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녹취자: 안두현
어제는 어떻게 우리가 그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제 그렇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목적,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긍휼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에게 특별히 해당되는 것인데 죄인들이 죄를 지으면 죄라고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모자라는 것인데 그러한 죄들을 짓게 되면 인간이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고 영혼의 상처와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참해지는데 그 사실은 죄를 지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해진 것인데 사람이 비참해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죄를 짓고 나쁜 짓하고 살아온 과정을 보면 불쌍하겠습니까 안불쌍하겠습니까? 안불쌍한 것입니다. “그짓 하더니 저렇게 됬구나 아이구 저런”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지어왔던 그런 것들 보다도 지금 현재의 죄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된 상태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긍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차가운 논리만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긍휼이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우리들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긍휼이라는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거스리고 강팍한 마음을 갖고 그래서 결국엔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그런 인간의 모습, 그런 인간에 대한 긍휼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렇게 안식을 얻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백성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긍휼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지만 돌아오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지 죄 가운데서 계속 살아가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돌아오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힘으로 마음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순종하려고 애를 쓰고 그리고 불순종으로 인하여 자신이 이런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떠나서 불순종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런 신앙 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한 긍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신 분이었기 때문에 죄인들이 어떻게 쉽게 시험을 받고 인간의 몸을 입고 사는 이세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시련과 시험에 시달리는 연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죄는 없으셨지만 예수님이 체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쓰라린 고통과 아픔과 이런 것들을 체험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마음 중심 속에서 정말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마음이 강팍해져서 자기 자신을 내팽겨쳐서 주님 앞에 불순종하게 살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마음의 강팍함을 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애를 쓸때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기 보다는 그 사람의 영혼의 불쌍한 상태를 보시고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죄가운데 계속 있으면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긍휼이 계속 죄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담대함을 제공할 지 모르지만 그 죄가운데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그 긍휼이 말할 수 없는 회개의 동기가 되고 말할 수 없는 은혜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이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광야에서 멸망당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는 정말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무시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무시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무시로 하나님이 그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할 필요성을 아주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어떠한 식으로도 승리할 수 없고 어떠한 식으로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어느 한 순간에 생애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쏟아지는 은혜를 받는 것, 그것만 가지고는 성화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쏟아 부어주시는 생애적인 은혜가 정말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늘 넘어지고 결심이 약해서 실패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이 강력하게 그의 마음을 돌이키고 그리고 생애적으로 그를 만나주시는 회심이 필요합니다. 정말 필요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보면 지리멸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진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아침 구름과 같아서 정말 지리멸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지리멸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뜨겁게 주님을 만난 다음에 또 미끄러져서 세상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애달프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도 한마디로 지리멸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지리멸렬한 삶을 사람들에게는 정말 더없이 필요한 것이 정말로 생애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 오늘 아침만으로는 안됩니다. 오늘 저녁에도 하나님의 그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그 은혜, 하나님의 그 긍휼이 우리의 마음에 물붓듯이 부어지는 그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쏟아지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랬지만 우리는 매순간 그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내버려 두시면 그렇게 강팍해지고 주님 원망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주님께서 어루만져주십시오. 정말 새롭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 늘 계속해서 변화시켜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해주시려고 보좌 우편에 계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주님을 바라 보면서 그 은혜를 힘 입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기적을 보지 못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그렇게 엄청난 기적을 보지 못했어도 그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주님 옆에서 시시때때로 만져주시는 그런 은혜, 사랑이 더 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