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그 길을 가려나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 1:80)
녹취자: 이새봄
성경을 읽으면서 저는 딱히 본받아야 할 인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도바울을 한때 좋아했지만 결혼을 하니 아내가 다윗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바울보다 바나바가 더 훌륭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다윗보다는 조나단이 더 나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쯤, 제가 이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모시는 앞길을 예비한 선지자로서 그가 한 일이라고는 몇 번의 설교를 했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을 따라서 예수님 오시는 앞길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만들어놓았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구약이 이 사람에 대한 예언으로 끝나고 신약이 이 사람에 대한 출현으로 시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면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광야에서 철저하게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아이가 자라매 심령이 강하여지고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었는데, 왜 이 아이가 광야에서 자랐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다양하게 추측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의탁할 때가 없어져서 보내졌거나 혹은 아버지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이 타락한 환경에서는 이 아이가 배울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해서 보다 더 순수한 신앙 공동체에 이 아이를 위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추측할 뿐이지 확정지을 증거는 없습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아이가 빈들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파이디언(παιδίον)’이라고 되어 있는 이 그리스어 단어는 ‘베이비(baby)’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고 혹은 ‘어린이’라는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시기 역시 우리들이 특정할 수가 없겠습니다. 아무튼 이 아이는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홀로 자랐을 리 없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들판에 뛰어다니며 꿀이나 따 먹고, 그리고 사냥이나 하는 그런 삶으로 그의 과거가 채워졌다면 결코 예수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한 위대한 선지자의 삶을 살지 못했겠죠.
무슨 준비를 했겠습니까? 확실한 것 하나는 그 일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 동안에 이루어졌고,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 그 사람은 불꽃같은 생애를 잠깐 동안 살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신이 준비되는 기간을 가졌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역시 이렇게 언젠가는 이스라엘 앞에 나타날 때가 있을 텐데 그때까지 여러분들이 어떻게 준비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안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준비하시는 사람을 폐기처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은 반드시 당신이 쓰고 싶은 만큼 사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사용받기는 원하고 실제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준비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거죠. 허드슨 테일러는 그래서 말했습니다. “준비되지 않는 헌신은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자, 그러면 무슨 준비를 우리들이 하여야 할까요?
우선 첫째는 육체적인 준비입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 목회의 길을 가든 선교의 길을 가든 남에게 빌려 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머리 좋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돈이 부족하면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은 남에게서 차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든 목회지에서든 여러분들이 건강이 도저히 그 직무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되면 할 수가 없고, 그리고 여러분들은 물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공부해야, 철저하게 육체적으로 단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캄보디아에 있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의료팀을 가서, 조직해서 가서 그래서 검진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200여 명의 선교사들을 검진했는데 그 중 8명이 신속히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 합니다. 40이 되기 전에 인생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되고 30이 지나가기 전에 여러분들은 건강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됩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타고난 체력 덕분에 저는 마음껏 나 자신을 소진하기만 하고 살았습니다. 제가 잘, 학교에 가서 한심하게 여기는 학생들이 족구하고 탁구 치는 학생들입니다. 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공부해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지금은 후회합니다. 여러분 열심히 운동하십시오.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하십시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남성 혹은 여성이라면, 그리고 여러분처럼 젊다면 좀 더 과격한 운동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 세 명 정도는 한 번에 눕힐 수 있을 정도의 그런 무술의 실력을 익히겠습니다. 사용하진 않더라도 말입니다. 철저하게 운동하십시오.
그럼 그렇게 언젠가는 어마어마한 힘을 쏟아야 될 때가 오는데, 그때까지 육체적으로 단련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충분할까? 아닙니다. 순결하지 않은 육체는 육체가 아니라 고깃덩이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다윗의 경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육체의 순결을 더럽히는 죄를 짓게 되자 그는 주의 성령이 떠날 것 같은 두려움, 구원의 기쁨이 사라지는 인생의 깊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음란한 세대에 순결을 지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인격적인 준비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또한 그의 삶과 인격으로서 자신의 선포가 거짓말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그 모든 삶의 과정을 통해서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하나님이 준비시키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무리 은혜 충만하게 목회의 길에, 선교의 길에 들어서도,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이라도 고난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고난을 통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악기를 아십니까? 이태리의 장인이었습니다. 전 직접 한 번 봤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봤는데, 시가가 40억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사람의 엄청난 기술도 기술이지만 자제 자체가 많은 악조건 속에서 견딘 나무들을 채집해 다가 그래서 변형되지 않게끔 가공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요마가 가지고 다니는 첼로는 약 72억 원짜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악기의 세계가 끝이 없겠죠.
