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회예배 - 잘한종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다섯 달린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14-30)
녹취자 : 이시내
이 본문은 그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여기에 보면 주인이 타국으로 갈 때에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난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은 왜 똑같이 한 달란트씩 주지 않고 이렇게 각각 다르게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모든 달란트도 그렇습니다. 왜 이 세상에는 정말 우리보다 달란트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가문도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머리도 좋고 사람도 심성도 편안하고 하여튼 모든 면에서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는 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이 주어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금밖에 안주시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아마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달란트의 비유가 나올 때에 한 번도 다섯 달란트를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왜? 어차피 나는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설교를 듣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 자신은 다섯 달란트까지는 아니라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를 가지고 설교를 해봐야 우리에게 뭐가 그렇게 다가 오는 게 있겠습니까. 한 달란트는 나쁜 종이라고 그러셨으니 만만한 것이 두 달란트 맡은 종이라서 저는 항상 이 두 달란트 맡은 종에게 친근함을 보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목회를 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목회를 합니다. 성령운동을 한다고 칩시다. 성령운동 하는 목사가 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처럼 된다고 합니까. 찬양목회를 한다고 칩시다. 다 온누리 교회처럼 부흥합니까. 제자훈련을 한다고 칩시다. 그럼 모든 교회가 사랑의 교회처럼 됩니까. 그거 아닙니다. 해도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결코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이 아니고 영원히 나는 두 달란트다 그리고 아무도 나의 목회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주 바보 같은 일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자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모두 서울 와서 목회하면 시골에서는 누가 목회를 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목회하면 누가 도시에서 목회하겠으며 모두 우리나라에 있으면 선교는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왜 우리를 여기에 또 다른 사람들을 저기에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달란트가 많게 어떤 사람들은 쪼금 이렇게 주고 태어나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예화)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저 서울 변두리에 언덕 달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교인이 그저 한 삼 사 십명 나오는 교회였는데 어느날 신사복을 입은 양반이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잠깐 들르러 왔거니 했더니 매주 나와서 그렇게 열심히 예배를 드리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교회에 온지 한 6개월 1년쯤 됐을까 그랬는데 누구인지는 몰랐답니다. 그런데 그러더랍니다. 목사님 교인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지만 이 예배당 가지고 되겠습니까. 여기다가 교회를 좀 이러이러한 모양으로 잘 지으면 사람도 모이고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더랍니다. 아니 목사님이 누구 염장을 지릅니까. 누구는 교회 짓기 싫어서 그럽니까. 나도 짓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제가 하나 지어서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더니 40억을 드려서 예쁜 교회를 지어서 바쳤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우리나라에 유명한 모 그룹의 친척이랍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한테는 그런 사람을 좀 안보내주실까? 우리는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차별대우 하시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의 관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구차하게 얘는 이래서 주인이 다섯 개를 주었고 얘는 저래서 두 개를 주었고 얘는 요래서 한 개를 주었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심은 무엇이냐면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나 둘, 하나 맡은 모든 종이 주인이 그것을 맡기고 간 다음에 어떻게 하였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을 생각할 때에 아주 무섭고 엄격해서 무엇을 하다가 본전을 손해 보면 반쯤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잘난 척하고 까불다가 본전까지 까먹고 욕먹지 말고 그냥 본전치기라도 하자 하고 땅에다 묻어두고 주인오기를 놀면서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두 달란트 맡은 자는 그것을 가지고 곧바로 가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해서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의 업적은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의 업적의 두 배 반인데 그런데 주인은 똑같은 칭찬을 해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가.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말씀드린바와 같이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준 십자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소명이 있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를 보고 부러워하거나 나보다 형편이 나은 동역자들을 바라보면서 시기하거나 이러는 것은 우리의 목회를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오늘 이 종을 보면 주인이 세 마디로 칭찬합니다. 잘 하였도다. 두 번째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랬습니다. 밑에부터 생각해봅시다. 이 종으로 하여금 열심히 장사하여 이문을 남기게 했던 동기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섬기는 사람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예화) 영국에서 방송을 하는데 여왕이 나와서 연설을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이 선에 이상이 생겨서 줄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방송국에 있는 직원이 이쪽 전기줄과 저쪽 전기줄을 붙들고 왕이 연설이 끝날 때까지 붙들고 있어서 자기 몸을 사용해서 전기가 통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나 하나쯤은 어떻게 되어도 이 폐하가 연설하는 이 내용이 이 시간에 모든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충성스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태리 폼페이에 가보면 순식간에 폭발이 일어나서 화산재가 집을 다 덮어버리는 재앙이 기원전 5세기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그 뜨거운 화산재가 쏟아지면서 사람들이 멸망한 흔적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그 화산재가 불덩어리처럼 쏟아지면서 사람은 타버리고 굳으면서 흙이 공간이 생깁니다. 그 공간에다가 석고를 채워 넣으면 원래 있던 사람의 모습이 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둘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엄마가 아이를 젖먹이다가 화산의 재에 묻힌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꼭 끌어안고 엄마가 죽었습니다. 물론 아이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병사가 창을 들고 궁궐에서 똑바로 선채로 죽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충성했던 사람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가 아니라 충성스럽게 주인의 명령을 받들 때에 이 사람은 남겼을 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충성을 이길 덕목은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재주가 많고 인품이 의심스러운 사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재능이 조금 모자란 것 같아도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을 동역자로 쓰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와 일생동안 동행하셨고 그를 나의 친구라고 불렀고 대면하여 말씀해 주신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저는 나의 온 집에 충성하였음이라 우리 비록 다섯 달란트 못 받았어도 큰 능력 없어도 충성하는 종들이 되십시다.
