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허비하는 목양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후 12:15)
녹취자: 양현정
목회를 하다가 이런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고 열심히 안 하는 것도 아닌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갑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말씀에 감화가 없습니다. 예배가 건조합니다. 내가 무슨 특별히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나 태만한 일이나 무엇을 잘못하고 있거나 마음을 내가 사역에 쏟지 않거나 아무리 확인을 해 봐도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역이 아주 건조하고 힘겨워집니다. 그렇다고 지체들 중에 누가 내 목회를 힘겹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꼭 어떤 느낌이냐하면 집차가 80km로 힘차게 도로를 달리다가 벌판에 들어섰는데 특정한 지역에 푹 빠졌는데 모래입니다. 한쪽 바퀴가 모래에 빠져 기어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엑셀을 세게 밟습니다. 모레는 앞으로 뒤로 바람을 일으키며 공중에 퍼 나르지만 바퀴가 빠져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 목회하다가 이런 일을 겪었을 때에는 되게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을 향한 원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나의 목회에 관심이 있으신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심지어 며칠 동안 하나님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제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 보시기에 제가 합당하지 않은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를 해서 생각나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없습니다.
답을 찾은 구절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이것이 ‘사용하고’라고 했습니다. 옛날 개역한글에서는 이것을 ‘허비하고’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 단어인데 원래 이 말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뭐가 많이 있는데 졸지에 먹대장이 나타나서 순간에 먹어 치워 다 없애는 것입니다. 그런 동작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앞에 ‘사용하고’, ‘사용하고’라고 번역되었는데 두 단어가 다릅니다. 하나는 ‘다파네쑤오’라는 단어고 뒤에 있는 단어는 같은 단어인데 수동태가 되면서 ‘에크’라는 접두어가 붙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다파네오’보다 훨씬 강한 뜻입니다. ‘내가 멀리하리니라’ 한다면 ‘내가 내어 치리니’라고 됩니다. 내가 ‘먹어보려니, 먹어 치우려니, 가게 할지니, 내가 쫓아 내버릴지니’ 이런 식의 어감의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낭비하리니, 그 다음에 말은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지만 ‘왕창 쓰리니, 아무것도 안 아끼고 허비할지니’ 다음 번에 쓰인 동사에서는 ‘더 안 아끼고 왕창 다, 통째로 줘 버릴 지니’ 킹 제임스 버전에서는 ‘spend’라고 번역을 합니다. 개역한글 번역이 이것을 원문을 놓고 번역했다는 확신이 안 드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돈을 많이 들이더라도 대학자들이 그렇게 번역을 해야 합니다. 어쨌든 완연하게 잘못된 번역입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내가 특별히 잘한다는 것은 없지만 특별히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심방을 안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딱 한 가지를 찾으면 답이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다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없을 때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마치 UV차량이 아주 성능 좋은 UV차량이 모래에 빠진 것 같은, 사역에 지루할 때가 옵니다. 자녀를 길러보면 알지만 자녀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면 다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 한 번 어버이날 영상 나올 때 봤습니다. 어부하시는 분이 자기 아들 생각하면서 노동으로 험하게 얼굴이 다 타고 그러신데 눈물을 훔치면서 늘 해줘도 해줘도 왜 아이들한테 못 해줬을까 라는 부족한 마음뿐이라고 하면서 그 어부인 그분이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확히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부모는 부모가 아닙니다. 부모인 척 하는 사람입니다. 다 주고 싶습니다. 내 새끼가 간이 다 녹아서 없어졌다 하는데 내 간을 떼어서 당연히 주지 않겠습니까?
중국 고사에 나옵니다. 어린 원숭이가 먹이를 먹다 덫에 걸려 매달렸습니다. 어미가 그 곁을 떠나지 못하면서 덫에 갇힌 새끼 원숭이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며 가슴이 탄 것입니다. 나쁜 사람들이 도망을 못가니까 애기 원숭이 어미 원숭이 다 잡아갔습니다.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니 간이 다 녹았다고 합니다. 자식의 고통을 보면서. 중국의 유명한 고사입니다. 그것이 진짜 부모 마음입니다. 우리 딸도 얼마 전에 시집갔지만 본인한테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뭐든지 제가 다 주고 싶습니다. 시집을 갔어도 올 때마다 뭘 주면 교육이 되겠습니까. 핑곗거리만 있으면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사역을 하다가 진창에 빠진 것 같고 내가 죄 지은 것도 없고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뭐가 잘 안 되는 것 같은 때에 내 안에 양떼를 향한 사랑이 있는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니라. 어떤 때는 그렇게 타이르고 야단치고 가르치고 죽어도 말을 안 듣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홀로 엎드려서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다른 방법으로 그 마음을 목회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변화시켜서 하나님 앞에 목양을 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깝지 않아서 허비해 버리는 마음입니다. 허비해 버린다는 말은 가치 적어보이는 것을 위해 과중하게 낭비를 하는 것을 허비한다고 합니다. 같은 말이 예수님이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자리에 죄 많은 여자가 와서 향료를 붓습니다. 300데나리온, 지금으로 따지면 3500에서 4500만원이 되는 향료를 붓습니다. 그 허비가 예수님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 허비로 보였지만 예수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허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생각을 하면서 아 이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양떼를 향한 애절한 사랑이 부족하구나. 반성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놀랍게 수렁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우리가 같이 이 말씀을 새기며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