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3._교직원예배
등잔불과 떡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 24:4-8)
녹취자: 양현정
1절부터 3절까지는 설교를 한 두 번 들으셨을 겁니다. “순결한 기름으로 성소의 빛을 밝혀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창문이 없는 성막 안에서 유일한 빛이었고 여러 가지 목회자의 본질적인 사명은 진리의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감람유가 필요했는데 순결한 기름이 필요했고 이것은 성령이시고 이것이 목회사역에 성령의 감화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감람이 찧어져야 했는데 ‘까띠뜨' 깨뜨려졌다는 뜻이고 쥐어짠 것이 아니라 깨뜨려져 흘러나온 것이므로 우리의 목회사역을 위해서는 목회자의 자기 깨어짐이 있어야 된다. 그 등잔불을 아론이 끊임없이 끝까지 등잔불을 정리했던 것처럼 우리들이 참된 말씀에 빛이 교회 안에서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목회 사역의 본질이고 이것 없이는 어떤 성공도 성공이 아니다”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다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등잔불이 비치면 그 밑에 뭐가 있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밑에 떡이 있었습니다. 여섯 개씩 만든 떡은 두 줄로 열두 개를 올려놓습니다. 안식일마다 떡이 어마무시합니다. 떡 하나를 10분의 1에바로 만들었습니다. 1에바가 22리터입니다. 떡 한 덩이가 2.2리터의 가루를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옛날에 큰 되박 하나하고 작은 되박 2개가 넘는 것입니다. 되박이 10개이면 한 말인데 큰 되박은 5개가 되면 8킬로 한 말이 됩니다. 어쨌든 그 정도 부피입니다. 반죽했을 때 어림잡아서 나일론 바가지 하나 될 정도의 엄청난 분량입니다. 그 떡을 만드는 데 그것을 12개를 만드는 것입니다.
12개는 12지파를 의미합니다. 두 줄로 놔서 여섯 개씩 2개 올려놓는 것입니다. 등불 빛이 비치고 있는데 떡은 항상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마다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떡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는데 구속사적으로 이것이 떡입니다. 떡은 그 당시 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식입니다. 등가 번역을 하자면 “밥은 먹고 살아? 너희는 먹을 떡은 있어? 떡도 없어?" 이 이야기를 하면 양식이 끊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로 이야기하자면 밥입니다. 그것 없이 목숨을 지탱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떡이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내가 알토스다." 그리스어로 ‘알토스'다. 히브리어로 '레헴'입니다. 거기서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것과 레헴, 베들레헴, 알토스,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시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니다. 예수님이 양식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떡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예수와 한 몸이 된 모든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예표 되고 이스라엘 백성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이 하나의 2.2 에바로 된 엄청나게 큰 왕떡을 만들어서 그것을 6개씩, 6개씩 나누는 것입니다. 안식일마다 그것을 만들어 올려놓습니다. 그 위에 등잔대에서 불빛이 쭉 비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안식일입니다. 주일이 어떤 날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일날 여러분들이 모든 사람 다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서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집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바쳐지는 날입니다. 만일 열두 개의 떡을 만드는 데 레위 지파 떡이 빠졌습니다. 열 한 개만 만들어 바쳤다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레위 지파에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왜 떡이 열한 개이며 어느 지파에서 빠진 것이냐?” 주일날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주님 앞에 바치는 날입니다. 그래서 바쳐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으로 주님께 바쳐지고 아무도 그것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만 바쳐지는 떡 위에 찬란한 등불이 쭉 비치는 것입니다.
주일은 바로 떡인 우리가 그 진리의 등잔불에서 비치는 밝은 빛을 받는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있는 바깥에 많은데 일부로 캄캄한 성막 속으로 물돼지 가죽으로 뒤집어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 들어와서 유독 하나님께 바쳐진 순결한 감람유 위에서 나오는 밝은 빛을 쪼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의 빛만으로는 살 수가 없고 항상 주일마다 주님과의 만남이 있는 거룩한 교회에 와서 자신을 바치고 바쳐진 자신에게 하나님은 진리의 찬란한 빛을 비춰주심으로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선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일날 진짜 여러분들은 주님의 진리의 빛을 지체들에게 찬란하게 비춰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설교든지 성경공부든지 개인 상담이든지 혹은 그룹으로 하는 성경공부든지 상관없이 심지어 지체들과 대화에서도 주일날 교회에 온 그 지체들이 당신으로부터 찬란한 말씀의 빛을 느낄 수 있는 주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름이 없든지 자기 깨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깨어짐이 없으면 기름도 없지만. 활활 타오르도록 그 등불을 간수하지 못했든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론의 사명은 그 일에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목회자가 지금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시금석이 됩니다.
