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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구하라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 57;1)
녹취자: 황인준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갔지만 거기서 결국 정체가 탄로 나게 되고 거기서 도망을 나오게 됩니다. 아마 이 시는 사무엘하 22장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는 광야의 동굴에 숨어있었고 그때에 자객들은 이 다윗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 돕는 사람 하나 없이 그렇게 완전히 고독한 신세가 되어서 이제 원수에게 쫒기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의 고통이 얼마나 켰겠습니까? 더욱이 다윗은 사울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사울은 단지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 받고 주님께 쓰임을 받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다윗을 집요하게 미워했습니다. 죽이려 까지 작정하였으니 그 미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자신의 이 억울한 마음을 누구에게도 쏟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이 한번 원수에게 미움을 당하여 목숨을 부지할 곳이 없이 광야의 한 동굴에 갇혀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 절망과 고통,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한 마음에 정신이 혼돈했을 것입니다. 신앙이 없다면 아마 우울증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절망적인 순간에 다윗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심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우리의 처지가 복스러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있다는 것.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분께 나의 중심을 아뢰면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들으신 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인생의 위기 속에서도 소외되지 않는 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최고의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기도가 깊어지고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나면 사실 기도할 제목자체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찬송이 울려 퍼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에 감사하고 내가 여기 있기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고 그런 내가 여기 영원히 있지 아니하고 주께 이끌리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최고로 죄송한 것은 내가 지금의 나밖에 안 된다는 이유이고 최고의 감사는 하나님이 거기 계셔서 나 같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 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을 경고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가장 큰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이 세상에 어느 민족이 이렇게 자기의 신이 가까이한 민족이 있었더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위에 계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함께 이스라엘 안에 계셔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과 하나 되셨습니다. 바로 그런 임마누엘의 이상을 실현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이후의 성령은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근심과 염려, 걱정과 한숨으로 많은 시간들을 허비합니다. 우리의 심령은 말라깽이가 되고 우리의 가슴은 냉과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올빼미처럼 슬프고 우리의 심령은 시든 꽃잎처럼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고난의 때가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특별한 은혜를 하나님께 받았던 때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시험을 당해도 하나님의 품을 파고드는 사람이 이깁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품은 은혜의 품이고 그 은혜의 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충만히 누려 모든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시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수시로 하나님께 간절히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처지임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또 한 가지를 결심합니다. 그것은 ‘이 시련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기다리겠습니다.’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피하리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지혜로운 사공은 파도가 너무 높으면 배를 띄우지 않습니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배를 띄울 때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다립니다. 잔잔하고 배를 띄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어떤 일은 우리의 즉각적인 조처를 요구하는 때도 있지만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어떤 일은 잠잠히 기다려야만 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시인들이 노래하기를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앙망하며 시련의 때가 지나기까지 기다렸다는 것을 노래합니다. 이것은 태만이 아니라 인내고 이 인내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마지막 인내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즉각 행동에 옮겨야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그저 그것을 묵묵히 짊어지고 참고 기다리며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다시 조정되고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 말도 아니하기로 다짐하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시선을 불꽃같은 눈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중심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자기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참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 낙심하고 흔들리고 좌절하고 그리고 마음이 들뜨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미친 파도 같은 상황이 계속되어도 내가 주님의 생명 싸게 안에 있는 한 그 원수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굳센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당신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을 믿음으로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만이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주 앞에 겸비해지기까지 불복하며 하나님이 겸손을 배우게 하시는 시련의 때에 주님을 바라보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시련의 때에 자기를 보여 주시고 우리가 예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특별한 성품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보는 사람들은 영원의 부흥의 때를 맞이하게 되고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그 고난의 때에 심령이 썩고 영혼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한 구석에서 주님을 섬기다보면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주공간에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사 그리고 우리의 개인사, 나와 관련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 속에서 주님을 섬깁니다. 그들의 슬픔은 때론 나의 고통이 되고 그들의 죽음은 또한 나의 아픔이 됩니다. 이런 일들을 모두 겪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이른 성도들의 발은 상처로 가득하니 그들은 꽃길만 걸은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악마의 손톱자국이 가득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의 위로는 찬송입니다. 고난의 때에 시인들이 고난을 이기던 세 방법은 찬송과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찬송은 염려와 근심으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게 하였습니다. 결국 이 시도 노래로 불리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한 경건의 기술을 오늘 우리의 삶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뜻을 분명히 알고 시련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찬송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을 고백하며 이 모든 고난을 통해서 이 시인들이 당했던 고난. 그리고 고난 속에서 주를 바라보던 믿음. 그리고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시던 고난.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시던 믿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결코 행복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달할 수도 없거니와 도달하고 나면 잠깐 동안은 만족을 느끼지만 그 다음엔 더 큰 욕망이 생겨서 다시 결핍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행복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까?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C. 인생의 참된 목표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내 자신이 비록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떤 상황에 내가 놓여 있던 지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내가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 그래서 슬픔에 쓴 눈물보다 달콤한 사랑의 기쁨을 내가 받고 또 다른 사람이 누리며 살게 하는 것. 거기에 우리의 인생에 목표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하려고 들지 고통스러운 데 그것을 내버려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 속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 아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이 굴에서 그저 인생의 저녁을 맞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부르셨고 기름 부으셨고 주께서 사명을 주셨으니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를 살리실 것과 그리고 이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당신 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 가실 거라는 확신이 이 다윗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담대한 확신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한 마리 길 잃은 양 같은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고 결국은 원수들의 궤계는 꺾으셨고 다윗의 뜻은 이루어지게 하셔서 다윗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지 어떠한 처지를 만나든지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품안에서 기다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