확실한 것 하나는 목회자는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가 본문이라면 그의 인격과 자연스러운 삶은 각주입니다. 본문이 좀 어려워도 각주가 워낙 뛰어나면 우리는 그 각주를 보면서 본문의 의미를 터득해 갑니다. 그리고 저는 습관적으로 누군가의 논문이나 학술 서적을 보면 본문보다는 각주를 봅니다. 각주 몇 개만 보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학문적인 깊이로 이 주제를 탐구했는지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주가 허접하거나 틀린 책치고 본문이 뛰어난 논문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본문도 잘 써야 되지만 각주도 잘 써야 됩니다.
영국의 청교도 로버트 머리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그리스도를 많이 닮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동네의 큰 바위의 얼굴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런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정치가도 왔다 가고 군인도 왔다 가고 사업가도 왔다 갔지만 다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큰 바위 얼굴은 그 바위를 바라보며 그 시골에서 그냥 살아가던 한 소년이 늙었을 때 발견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서 삶의 모든 방면에서 그를 닮아가기를 힘쓸 때 언젠가 여러분들의 설교와 여러분들의 삶은 아주 아름다운 두 대의 악기가 되어서 그렇게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준비는, 그러므로 많이 기도하고 회귀하고 착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지성적인 준비입니다. 지성적으로 준비되어야겠습니다. 지식이 없는 목회자나 선교사가 진실한 사역자가 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지성이 뛰어난 모든 사람들이 결코 모두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아는 지식이 없이 진실해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지금 이 배움의 시기에 철저하게 학문을 탐구해야 합니다. 교수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은 별로 그렇게 설득력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원래 그러시는 분들이니까. 그런데 저는 교수도 아닙니다. 그냥 서울 변두리에서 목회하는 목회자인데 저는 저의 체험에서 우러나와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한 사람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성경, 평범했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일된 사상으로 설교를 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어깨 너머로 배운 그 몇 푼어치의 공부를 가지고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철저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신학교 시절에, 특히 신대원 시절에 여러분들은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시간 이후에 오직 공부의 마음을 쏟고 이 학문을 위해 구별된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경건과 그 다음에는 철저하게 진리를 탐구하고 사랑하는 학문의 욕구를 가지고 공부해야 됩니다.
무슨 공부를 해야 되겠습니까? 신학 자체로만 보자면 크게 네 분야의 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성경의 신학과, 성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신학, 교리를 중심으로 유지하는 이루어지는 조직신학, 그리고 역사신학 혹은 교회사, 사상사를 포함해서. 그리고 마지막에 실천신학입니다. 이 세 가지 분야를, 네 가지 분야를 철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워, 가르쳐주는 커리큘럼은 그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자동차 운전면허시험 같은 것이고 이후에는 여러분들이 그것을 뛰어넘어서는 그런 독자적인 계획을 가지고 정통적인 신학서부터 공부해 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포물선의, 그러니까 성경 신학으로 가자면 우선 여러분 성경의, 성경 그 자체를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되, 많은 책의 사람이 아니라 한 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성경의 언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아람어입니다. 세 언어를 무조건 공부해야 합니다. 달통한 수준까지는 몰라도 한글 성경하고 다른 성경을 펴놓고, 언어 성경을 펴놓고 어디가 틀렸는지 해석을 하면 어떤 번역이 나오는지 정도는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 인접 언어들을 공부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추천하는 언어는 우가리트어와 아카드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어는 코이네 헬라어 외에도 여러분들이 고전을 읽을 수 있는 고전 그릭도 함께 공부하면 너무 좋겠고 호메로스 그릭까지는 안 가도 아티카 그릭까지 공부할 수 있다면 동방 교부들의 글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어로서는 당연히 영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어마어마한 자료들이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화란어, 하나의 언어를 뛰어넘을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자료들의 세계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 신학을 하시려면 라틴어는 거의 필수입니다.
