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잔, 그리스도의 피(1)
녹취자 : 박나리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저는 팔복을 끝나고 시원했습니다. 이제는 말씀 청취를 통해서 구역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나타날 자리가 아닌데, 오늘 특별히 여러분과 만나고 싶어서 제가 공과 공부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봄이 되면 우리가 생각나는 것이 벚꽃도 있고 진달래꽃도 있지만, 또 한편 생각나는 것은 고난 주간입니다. 그래서 어느 성도가 투덜거렸습니다. 벚꽃은 고난주간 사경회하고 전도 때문에 못 보고, 그다음에 가을 단풍은 가을 사경회에 전단지 돌리느라고 못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꽃이) 좀 일찍 피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 부활절도 다른 때보다도 일찍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중이니까 충분히 이번 주에 즐기시면서 감상하십시오. 그리고 또 은혜도 많이 받으시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이제 성찬과 언약의 세 번째 장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이것을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가 공부하겠는데,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5절을 같이 한번 큰 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구역장님들, 시작하겠습니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하면서 고린도전서 11장 25절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배우셨겠지만 성찬은 후대의 사람들이 고안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지정해 주신 교회의 예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두 가지를 한꺼번에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러니까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성찬에 참여하면 아무것도 전달받을 것이 없습니다. 전달받는 것은 그냥 빵이나 떡, 그리고 포도주, 그거 두 개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감동을 주겠습니까. 그런데 의미를 알고 나면 아주 놀라운 감동이 밀려옵니다. 기독교에서 ‘성례’ 하면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세례와 그 다음에 성찬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으로 되기 위해서 들어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성찬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예수 죽으심을 기념하면서 참여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피와 살을 기리는 것, 그것이 성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게 잊히지 않는 성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한 7년 돼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야말로 이제 독생자였습니다.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내수동 교회에서 제가 유아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둥 바로 옆에 제가 있었는데 아이를 안고 나갔습니다. 12월에 태어났으니까 제 생각에는 아마 한 8개월 정도 됐을 때 세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한 5개월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12월 24일 날 태어난 아이를 부활절 때 세례를 주었습니다. 파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제 그 세례를 주시면서 “내가 예수를 믿는 자 김남준과 이명희의 자녀 김영래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속으로 세례를 주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성례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랬냐 하면 내 아들인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나를 위해서 주셨다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냥 예전에는 그냥 감사하다, 참 고맙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것은 가슴을 에는 것 같은 슬픔을 동반하는 그 사랑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를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죽게 내어 줄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없는데 예수님은 하셨고 그것 때문에 나도 구원받고 이 아이도 구원을 받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둥 옆에 서서 정말 그 제 생애의 그 모든 성례식 가운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의미를 알아야 된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의미를 몰랐으면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성찬 예식 할 때는 사실은 설교 안 해도 됩니다. 이미 성찬 하는 그 자체가 눈에 보이는 설교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 자체가 사실은 아주 훌륭한 설교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 성찬을 베푸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그 의미를 모두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아주 감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언어가 없어도 그 행위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으로 한번 넘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빵과 포도주는 좀 색다른 것입니다. 평소에 먹는 게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는 빵을 별로 썩 좋아하질 않아서 잘 안 먹는 편입니다. 그런데 단 예외가 ‘열린 공간’ 소금방하고 곡물빵을 좋아하는데 도무지 살 수가 없습니다. 1시에 빵이 나오면 1시 10분에 매진이 된다니까 저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거 좋아하고 그런 거 빼놓고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라는 이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 빵이 그리스어로 ‘알토스’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당시에 주식으로 먹는 빵입니다. 그런데 그거는 뭐를 막 집어넣어서 우리처럼 설탕으로 범벅을 하는 그런 빵이 아니라 그냥 밀가루에다가 이스트 정도를 넣기도 하고 또 안 넣기도 합니다. 무교병은 안 넣고 유교병은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빵을 구워서 먹는데 그게 주식입니다. 왜냐하면 그거에다가 양고기 같은 거를 싸서 먹기도 하고 그것만 먹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말하자면은 우리 문화로 본다면 이 빵은 빵이 아니라 밥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포도주를 언제 그렇게 먹을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포도주는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입니다. 음료입니다. 물이 질이 좋은 물이 안 나오고, 잘못 먹으면 거기에 석회석 같은 성분이 끼어 있어서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그래서 그 포도주를 음료로 사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우리 문화로 등가 번역을 하면 밥과 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식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그것이 바로 밥과 물이듯이 그것을 이스라엘의 문맥에서 빵과 포도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듯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살을 찢으셔서 못 박히시고 그 다음에 피를 흘려주신 그것이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 필수적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바로 늘 대하는 이 빵과 포도주, 즉 우리에게는 밥과 물과 같은 이 두 가지를 제시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바 나의 몸 그리고 또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바 나의 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 다음에 보면 빵을 주신 후에 잔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고 이르시되’라고 나옵니다. ‘그와 같이’라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빵을 떼어서 나누어 주심과 같이, 똑같이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이르시기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이 떡은 나의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입니다. ‘곧 무슨 피’라 그러셨습니까.