두 번째는 착하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가만히 보면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다툼도 많이 일으킵니다. 왜? 교회를 위하는 열심이 있으니까 의견충돌이 날 때에 다른 사람한테 굽히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사역의 세계에서 보면 열심히 하나님의 일 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아주 거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와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안하무인으로 여기고 자기처럼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을 깔보고 무슨 일을 할 때에 자기편에 서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편을 갈라서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착한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인격적으로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에 비록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의 착한 인품과 생활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가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신경 써지는 일이 많고 또 규모가 커지다보면 사람들을 쉽게 미워하게 됩니다. 왜? 10명이 앞으로 가 그러다가 아니 아니야 내가 잘못했네 뒤로 가 그러면 주춤주춤하다 가면 됩니다. 그런데 수 천명이 걸어가다가 앞으로 가 아니 아니야 내가 잘못 말했어 그러면 사람들이 막 밟히는 것입니다. 쓰러져서. 그러니까 누구에게 무슨 일을 시켰을 때 정확하게 해내면 맘이 드는데 그렇게 못해내게 되면 화가 나고 일이 아주 힘들게 틀어져서 뒷수습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착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또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서 우리가 무엇인가 복음사역을 하려고 할 때 강하지 않고 우리들이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바람에 밀리는 것처럼 줏대가 없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 조금만 어려움에 갈 길을 양보하는 사람들은 지도자 구실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착한게 아니라 무능하고 결단력이 없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려면 뜻을 세워야 되고 뜻을 세우면 과감해야 하고 과감하기 위해서는 용기 있어야 하는데 이런 삶을 계속 살면서도 사람을 향해서는 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업가 냄새 그리고 지도자 냄새만 나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화)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독재자다 아니면 근대화를 일군 사람이다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저도 뭐 정확한 평가를 내릴 입장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비서관으로 있던 분이 박대통령을 평생 흠모했습니다. 그분이 신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서관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석 비서관도 아니고 비서관이 많이 않습니까 어느 날 대통령이 부르더랍니다. 그러더니 어디서 들었는지 부인이 많이 편찮다는데 고생이 많겠소 그러면서 봉투를 하나 주더랍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와서 펴보니까 그 속에 부인이 편찮아서 마음고생이 심하겠습니다. 어려운 때지만 잘 극복하시고 부인이 속히 쾌차하기를 바랍니다. 이거 하나를 받고 이 사람이 평생 그 사람을 못 잊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지도자는 교회에 지도자로서 힘차게 일을 해나가면서도 항상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기가 원하는 것만큼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언제든지 그들도 마음을 추스려 돌아오면 일꾼으로 받아줄 수 있는 아량과 너그러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회에 복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뭐라고 칭찬했습니까. 잘 하였도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20년 지나면서 교역자들은 이야기할 것도 없고 직원들을 수없이 써봤습니다. 지금도 한 25명의 직원이 교회에서 일을 합니다. 그중에 한 19명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직원들을 써보면 직원들을 좀 쓸려고 하는데 그 애 어떻겠느냐 하면 주위에서 아 그 사람은 까다롭고 좀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겠느냐 그러면 그 사람은 진짜 사교성도 좋고 모든 사람이 싫다 그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다는 사람은 일을 잘 못하고 일을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래서 항상 직원들에게 마음은 둥글고 일은 네모지게 그것을 구호처럼 가르칩니다. 그런데 마음이 둥근 사람은 일도 둥급니다. 그래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꼭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된다고도 말할 수 없고 그냥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담임목사인 내 입장에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을 기가 막히게 해냅니다. 두부 잘라놓은 것처럼 딱 잘라지고 급한 일이 있으면 밤도 새우고 밥도 안 먹으면서 시간 내에 해내고 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꾸 부딪칩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일을 해서 도움을 받는 것보다 뒤치다꺼리가 더 힘들고 진이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경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착한 사람들은 그만큼 잘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장인이 연장 탓 안한다고 하는데 거짓말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장인은 쓰는 도구부터 다릅니다. 