이런 공부하셔서 그래서 그 원전의, 원전으로 돌아가서 ‘아드 폰테스(Ad Fontes)’, 원전으로 돌아가서 그 교부들의 사상 그리고 신학자들의 세계들을 읽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50이 넘어서야 독학으로 시작했지만 여러분들은 이 젊은 때에 열심히 공부하셔서, 그래서 반드시 라틴어 원전으로 신학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어마어마하게 새로운 세계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내적으로는 성경을 중심으로 신학이라는 학문이 이루어지고 신학이라는 학문은 인접된 또 다른 학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철학 그리고 과학, 문학, 예술 이런 것들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질문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풍부하게 가르쳐주고,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이런 인생의 문제와 신의 문제, 세계와 역사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인문학에는 답이 없습니다. 오직 질문을 할 뿐이고 그 답을 추출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답은 성경과 신학에서 결론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할 때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여러분들의 신앙을 진술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부터 읽고 거기서 질문을 철학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답을 찾아갔는지를 배우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신학적인 결론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과학과 예술, 문화를 이해하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구원할 사람들이 그런 세계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변증하려면 꼭 필요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는 철학을 강조합니다. 철학을,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평생 철학을 부전공으로 여기고 어떻게 사람들이 철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생각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해가야 합니다. 특히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사유의 방법들은 플라톤을 공부함으로 자신을 훈련시키시고, 그 모든 학문들을 조직화하는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루어놓은 토양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또 화란의 유명한 신학자 빌렘 반 스파이크, 스페이커로(Willem van 't Spijker)라고 하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현존하는 마르틴 부처의 최고 연구가시고 지금은 백세 거의 되셔서 이제 치매에까지 가셨습니다. 그분과 오랫 동안 교분을 가져왔고 그분이 자신의 라이브러리를 저에게 넘겨주셨습니다. 후배 하나가 “교수님, 철학과 신학의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물었는데 그 철저한 보수주의자가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철학을 모르고 어떻게 신학을 하니?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르고는 신학을 할 수 없어. 아 참, 이번에 쓴 그 작은 책자에서 김 목사가 정확하게 지적을 했더구먼. 자네 그걸 읽어보게.”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철학 공부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깊이 있는 설교와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뭐 굉장히 많지만 이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네 번째 준비가, 그래서 이제 실제적인 요령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덜 자고 덜 쉬고 덜 놀고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에 바쳐야 합니다. 두 개의 육체의 부위에 굳은살이 배기면 됩니다. 무릎과 그 다음에 팔꿈치. 한 번 책상에 앉으면 일어나지 마십시오. 공부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얼마나 했습니까?” 이렇게 묻고 싶겠죠. 한국 사람이 꼭 그렇습니다.
저는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방학이나 혹은 학교 휴교 사태 때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제가 세 번 졸도했는데 모두 영양실조였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특히 저는 히브리어를 좋아해서 신대원 다니는 동안에 창세부터 시작해서 구약성경 3분의 1을 파싱(parsing)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설교하기 전에 구약성경을 원문으로 읽으면 그때 공부한 게 헛수고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면 반드시 쓸 데가 옵니다.
건강한 사람이 6시간 이상 자는 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그냥 다 자고 다 놀고 뭘 하겠습니까? 미친 듯이 공부하셔야 합니다. 철저하게 공부하십시오. 캠브리지에서 공부하던 학생 하나가 간증을 했는데 한 학기 끝날 때마다 기숙사에서 2명씩 병원에 실려 간답니다. 내과가 아니라 정신과입니다. 공부하다가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학문을 하는 사람도 그 정도의 열정으로 공부를 하는데 여러분들은 학문 중에 최고의 학문인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공부하셔야 합니다. 철저히. 여러분들 입학하고 나서 읽은 책이 눕혀놓으면 높이가 어느 정도 되겠습니까? 한 학기에 한 키씩 읽으십시오. 한 학기에 한 키씩. 이렇게 세워놓지 말고 눕혀서 한 키씩. 공부하기가 싫으면 그럼 소명이 아닙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소명이 아닙니다.”
마지막 네 번째 준비입니다. 영적인 준비입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랬습니다. 이것은 그냥 단순한 육체적인 성장이나 인격적인 성장이나 그냥 지적인 성장이 아닙니다. 심령이 점점 강하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룡점정과 같은 사건 있었습니다.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에 점정식을 합니다. 화가가 점을 딱 찍으면 용이 되어서, 용이 진짜 살아서 날아갔다고 합니다. 그 화룡점정과 같은 사건이 뭔지 압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 보면 “빈들에서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소명 기사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래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혹은 여호와의 말씀이 누구누구에게 있었다, 임하였다 그랬습니다. 호세아서 1장에서는 ‘데힐라트 기베르 엘로 힘 데 호시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비로소 호세아 속으로 말씀하셨다’ 인투 힘쓰 에브리. 이 말씀이 그냥 들린 게 아니라 그의 심령을 깊이 파고 지나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범죄하는데도 그 백성을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고멜과의 결혼 생활을 통해 배우고 찢어지는 심정으로 사랑 때문에 그렇게 용서하고 돌아오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선지자로서 살았는데, 그 찢어지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준비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걸 갖춰도 이런 영적인 준비가 없는 사역은 그냥 자기 사업을 한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깊이 만나십시오. 어디서? 빈들에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에레모스(eremos)입니다. 광야입니다.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입니다. 그 광야에서 외롭게 고독한 가운데에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은 요한 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랬고 엘리야가 그랬고 사도 요한이 그랬고 또 사도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렇게 외롭게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보는 가운데 주님이 만나주셔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더 하고 싶은데 이제 시간이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런 준비를 철저히 하셨다가 주님이 부르시는 때에 요긴하게 쓰셔서 한 번 살다가는 인생에 어두운 밤하늘에 쏘아올린 작렬하는 불꽃같은 생애를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