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하게 하는 사람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5-9)
즐거운 명절을 맞았지만 방역지침 때문에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방역지침에 따라 추석을 함께 보내는 여러분은 참 복된 분들입니다.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에 자유롭게 모였던 명절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얼마나 자유로웠습니까?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자유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이 소중한 것을 모르지만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이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는 장면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란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아브라함은 의지할 데 없는 어린 롯을 거두어줍니다. 그렇게 아브라함과 롯은 함께 긴 세월을 목축을 하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많이 늙었으나 자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주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롯을 오롯이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을 것이고 그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마 틀림없이 모든 것을 그에게 주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낳은 씨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직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네게브를 지나서 목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가축 떼가 불어나니 목초지가 모자랐고 이에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롯의 마음도 상하였을 것이고 아브라함도 상심이 깊어져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순간에 하나님의 섭리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혈육처럼 여기며 사랑했던 롯에게 “나를 떠나가라”고 말합니다(창 13:9).
첫째로, 우리는 아브라함이 배려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한 친족이 아니냐. 그러니 내 목자나 네 목자나 다투게 하지 말자. 보아라. 드넓은 땅이 있으니 이제 나를 떠나라가. 네가 왼쪽에 있는 땅이 좋아 보이면 그리로 가라, 나는 남은 오른쪽으로 갈 것이다. 네가 오른쪽에 있는 땅이 좋아 보이면 그리로 가라, 나는 왼쪽으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아버지뻘인 아브라함에게 호의와 설령 종들이 목초지때문에 다투었다고 할지라도 롯은 따끔하게 나무라서 그들이 화해하며 지내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주시기 전에 롯과 헤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헤어질 때에도 아브라함은 롯과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양보하고 롯을 세워주며 헤어집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있는 화목의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질 문제, 의견 충돌의 문제, 과거에 받았던 상처 때문에 가족끼리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믿는 여러분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화목하는 여러분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배려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눈이 있는데 보면 모르겠습니까? 롯이 택한 소알 땅은 물이 넉넉하고 목초지가 풍부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유목을 하면 더 많은 양 떼와 짐승 떼를 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이 주는 이익보다 하나님 안에서 롯과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네가 원하는 걸 택하라 하면 진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성이 갖추어진 사람이라면 롯이 그것을 받아들였기에 받아들여야 했기에습니까. “아닙니다. 삼촌, 어린 저를 거둬주셔서 이제까지 살게 해주시고 또 내 살림살이까지 따로 나게끔. 3순위 나에게 이런 덕을 베풀셨습니다. 3순위 좋아하는 땅을 먼저 택하십시오. 남은 땅을 제가 가겠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저는 감개무량입니다”라고 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좋은 땅을 제가 가질 테니 삼촌은 저덜 좋아 보이는 땅으로 가십시오.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화목하기 위해서 그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배려하고 따뜻하게 챙겨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종종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은 짐짓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변함없이 꾸준히 챙겨주고 배려해주고 돌봐주면 언젠가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으며 자기가 그런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그들의 인생에 매우 존귀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이별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롯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조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이 롯을 자식 같이 여겼고, 후계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와 의논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그와 함께 헤쳐나갔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혈육의 정이 얼마나 깊었졌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게 하실 때가 있고 헤어지게 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롯과의 이별이 기쁘지는 않았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믿음으로 한 것입니다. 혈육의 정으로는 헤어질 수 없었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롯과 헤어질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이별 또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바로 이별은 이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다투고 분쟁하다가 마음이 갈라져서 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것을 혈육의 정에 사로잡혀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돌아보고 그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별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헤어지게 하시는 것은 또 다른 것을 만나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롯과 헤어진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아브라함과 동행하며 놀라운 축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구정예배 때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올 한해 즐거운 추석 명절을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든 가족이 다 모이지는 못하였으나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화목의 사람이 될 용기를 주시고, 배려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주시고, 이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아울러 주시옵소서. 금년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하시며, 영적으로 힘있게 하시고, 물질적으로 더 윤택할 수 있도록 저희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이 예배를 통해 온 가족이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