쓰는 도구부터 다릅니다. 장인은 다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갖고 다니는 도구를 보면 이 사람이 큰 기술자인지 대충하는 시로도인지 금방 판단이 됩니다. 전문가는 우리가 쓰는 것과는 다른 도구를 가지고 씁니다. 어느 커피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집이 커피 집을 합니다. 그냥 커피 끓여서 물을 타면 되지 않습니까 온도계를 가지고 와서 컵 속에다 집어넣고 온도를 잽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커피를 타는 것입니다. 다릅니다.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비교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평생의자만 만드는 기술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일시작하면서부터 다른 것 아무것도 안 만듭니다. 오직 의자만 만듭니다. 그런데 그 의자가 우리 눈에 보기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 눈에는 평가가 되는 모양입니다. 세계적인 의자입니다. 혼자 앉는 나무로 만든 의자 한 개에 삼천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저 사당동 중고 가게점에 가면 천오백원에 가져가라는 의자 많습니다. 삼 천원짜리도 있습니다. 우리는 칠 백원짜리 의자도 보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쓰던 의자 같은 것 그냥 도리로 땡처리 전문점에서 와서 가져갈 때 천 원씩 쳐서 가져갑니다. 그런데 그 의자는 삼천만원입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천지차이입니다. 엊그제도 신문에 보니까 서울에서 전라도 고창으로 메밀 칼국수를 먹으러 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잘하면. 그리고 내려가서 먹어보고는 역시 다르다 그러고 올라온다고 합니다. 혹시 여기서 장항에서 오신 분 계십니까. 장항에 한번 심방하러 내려갔었는데 예배가 끝나고 나서 아구찜을 사주겠다고 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먹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먹은 것은 전부다 엉터리고 흉내를 낸 것이구나 그 다음서부터는 아구찜이 맛이 없습니다. 그 집이 워낙 탁월하게 잘하니까.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우리는 그냥 착하고 추상적으로 충성된 것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부지런히 어떻게 하면 잘하는 것인지를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게서 겸손하게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들을 처음 뽑을 때 항상 물어봅니다. 자네 하고 싶은 사역이 무엇인가? 유년부를 사역하고 싶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유년부 사역을 제일 잘 하는 사람 세 사람만 대보라고 하면 멈칫멈칫합니다. 그럼 이 사람은 진짜 잘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던지 아니면 모두 시시해서 자기가 최고가 되어있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럴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냥 하고 싶다 하는 이것과 꼭 해야지 하는 그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진짜 그렇게 하고 싶다면 누가 잘하는지 배우고 싶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일생동안 배우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목회가 무엇인지를 배우면서 목사가 되었으니까 우리는 목회를 다 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배우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도 인정해준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간 후에 그 혼란스러운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그가 제일먼저 한 것은 율법을 연구하고 그대로 행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집에서 거느린 군사를 데리고 롯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칼을 쓰는 일에 익숙한 자라고 했는데 히브리말로 하닉이라는 단어인데 많이 훈련받은 그런 뜻입니다. 많은 훈련을 통해서 그렇게 해서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미나에 오셔서 은혜를 많이 받고 충성되고 착한 종들이 되기로 우리 모두 함께 다짐하고 두 번째는 기술들을 잘 배워서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요긴하게 쓰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충성스러운 마음이 훌륭하지만 좋은 기술이 거기에 뒷받침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다윗이 충성스런 마음으로 저놈의 골리앗 내가 싸우리라 하고 홀홀단신으로 뛰어나갔지만 그렇게 뛰어나간 것은 처음이었지만 물멧돌은 수없이 던져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칼을 쓰기보다는 물멧돌에 자신이 있었기에 칼과 창을 버리고 물멧돌을 들고 나간 것입니다. 지금도 이라크 지방에 가보면 물메를 던지는데 여섯 살, 일곱 살 먹은 애들이 오십 미터 바깥에다가 담배를 세워놓고 그것을 맞춘다고 합니다. 심하면 필터를 맞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그것을 얼마나 연습을 했겠습니까. 다윗이 그렇게 수없이 연습한 것입니다. 오십 미터 바깥에 담배를 세워보십시오. 보이기나 하나. 우리같이 눈 나쁜 사람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맞춥니다. 물멧돌을 지금도.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얼마나 물멧돌을 가지고 요긴하게 썼겠습니까. 사냥하고 뭐하고 하는데. 그것을 쓰던 기술을 잘 익숙한 기술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는 것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일반적으로는 있는 것을 사용하셔서 당신을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만약에 잘할 수 있게 된다면 그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