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본 자의 증언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 19:33-35)
녹취자: 양현정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마지막 광경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6절에 보면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마지막을 목격하고 증언하고 있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이 기록은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마가를 비롯해서 복음서 기자들은 자기를 등장시킬 때 삼자화시켜서 등장하는 화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라고 했을 때 여기에서 본 자 그 ‘자기’라는 사람은 바로 목격자인 요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했는데 왜 요한은 오늘 이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마지막 광경, 그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요? 스토리는 이렇게 된 것입니다.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주님을 체포되었고 심문을 당하셨고 그래도 멀찌감치 따라가던 베드로도 붙잡혔을 때 거짓 증언을 하며 예수와 자기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알 듯이 새벽에 닭이 울 때에 밖에 나가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시기 전 브라이 도리온이라는 왕궁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가셔서 매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시고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거기서 마지막 말씀을 남기실 그때까지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십자가에 남기신 세 번째 말씀에서 요한을 향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습니다. 결국 그때에는 요한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요한도 모든 제자들과 똑같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가 나중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씀을 받은 유일한 제자가 되었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그 모든 광명을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을 따르던 그 여자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지켜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 사람이 아니면 증언할 수 없도록 그렇게 생생한 묘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도다” 하고 영원히 떠나가셨습니다. 완전히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확인하고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 창은 옆구리를 관통하여 심장을 터뜨렸던 것 같습니다. 결국 거기서 물과 피를 모두 쏟으셨습니다. 그 광경을 생생하게 이 요한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증언이 참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았고 이 요한복음을 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왜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를 이미 알았을 때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인 줄 알고 그 분을 믿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증언하는 삶입니다.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에 죽고 예수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들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목적도 없이 이 세상을 방황하다가 쓰레기처럼 죽어갈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진노의 자식에서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고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죽어도 다시 부활할 것을 굳게 믿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니 우리가 그 분께 접붙여졌으니 우리도 부활할 소망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죽음을 통해서 슬픔이 많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단 사실을 영광중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모든 거룩하고 진실한 삶은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그 동기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를 보며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이신지를 깨닫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 사랑에 사무쳐서 그래서 이제는 자신이 자신의 것이 아니요,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자기의 사는 것이 자기가 산 것 아니요, 자기 안에 오직 예수가 산 것임을 깨달으며 산 것입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앙적으로 방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리저리 흔들리고 쓰러지고 넘어지며 혹은 불신자보다도 더 나쁜 죄를 짓고 불신자 때보다도 더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십자가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감격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헌신된 삶의 원천이며 그 원천으로부터 샘솟는 사랑으로 우리가 죄를 이기고 세상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시련과 역경에 처할 때 그 고통을 통하여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또렷히 우리에게 체험될 때 우리는 그 힘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더 고통 받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통만 보이는 것이니 이는 십자가에 대한 경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기심에 사로잡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나면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대상도 없는 이 세상과 막연한 사람들에 대해서 원망과 미움을 품게 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되돌아보더라도 더 큰 시련과 고난의 때에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 모든 시련을 이겼습니다. 성화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너무나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현재적인 십자가 경험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고난을 통해 예수를 생각하며 그분의 고난을 느꼈고 예수와 함께 죽어가는 것만큼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는 그 충만한 부활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약한 것이 오히려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제목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죽음을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우리의 죄도 함께 죽으며 그리스도와 더욱 뜨거운 사랑으로 연합되었으니 꽃길을 걸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을 걸을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나의 당하는 고난을 은혜의 기회로 삼았고 시련을 만날수록 우리는 나를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셨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시련을 기꺼이 감당하며 그 속에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칭의 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죽으시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 십자가에 못 박혀 남기신 일곱 마디의 유언도 요한을 비롯한 다른 목격자들을 통해 들어야 했고 마지막 숨을 거두신 후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모두 흘리신 그 생생한 광경을 오직 요한 한 사람만 사도들 앞에서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증언이 있을 때마다 도망갔던 모든 제자들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자신들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주시고 마지막에는 자기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건만 그들은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분 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그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저주를 한 몸에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홀로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제자들 중 유일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는 날까지 자기를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밧모섬에 갇혀 외로운 섬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고 그리워하는 성도들로부터 교제가 단절된 가운데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이 마지막 날에 될 위대한 계시들을 가르쳐주시고 그에게 그 계시를 증언하라는 사명을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육신으로는 유배를 당하여 죄인으로 고난을 받으며 그 밧모섬에서 인생의 노년을 보냈으나 그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어린양의 보배피의 증인으로서 자애로운 양심이 되어 아버지 앞에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장래를 바라보며 그는 환희에 가득찬 채 주님께로 가까이 갈 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사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짊어진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종종 홀로 조용히 내 자신을 생각할 때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 혼자 불행한 것처럼 눈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극한 고난을 당하며 죽음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위해 순교의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만나고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모셔드렸을 때 우리가 이 세상에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이제 이렇게 아무 희망이 없는 날 위해 예수 죽으시고 이 흉악한 죄인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그럴수록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때도 가난했고 그때도 역경이 있었고 그때도 시련이 있었고 그때도 외로웠고 그때도 질병이 있었고 그 때도 되는 일이 없어서 고통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나의 것이 되고 내가 예수의 것이 되자 우리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우리는 이 세상을 작별하여 주님께 갈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잘 살았기 때문에 훌륭하게 섬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 우리를 부인하지 않으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감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꽃길을 걷게 하십니까? 하늘에서 복을 쏟아 주시고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게 하십니까? 그렇다면 요한은 왜 순교의 길을 갔고 예수를 그렇게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왜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고난안 주실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시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모르시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로 가까이 다가갔던 모든 날, 나의 마음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의 피묻는 십자가만 붙들던 모든 때에는 우리가 꽃길을 걷던 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또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세속의 기쁨이 아니라 신령한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살아가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우십니까? 자신의 고통을 보지 말고 고통받는 이웃을 보십시오. 여러분보다 고통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를 보며 나의 십자가는 아직도 가볍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며 그 영혼을 사랑하고 그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십자가가 얼마나 가벼운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위로를 받아도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모두 버리시고 죽으시면서 더 행복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그를 위하여 진심으로 염려하며 그의 영혼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 기도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모든 고난의 골짜기를 하나님 찬송하며 걸을 수 있습니다. 마라와 같이 쓴 물을 머금어야 하는 그 곳에서 미움과 원망을 쏟아놓는 사람들은 자기 십자가를 버리고 고단한 인생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걷는 사람들은 그 고난의 골짜기에서 하나님 찬송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게 하시는 이 은혜가 얼마나 고마운지를 깨달으며 눈물로 감격의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고통, 나의 괴로움, 나의 시련 이것만 바라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 보십시오.
어떤 한 청년이 예배 시간에 계속 졸고 있었습니다. 설교하는 목사님이 참다 괴로우니 “이보게 청년, 그렇게 졸지만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그 말을 듣고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전설적인 복음 전도자가 된 젊은이가 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영국의 스펄전 목사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많아도 해답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를 믿고 그 십자가를 붙드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으로 그렇게 살리시니 여러분들이 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