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입니다. 이게 무슨 계약입니까. 구약에서 보면 행위 계약이 있습니다. 행한 대로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은혜 언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행위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용서를 약속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이게 어떻게 합니까? 행위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너희들이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언약을 따라서 형벌을 받으시는 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은혜 언약적 관점에서 보면 너희가 죄를 지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담당해야 할 행위 언약을 대신 감당하시고, 죽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가는 예수가 치르시고 너희는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을 은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언약의 피라고 하는 이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은혜 언약과 행위 언약을 모두 이 안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의 오감을 이용하게 합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그 집례자의 선언이 들리고 그 다음에 떡과 잔을 먹고 마십니다. 감촉이 느껴지고 미각이 느껴집니다. 눈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에 냄새가 납니다. 살갗에 닿습니다. 그러니까 오감을 모두 이용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누구인가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찢어서 주신 분이시고,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흘려주신 분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거기부터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하십시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그래서 새 언약이 무엇입니까. 옛날 언약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구약입니다. 새로운 언약은 신약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예수님이 새로운 언약을 맺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새 언약을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짐승이 제물이었고 제사장이 중보를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드리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일시적인 평화가 아니라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그러한 새 언약을, 영원히 취소될 수 없는 구원의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의 살과 피를 제물로 하여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 새로운 언약의 관계를 수립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이렇게 기념하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잊지 말라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십자가 사건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성찬이 굉장히 중요한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알게 되면 아주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한 교회에 가서 성찬을 하는 것을 보면 그 교회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찬송)
그 형상 볼 때 마음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성찬식을 하는데 냉랭합니다. 감동 받는 사람도 없고 흐느끼는 사람도 없고 그냥 그렇습니다. 그냥 평소에 십자가의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찬을 받을 때 십자가의 감격이 있는 교회는 평소에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그 떡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게 몸으로 들어갑니다. 몸으로 들어가면 이게 어떻게 됩니까. 모두 분해가 됩니다. 분해가 되어서 빵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빵에 있는 영양가 있는 성분만 소화 작용을 통해서 우리의 핏줄 속으로 양분이 되어서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스며듭니다. 그래서 빵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소화되지 않는, 다 소화시키지 못한 일부 찌꺼기들이 변이 돼서 나오지만, 나머지는 빵은 사라집니다. 빵은 뭘로 변합니까? 우리 에너지로 변합니다. 그 에너지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 에너지가 우리가 생명을 가진 그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머리에 생각도 잘 떠오르지 않고 내 감정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고 그 다음에 생명의 에너지와 기운이 넘치게 되면 그러면 정신 작용부터 육체의 모든 작용이 활발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 너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 너 아침밥도 안 먹었냐, 그리고 묻는 것입니다. 이게 밥이 생명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된다는 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게 포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주를 마시면 포도주가 내려갑니다. 그런데 포도주는 찌꺼기가 없습니다. 다 스며듭니다. 그 영양가 있는 성분이 뭐 그중에서 다 흡수되지 않은 수분은 나중에 소변이 돼서 나옵니다. 술 많이 먹으면 그래서 소변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 포도주의 성분은 다 핏줄을 타고 몸 안에 흡수가 됩니다. 그것이 또 에너지로 변합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십니까. ‘이 떡은 너희를 위하는 바 나의 몸이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다’. 쉽게 얘기해서 너희는 나를 나의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그 뜻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뭐냐 하면 예수와의 연합입니다. 내가 예수를 먹고 예수를 마심으로 예수가 내 안에서 다 스며들어서 그 예수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에너지를 얻는 것입니다.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을 성찬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놀라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설교를 한 게 아마 1990년대 아마 후반쯤으로 기억이 됩니다. 아주 엄청 은혜를 받았습니다. 몇 주 동안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예수가 내 안에 사시고 내가 예수 안에 산다고 하는 의미가 이런 의미구나 하는 것을 이 성찬이 보여준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가 우리 몸 속에 들어가서 우리의 몸의 일부가 되듯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내가 되시고 나의 일부가 되십니다. 또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내가 그리스도의 일부가 됩니다. 이 물질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사랑과 정신의 일치입니다. 사랑과 정신이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우리는 하나라고 할 때 몸이 하나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사랑과 정신이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처럼 사랑하고, 예수처럼 생각하고, 예수처럼 기뻐하고, 예수처럼 아파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할 때 그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을 이 성찬을 통해서 형상화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철저한 연합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원리적인 연합이 있습니다. 이건 뭐냐면 예수 믿기만 하면 모두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칭의의 연합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적 연합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화의 연합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만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은혜 많이 안 받고 예수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과의 한 없는 거리감을 느끼고 한없이 예수님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남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만큼 내가 예수를 닮아갈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내 마음이 예수님 마음 안에 있는 일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성찬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는데 뭘 기념하라는 것인가, 이게 피입니다. 