한과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어깨를 겨누면서 광야의 신학교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책 속에 묻혀서 여러분들이 살아야 합니다.
법조인들의 경험에 의하면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리갈마인드가 형성이 돼야 하는데 평범한 사람의 경우 리갈만인드의 형성은 하루에 열 시간씩 책을 읽어서 3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theological mind는 얼마나 걸릴까요. 저는 한 7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미친 듯이 공부해야 합니다. 진짜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소명이 아닌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깊이 여러분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준비입니다. 세례요한이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광야에서 자랐는데 드디어 위대한 설교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선지자들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일들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3장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 요한에게 임하였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똑같은 선지자들에게 거의 예외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누구누구에게 있었더라 –우리말 성경에서 임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아들도 총신을 마치고 미국에서 학위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밤마다 아들을 하는 기도 가운데 빼놓지 않는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하는 사람이 되라 이후에는 신학자가 되든지 목회자가 되든지 선교사가 되든지 난 상관없습니다.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하지 아니하면 그 무엇을 해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하면 무엇을 하든지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이런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소위 그가 첫 번째 설교를 한 것은 신도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 모래바람만이 있는 광야에서 그는 고고한 외침을 시작했고 그것이 진리의 말씀이니까 도시에 있는 사람이 그 광야의 벌판에 한가득 모여서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준비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십시오. 특별히 자신의 생애를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능력을 받지 않으면 내가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열렬하게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아무 데나 가서 잘 안 가르쳐드리는데 고신 이니까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약신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구약으로 교수가 됐었지만, 이후에 청교도들을 만나면서 저의 관심사가 바뀌어서 역사신학과 조직신학, 그리고 철학 그리고 교부 학 등으로 관심사가 옮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따가 2, 3학년 학생들이 받아가게 될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은 그런 저의 학문적인 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결심이라는 것이 항상 무너지기 쉽습니다. 이런 설교를 듣고 나서 총신학생들이 정말 미친 듯이 공부하는 한 학기가 있었습니다. 라틴어 선생님이 클래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잘못 들어간 줄 알고 뛰어나오셨어요. 항상 15명 등록하던 라틴어 스쿨에 80명 학생이 모여서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여러분 라틴어 꼭 하셔야 합니다. 저는 50이 넘어서 라틴어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젊은 나이에 라틴어를 꼭 하십시오. 그래서 라틴어 원전들을 천천히라도 읽을 수 있으면 신학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여러분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걸 결심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한 학기 동안에 여러 명이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시킨 대로 하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는 이거 못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심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 일이 저에게 그 결심을 불타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그것은 전기를 읽는 것입니다. 위대한 위인들의 전기를 읽는 것입니다. 기독교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내가 본받아야 할 표준을 이 시대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 그리고 또 심지어 중세 신학자들 그리고 또 종교개혁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에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과 그리고 18세기 신학자 들중에서도 본받을만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가르쳐준 고김이보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늘 책을 보니까 사모님이 뭘 그렇게 책만 보냐고 나하고 놀자고 그랬더니 천 권을 읽어야 한 권의 책을 읽어야 책을 쓸 수 있어 여보. 그분의 정의에 의하면 본분은 읽어야 할 책을 읽는 것이고 휴식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휴식시간에 전기를 읽으십시오. 마음을 불태우십시오. 그리고 열렬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준비하고 그 광야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 성령의 능력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들의 설교가 변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설교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꼭 쓰임을 받아서 다음 세대의 한국교회가 여러분 때문에 은혜의 단비를 누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