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새벽예배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 편은 동북을, 한 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행 27:9-19)
녹취자: 조규연
사도 바울이 바다와 배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좀 안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바다 위에서 살아왔던 뱃사람들, 그리고 그 배를 운행해서 벌이를 하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온 선주들이나 이런 사람들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이제 뱃길을 떠나자고 할 때에 “별로 좋지 않다. 그리고 지금 가면 아마 우리의 많은 물건들도 바다에 버리고, 우리의 생명도 위태로울 거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마 바울의 상식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뭔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응답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상식에 있어서는 평생 바다에서 살아 온 뱃사람과 선주들, 수없이 파도를 헤치고 항해했던 그 뱃사람들에 비해서는 상식이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뭔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분명한 재난에 대한 응답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백부장과 그리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해를 해야 돈을 버는 사람들 아닙니까? 사람을 날라주고 돈을 받고, 한 편으로는 짐을 운송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든지 항해를 하려고 했고, 이제 겨울이 되어서 바람이 불게 되면 풍랑이 정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겨울 기간을 잠깐 피해 있어야 되는데 그 때 출발하는 그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는 불편한 것이 많으니 더 항해를 해서 뵈닉스라고 하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겨울을 나고 로마를 향해 가자고 이렇게 마음의 계획을 세우고 사도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어려움이 없이 배가 항해를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큰 풍랑이 일게 되었습니다. 유라굴로라고 하는 큰 풍랑이 일어났는데, 정기적인 폭풍입니다. 결국은 선체가 휘둘리니까 사람들이 많은 물건들을 다 버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물건을 버리지 않으면 배가 홀수가 낮아져서 가라앉습니다. 파도가 치면 당연히 배는 큰 배나 작은 배나 일단 바다에 들어가서 파도가 세게 치게 되면 다 흔들립니다. 그런데 홀수가 낮아지게 되어 파도가 치면, 물과 그 위로 올라온 선체의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배가 전복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무거운 것들이 많이 실리면, 배 자체는 복원력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기울어져 있어도 내버려두면 다시 배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복원력이라고 하는데 이런 배의 복원력이 현저히 약화됩니다. 왜냐하면 물건을 많이 실으면, 배가 움직였으면 다시 돌아와야 되는데 움직이는 것과 함께 물건이 쏠리면서 무게중심이 이동해서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풍랑을 만나면 일단 사람을 제외하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다 버려서 홀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배가 물 위로 많이 떠오르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많이 출렁거려도 물이 안 들어오고, 또 많이 기울었다고 하더라도 복원력이 뛰어나지기 때문에 파도가 배를 좀처럼 뒤집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짐을 다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은 일평생 바다에서 자라온 사람들의 상식보다, 바다에 대한 경험이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사도 바울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뭘 보여 주냐 하면 사도 바울이 포로로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늘 교통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한참 큰 일이 없을 때 제 맘대로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회개를 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제 멋대로 인생을 사는, 그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말 참된 신앙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놓여있는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비록 뱃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왜 그렇게 되는지 이치는 다 몰랐지만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풍랑과 어려움을 만나서 물건을 잃어버리고 생명에도 위협이 오리라고 하는 것을 굳게 믿었던 바울처럼, 우리도 그렇게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다 설명할 수 없을 때는 많지만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 고난을 이기고, 또 많은 어려움이 올 때에 상식보다 주님의 음성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늘 살아가야할 그런 종류의 삶입니다.
사도바울의 판단이 비록 왜 이 항로를 계속 하면 우리들이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지, 일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성공할 때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좋은 신앙생활이야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목회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은 신앙생활이지만, 잘 나갈 때에 잘 그렇게 안 합니다. 신앙이 돈독하고 성령의 은혜가 늘 함께 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자신의 상식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이 많고 눈에 보이는 사물들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기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면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가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 가고 마음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때에는 철저하게 자기의 상식을 따릅니다. 그리고 자기의 고집과 교만대로 판단해서, 그래서 인생을 힘든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은 이러한 뱃사람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본성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그런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 순간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냐면 정말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상식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처럼 이렇게 배에 대해서 익숙하고 바다에 대해서 풍부하게 아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까 오늘 이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평탄할 때에만 주님을 느낄 수 있는 신앙이 아니라,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늘 주님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참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