이 구약에서 이 피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피를 쏟는 것은 모두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읽어 보십시오.. 시작하십시오.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이렇게 나옵니다. 두 번째,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시작하십시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결국 의미가 뭐냐 하면 가장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형용하지 못할 핏빛 사랑을 십자가에서 경험한 사람은 일평생 그 십자가의 사랑에 빚진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면서 비로소 내가 누구인가, ‘who‘,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이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이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내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 자기 확인을 하게 됩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러니까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찬을 행할 때마다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내가 하나님의 얼마나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인가,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는가, 나의 진정한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이 성찬이 우리에게 대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아멘. 이번 성찬에 그런 은혜의 감격이 있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다음에 이 피의 두 번째 의미는 뭐냐 하면 진노로 말미암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구약의 유월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을 잡습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의 언약의 풍습과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그 당시에 문화였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이 이렇게 있습니다. 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다스리기가 힘이 들어 이렇게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임명을 합니다. 이것을 봉신이라 그럽니다. 책봉한다 할 때 봉자고, 신화할 때 신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왕이고 어떻게 보면 한 나라를 주는 하나의 제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불러서 이 땅을 이렇게 맡기면서 약정서를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장을 씁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선언이 나오고, 그 다음에 우리는 이러이러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렇게 왔고,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서로가 관계를 맺고, 왕은 제후에게 이런 은총을 주고 제후는 왕에게 이렇게 충성하기로 한다고 다짐을 하는 걸 쓰는 것입니다. 쓰고 이것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해서 소 같은 거를 이렇게 절반으로 쪼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피가 막 철철 넘칠 거 아닙니까. 두 사람이 이 사이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들고 모든 신들 앞에서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던 게 아니라 고대 근동에 있는 사람들이 하던 언약 체결 습관입니다. 그리고 이걸 누군가가 배신하면은 저주가 있을지어다 하고 한 장은 A가 갖고 한 장은 B가 갖고 한 장은 신당에 보관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거를 받아들일 때, 당시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재연한 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은 결국 마지막에 구속사적으로 일어날 한 가지 사건, 예수의 영원한 속죄의 사역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이 피를 보면서 뭘 생각하냐 하면 두 가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죄가 이렇게 무섭구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이 저렇게 고난당하지 않으셨을 텐데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여 죽으셨구나.’ 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받아야 될 죄인데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구나. 그러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고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십자가에서 떠났다가 다시 십자가에 돌아오고 다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오고 하는 것의 반복입니다. 이렇게 회복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비밀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사람, 그에게는 하늘나라가 소유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누구냐 하면 리차드 백스터가 한 말입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같이 이 부분을 같이 읽읍시다. 시작하십시오. “보이는 말씀인 성찬을 행할 때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비밀을 깨달아 항상 우리 몸에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날마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으로 살도록 언제나 십자가에 감격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을 향해 우리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도록” 잔은 음료를 뜻합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물 없이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죄 용서 없이 살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번 읽어보십시오.. 문제 2번입니다. 시작하십시오. “구원 받은 자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 삶은 무엇 무엇에 의해 마음과 삶이 지배받는 삶입니다. 이때 신자는 최고의 복을 누립니다. 괄호 안에 들어갈 게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마음과 삶이 집에 가는 삶입니다.”
이어서 3번 문제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잔을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피를 다 쏟으시고 죽어야지만 우리가 구원받을 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4번 성찬에 참여하여 포도주를 볼 때 무얼 기억하고 깨달아야 됩니까? 예수께서 우리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5번 진노를 막기 위해 피 흘리셔야 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 앞에 맺은 언약을 파기한 대가였습니다. 내버려두면 영원한 형벌을 받을 테니까, 그래서 고대의 언약 체결 의식에 익숙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심각성을 호소하시기 위해 그 형식을 빌어서 언약을 파기한 대가가 피를 쏟는 죽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제사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 제사 제도의 마지막 성취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 무엇을 바라 보셨겠습니까? 자기는 죽지만 하나의 밀알로서 죽지만 이것을 통해서 자신을 믿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많은 후사들을 보며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7번 예수님은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감사로 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래간만에 저와 함께 한 설교 공과 어떠셨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번 고난 주관도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으시고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박수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