주일날 내가 설교를 해도 감동받는 사람이 거의 없고 내가 성경을 가르쳐도 감화받는 사람이 별로 없고 내가 상담을 해줘도 진리의 빛을 발견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그룹으로 성경공부를 해도 사람들이 다 무취무각하게 되었다면 심각히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주일의 빛을 비추는 사람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설교를 끝내고 내려가면 그렇게 생각했다 합니다. ‘설교를 하려면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진리의 빛을 개인적으로 계속 받음으로써 주일날 그리스도에 대한 즐거움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일은 무엇입니까? 주일날 떡 덩이처럼 바쳐집니까? 진리의 빛이 여러분에게 비춥니까? 찬란하게 비춥니까? 주일날 예배드릴 때 아주 소수이긴 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뭘 그렇게 발아래 쳐다볼 것이 있는지 고개를 박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하나라도 깨달으려고 해야지. 아무리 찬란하게 햇빛이 쏟아져도 우산으로 가리고 있으면 빛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뚜껑을 덮어 놓으면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일은 무엇입니까? 교회 봉사하는 날이 아니라 예배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주님을 만나고 찬란한 진리의 빛이 자기에게 비춰서 일주일 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일주일 산 것을 감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비추는 진리의 빛에 합당하게 산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고 그 빛을 받았을 때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그 소중한 인생을 낭비했다는 마음으로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주일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예전에 주셨는데 왜 주셨을까요? 살라고 주셨습니다. 안식하고 일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살게 하기 위해서 안식을 주셨습니다. 6일 동안에 놀고먹은 사람에게는 7일이 안식일일 수 없습니다. 6일 동안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들이 마지막 7일이 주일이 되는 것이고 그 주일이 그 다음 주에는 첫날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진리의 빛을 흠뻑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냐면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새 사람들이 제사장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성령의 사람,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과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온전한 떡이 됩니다. 그 떡을 결국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또 거룩한 곳에서 먹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여러분들이 은혜를 흠뻑 받고 진리의 빛을 받는 그것이 이 세상의 모든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구역원, 순원의 큰 복은 순장과 구역장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받아먹을 것이 많습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받아먹을 것이 많습니다. 줄 것이 없으면 다 굶주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지 않은 가족이 있는데 믿지 않는 가족에게 야박하게 하고 쌈질이나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넘치면 가족이 무엇 때문에 굶주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을 위해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것이 내 전도의 동기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주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겠지요? 주일은 지키는 날이 아닙니다. 교회 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진리의 빛을 충만히 받아서 그 후에 그 떡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떡으로서 진정한 의미가 나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떼어서 나눠 줌으로써 먹게 하여 굶주림을 모면하게 하는 그 영적인 구제를 위해서 주일은 주님 말씀에 깊이 은혜의 비춤을 받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어떤 말이 나오냐 하면 7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줄 위에 두어" 두 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요"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있다 온 사람이 유향을 선물했습니다. 유향과 몰약을 선물했습니다. 유향수라는 나무에서 우리말로 하면 송진을 뽑은 것입니다. 향이 나고 동방박사가 예수가 탄생하셨을 때 마구간에 와서 경배하며 드렸던 황금, 유황, 몰약 중의 하나입니다. 아주 값비싼 향유입니다. 시체를 처리할 때도 이것을 사용하고 의료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부패를 방지하고 향기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떡 위에 참기름을 올려놓았다 하면 이해가 갑니다. 떡 장사할 때 생각해보면 화룡점정의 사건입니다. 떡을 다 만들어 송편을 쪄서 선풍기를 불며 김을 다 내어 떡을 꼬들꼬들하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습기가 차서 떡져서 끈적거리는 송편이 됩니다. 댕글댕글한 송편이 되게 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말립니다. 꼬들해졌을 때 좋은 참기름을 넣고 떡을 올려놓으면 참기름 냄새가 날 때 떡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여기는 음식과 상관없는 유향입니다. 구속사적인 의미가 심겨져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진리와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여섯 개의 떡이 있고 윗줄에 향유가 있고 여섯 개의 떡이 있고 바로 앞에 향유가 있고 또 여섯 개의 떡이 있습니다. 가서 제사를 드릴 때에 떡에 찬란한 등잔불이 비취면서 그 큰 떡 12개와 함께 거기에 있는 향유, 냄새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끼리 있을 때 그리고 세상에 나아갔을 때 그때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 받은 진리를 냄새로 향기로 사람들에게 날려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람들이 맡고 진리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향기는 우리 정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코끝에서 감각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내용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예수 믿은 얘기를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그래서 예수 믿고 뭐가 좋아졌는데?”라고 물었을 때 “그건 내가 지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런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그거 말고” 유오스라는 신학자가 지식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도 두 가지 지식이 있는데, 건조한 지식이 있고 감동적인 지식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도 냉랭한 지식이 있고 감동적인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냉랭한 지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생생하게 자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냄새, 향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남성 구역 하나가 모임에는 그렇게 은혜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고 교회를 좀 험담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모여서 맨날 그러던 그룹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중심적이던 한 사람이 사경회에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응은 같이 함께 무리 지어서 떠들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더라고 합니다. 그것이 공통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저 사람이 변한 것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밀려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몇 사람이 회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향기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라고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온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것이 향유를 떡 사이에 올려놓았던 이유입니다.
이것은 또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되게 주일날 은혜를 받은 사람이 다니는 회사, 부패가 이 사람 때문에 방해를 받습니다. 이 사람이 모든 부패를 막을 수 없지만 부패가 이 사람 앞에 와서 부패가 멈춥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역할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해둔 악한 방식이 어느 사람에게서 통하지 않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 정신이 팍 듭니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에 빛을 흠뻑 받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주일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흠뻑 받는 날, 그리고 그 떡이 하나씩 바쳐진 것이 아니라 열두 개가 함께 바쳐졌습니다. 장소, 함께 모인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지고 진리의 빛을 흠뻑 받으면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향기를 모든 사람에게 비추고 하나님을 생각나게 만들고 예수 때문에 부패를 방지하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이 주일에 흠뻑 받는 성도들, 그렇게 베풀 수 있는 목회자들이 있을 때에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아가는 주일의 신자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