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7일 교직원예배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
한때 그렇게 총명하고 믿음생활을 잘 했던 사람인데 미끄러지는 경우가 있죠 신앙 생활하면서 우리들이 어느 정도 미끄러지는 것은 우리가 늘 있는 일이지만은 근데 이러한 미끄러짐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그저 고민하는게 너무나 많고 어려운 일들이 아주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믿음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계속 빛을 받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어두움이 우리를 덮어요 그래서 이중의 어두움이 아니겠어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직은 모르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가 많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우리들이 바로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이 있으니까 그게 어두움이 되고 또 하나는 이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 앞에 죄에 물들게 되면은 주관적인 어두움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지혜자가 말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같은 언어들을 반복을 하는데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라고 얘기하죠. 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거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 앞에 나오는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동일한 내용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금지하고 혹은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다양한 명령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또 이렇게 믿어라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때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죠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명령하시는데 그대로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게 문제지요 이러한 것들을 극복해내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이 뭐냐 하면은 자기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사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둔다’ 라고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그 말씀이 영향을 끼치도록 말씀의 영향력을 마음속에서 선한 의지를 가지고 보존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마치 등불을 켜서 한 번 비추고 거두워 꺼버리는 것이 아니라 등불에 불을 붙여서 천장에 매달아 놓으면 지속적으로 거기에서 빛이 나와서 방안이 환하게 되는 것처럼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예배시간에 깨달음도 있고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그런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매일매일 자기가 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고 때로는 찔림과 때로는 회개와 때로는 위로와 때로는 격려와 몰랐던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 이러한 것들이 우리 속에서 계속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부패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을 먹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에 유익이 될 수 없고 또 그것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속에서 잘 소화해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건강에 유익을 주지 않죠 여러분 음식을 먹고 체해 본적 있지요 음식을 먹고 체하면은 그 속에서 음식이 분해가 안 되고 위와 장에서 계속 돌아 다니는 느낌을 받다가 결국은 토하거나 하는데 그때 많은 음식이 배 안에 있어도 몸이 수척해지고 몇 달 그렇게 설사하고 시달리게 되면은 몸이 수척해 지고 살이 쪽 빠지게 됩니다 음식물이 몸속에 있어도 소화되어서 퍼져서 양분을 공급해 주지않으면 같은 음식을 몸 속에 넣고도 몸이 수척해지는 것처럼 늘 자기 주변에 있고 책이 설교가 있고 예배가 있고 성경이 있고 신학 공부가 있고 해도 그것은 몸 밖에 있는 양식입니다 또 그것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것을 지식으로 배우고 건성으로 듣고 한다면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뱃속에 넣고 있는 것과 꼭 같아서 자신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지 못해요 비록 아주 영양가 있는 좋은 음식, 잘 자려진 미식이 아니더라도 보리밭 한 숟가락에 열무김치 한 젓가락이도 그걸 먹고 꼭꼭 씹어서 단맛을 느끼며 뱃속에서 소화가 되어야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되듯이 그런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묵상집이 한권, 경건의 비밀에 대해서 나오는데 사실 우리 교회처럼 정성껏 가공해서 그래서 손만 뻗으면 섭취하게끔 그렇게 만들어주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근데 저는 여러 해 동안 이런 사역들을 출반부나 문서 선교부를 통해서 하면서 느끼는게 뭐냐하면은 교회가 행정과 그 다음에 제도, 목회자의 아이디어와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해 줄수 있는것은 여기 꺼지에요 잘 가공해서 먹기 좋게 아주 편안하게 거기 까지는 해줄 수 있어요 그걸 그 사람속에 집어 넣어 줄수는 없어요 더욱이 그렇게 집어 넣어 진 것들이 그 사람에 의해 소화되어 지는 것은 그것은 목회의 방법이나 목회자의 열심이나 제도나 아니면 책을 만드는 방법이나 기술이나 물질이나 이런 거 가지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청교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받고 나면은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뭐냐하면은 의무였어요. 언약 백성으로서의 의무가 무엇일까?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앎은 외예 없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무에 대한 인식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교회역사를 보면은 중세 시대 때에도 그랬지만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연구들이 신론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은 가장 사변적인 그 작업인데 영국의 청교도들과 개혁파 정통주의 학자들은 이 신론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아주 구체적인 연결되는 그런 진리들을 찾아냈어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그 끝없는 담론 속에서 아주 현실적인 삶에 적용들을 이끌어 냈던 것이죠 예를 들자면,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하면은 그 능력이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하면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죠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개인적인 성경읽기, 개인적인 성경 묵상, 이것을 통해서 마음의 등불이 계속 켜지는 그러한 정신작용이 있을 때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은 잘 기억이 안나겠지만은 시골에서 저녁때 어스름 할 때가 되면은 시골에서 늘 하는 일이 있어요 호야라 그랬어요 옛날에..밤새도록 쓰면은 그으름이 시커멓게 되잖아요 그걸 가지고 우물가나 개울가에 가서 거기에다가 비누를 좀 풀고 모래알을 좀 집어넣고 막 흔들죠 잘 깨뜨리죠 좀더 지혜로우면 지푸라기를 뭉쳐서 막대기처럼 만들어서 그걸 속에다 밀어 넣고 둥그렇게 되어있는 그걸 돌리면서 그걸 닦아내죠 깨끗하게 닦아내서 비누로 씻어서 잘 말려서 저녁때 이제 호야에대가 끼웁니다 그리고 불을 탁 키면은 어제 저녁에는 못 봤던 새로운 등불이야 왜냐하면은 유리를 깨끗이 닦았기 때문에 밝은 빛이 환하게 비치는 거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주일에 예배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매일 매일 성경을 읽어야 돼. 성경을 읽으면서 아! 하는 깨달음이 와야 된다 이거에요 그래서 그 속에서 더 깊이 들어가서 늘 이야기하지만 성경을 읽으면 처음에 우리가 성경을 읽지만 성경을 깊이 읽으면 성경이 우리의 마음을 읽는단 말이에요 우리의 행실을 읽고 그것이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그 빛이에요 그 빛에 다니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말씀의 영향력에 감화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거에요 매일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은혜가 우리속에 살아 있을 때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고 깊은 깨달음이 있어서 이 말씀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때 그때 우리가 올바른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모든 유혹과 그리고 욕심들로부터 하나님 섬길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