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함 빛과 자기 깨어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레 24:2)
녹취자 : 양현정
저는 20여년 전 본문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읽다가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신학함에 있어서 어떤 생각을 바르게 갖도록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어서 장황하게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요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성막을 만들게 하셨는데 성막에는 창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물돼지 가죽이라는 것으로 덮고 다 쌌으니 그 안은 아마 캄캄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뭔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불빛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등잔불을 만드는 규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살펴보려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함의하고 있는 신학함에 대해서 많은 깨달음들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메세지들을 이 짧은 구절이 담고 있지만 저는 오늘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사장이 섬기기 위해서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어쨌든 제일 필요한 것은 빛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드린바와 같이 성막 안에 일체의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일생을 산다고 하지만 진리의 빛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어찌 경배할 수 있겠으며 경배하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섬길 수 있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성막에 창문을 내어 햇빛이 들어오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는 그 심오한 의미에 대해서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우리의 신학과 연결짓는다면 이런 메세지가 아닐까요? '너희들이 나를 진정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빛으로는 안 된다. 계시의 말씀이 너희에게 주는 그 빛이 필요하다' 이런 뜻 아닐까요? 목회를 하고 학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계시의 빛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마음에 충분히 그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판처럼 되지 않을까요?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다라는 교회조차도 그 빛을 활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 결국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과 조금 다름없이 될진데 만약에 이 진리의 빛이 우리에게 비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학하는 사람들의 사명은 이 진리의 빛을 교회 안에 환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선생님으로서 이 진리의 빛을 더욱 찬란하게 비춰 모든 사람들이 그 빛으로 하나님을 섬기기에 어려움이 없게 하는 것이 신학자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밝은 빛이 성막 안에 가득할 때에 그 때에 햇빛 한 방울 들어오지 않았지만 제사장들은 능숙하게 거기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이 빛을 더욱 교회에 충만하게 비춰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도록 많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등불을 밝히는 기름을 제조하는 방법의 특수성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보면 '감람을 찧어낸 기름으로' 라고 했습니다. 당시 감람을 이용해서 기름을 짜는 방법이 일반적인 방법은 연자멧돌 같은 데에 한꺼번에 부어 버리고 짐승이나 사람이 돌려서 부숴 버리는 방법입니다. 모아진 것들을 놓고 프레스에 누릅니다. 누르면 기름이 많은 양이 나옵니다. 그 대신 그 기름은 순결한 기름일 수는 없습니다. 많은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런 기름에 불을 붙이면 그을음이 남습니다. 감람을 찧어낸 기름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감람을 찧어서 프레스로 눌러서 짠 기름이 아니라 연자 멧돌을 돌려서 갈면 기름이 한 곳에 모입니다. 그 기름을 정성껏 받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찧어 낸'이라고 한 이 동사는 '까끼뜨'입니다. '까타트'라는 '깨뜨리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수동 분사형입니다.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순결한 기름을 위해서는 깨뜨려져야 하고 그것들이 흘러나온 기름들이 채집되어서 그을음이 없는 밝은 빛을 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막에 쓰여질만한 기름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환영받는 학문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막상 목회를 해보면 진짜 목회자에게 필요한 지식은 종합적이고 포용적인 지식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이것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교회가 요구하는 지식은 참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떻게 우리에게 습득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습득되는 중요한 과정은 자기 깨어짐의 과정입니다. 학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있고 그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받아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성찰하며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 신학이 우리에게 주는 큰 유익입니다. 자신의 세계관에 갇혀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신학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신학이 아닐까요? 마스트리트가 정의했듯이 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기 깨어짐입니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고 그 말씀 속에서 자신이 깊이 깨뜨려질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영원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됩니다. 사람은 영원을 인식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시간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공간 안에 묶여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초월하는 영원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깨뜨려지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영원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영원의 빛으로 순간을 보는 것이고 죽음의 관점에서 생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과 인간사를 바라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그의 마음에 광명이 비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많이 공부할 뿐 아니라 그 깨달은 진리에 마음에 깊이 깨뜨려 지는 사람, 그래서 이 감람을 깨뜨려 찧어낸 기름처럼 그렇게 순결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의 진리는 보전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탐구한 진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이 깊이 깨뜨려져 성령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일어나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는 자기의 뼈 사이에까지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화된 진리로 가르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할 줄 알고 시간속에 태어나서 시간속에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인생사를 바라볼 수 있고 살아있지만 죽은 자의 관점에서 인생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두가 아니라 진짜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보이는 모든 세계의 기초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신학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진리의 빛을 온 교회에 환하게 비추십시다. 그리고 먼저 그 진리에 우리 자신이 깨뜨려집시다. 그래서 충만한 은혜의 성령이 우리의 가르치고 섬기는 사역에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간구합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보람 있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