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새벽예배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
녹취자 : 이시내
그렇게 해서 이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습니다. 그랬더니 온전케 되신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의 인성에 무슨 죄가 있다던지 문제가 있어서 죄로 말미암는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갔다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육체를 지니신데서 오는 죄는 없지만 그러나 한계, 한계가 죄는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이 큰 고통을 못견딘다고 해서 죄는 아닙니다. 어린아이니까,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못 먹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런면에서 예수님께서 그런 한계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런 것들이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 그렇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한계를 계속 넓혀가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자기의 몸을 드리실때에는 정말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육체 이것이 육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위한 구속의 제물로 당신을 드려야하는 명제 앞에서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그분의 몸을 제물로 받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에 충분한 헌신을 드리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린 아이일때 십자가를 지시고 죽게하시지 않고 그렇게 성년으로 모두 자라게 하신 후에 그의 몸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이제 두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온전케 되었은즉 모든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라고 나오는데 성경대로 표현하면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는 것은 다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율법대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치루셨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는데 영원히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세월이 좀 흘러가면 행위로 구원받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영원히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율법대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은 감당하고 죽으신 형벌을 인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심을 인해서 그것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 방법은 같은 방법입니다. 그런면에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른 근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 외에는 이렇게 우리의 근원이 되시는 분은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근원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아주 굳게 믿고 그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라는 확신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없이는 그리스도와 깊이 교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꼭 필요한 대상이 아니고는 우리가 그 대상을 깊이 탐구해서 알 수가 없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상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그리스도가 절박하게 내 인생에 필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없는, 그리스도가 제외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불행한 인생이다 라고 하는 그런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견디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오늘날 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핍박받을때에 바꿔버립니다. 핍박에서 피하는 것과 예수그리스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핍박의 시기에 믿음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평안한 시기에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핍박의 시기에는 노골적 배교를 요구하는데 오늘날 세속주의는 노골적 배교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때에 더 많이 믿음을 빼앗깁니다. 상실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제 그리스도에 대한 이 절대적인 신앙이 없으면 껍질입니다. 언젠가는 여건이 아직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으로부터 유혹이 강력하게 온다던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온다던지 하면 언제든지 주님을 버립니다. 아주 쉽게 버립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가장 커다란 의무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누구에게 그런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명백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은 믿음에서 나며. 그런데 여기는 순종하는 자에게 근원이 되셨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순종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진짜 정말로 믿는 사람들, 진실로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결국은 순종에 이르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할 때에 처음 믿음은 구원을 얻는 즉각적 믿음이지만 뒤에 나오는 믿음은 성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 성화의 삶을 많이 살면 살수록 그것은 하나님께 많이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온전한 순종의 삶,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보면 복음의 목적 그 자체가 온 세상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을 몰랐을 때에는 마구잡이로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삶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심령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노가 머물러 있는 다 깨진 막되먹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복음을 듣게 되면서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구나. 예수님이 나같은 인간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으셨구나. 이런 것들을 깊이 뼈져리게 느끼면서 그 앞에서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깨뜨려지면서 비로소 순종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비밀은 하나님을 거스리며 완고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보여지지 않습니다. 마치 수박을 갖고는 있는데 그냥 계속 겉을 핥아 먹고 놀고만 있을 뿐입니다. 호두를 주었는데 한 아이는 입에 사탕처럼 계속 빨고 있습니다. 갖고는 있으나 맛은 모릅니다. 그런데 형은 그것을 망치로 깨뜨려서 속을 파먹습니다. 맛을 모르면 그다음에는 호두를 빨아먹다가 방바닥에 뱉어놓습니다. 맛이 없으니까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절대로 순종하지 아니하고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비밀입니다. 보여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