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새벽예배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장이라 칭함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장 10절)
녹취자 : 김수완
며칠 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멜기세덱은 밑도 끝도 없는 제사장입니다. 그 근원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브라함을 맞이하고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 이렇게 이해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매우 신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멜기세덱에 비교한 이유는 사람마다 스승이 있고 제자가 있고 가문이 있고 그래서 대제사장의 직분은 아론의 후손들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 내려오는 혈통이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대제장이라고 하시면 어느 반열에 세우면 되겠습니까? 누구 반열에 세우면 되겠습니까? 세울 수가 없습니다. 우선 그분은 사람의 혈통을 따라서 죄 있는 사람을 좇아서 태어나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아무리 뛰어난 대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자기가 태어난 가문이 있고 선임자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셨으나 사실 요셉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대제사장들끼리는 그들의 하는 사역이나 일들이 모두 같았고 공통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를 지내서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을 화해시켜주는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번에, 일시적 제사가 아니라 영원한 제사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화목케 하는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있으면 예수님이 그 뒤에 서시면 되겠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구 뒤에 줄을 세워서 계보를 만드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는 쓴 사도바울이 이것을 썼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그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예수님이 대사장이면서도 사람의 계보에 속하지 않은 사람, 그런 신비한 인물을 찾으니까 구약에서 딱 한사람, 멜기세덱이 나옵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을 세우면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았다라고 했는데 반차라고 하는 것은 대제사장이 아닌 제사장들은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장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사장의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예수님 시대 때-세례요한 시대니까 예루살렘을 위시하여 이스라엘 쪽에 있던 제사장의 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18,000명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에게 그 당시 제대로 생활비를 주었다기보다 자기 직무를 하는 날이 오면 가서 직무를 수행하고 그 다음에 다시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고 살든지 짐승을 치고 살든지 그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정확한 수요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반차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라고 세웠다라고 하는 것은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은 구약에서 밑도 끝도 없는 대제사장인 멜기세덱 같은 그런 존재로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근원을 캐자면 이 세상에서 멜기세덱과 같지만 예수님이 아론과 그 다음의 제사장들과는 혈통적인 관계가 있지만 멜기세덱과 예수님이 무슨 혈통적 관계가 있겠습니까?
비유를 그렇게 한 것입니다 . 결국은 밑도 끝도 없는 분이시다, 멜기세덱을 파고들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파고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근원을 계속 파고 들어가면 하나님이 직접 보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지상에는 밑도 끝도 없는 분이시다,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시고 죽으시고 그 육체가 하늘로 올라 가셨으므로 밑도 끝도 없는 존재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린 것입니다.
그런 모든 영광스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하면 아들이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 온전케 되였은즉 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오신 모든 낮아지심이 겨냥하고 있는 마지막 궁극적인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가 우리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화목 제물로 바쳐서 제사를 드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을 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 아들을 화목제를 위한 제물로 받으실 때 어차피 죄 없는 몸으로 이 세상에서 오셨으니까 그냥 받으시면 되는데 이 세상에서 온갖 고난과 쓰라림을 다 맞보게 하시고 거기에서 그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 아들이시라도 온전케 되시는 순종을 통해 성숙하셨을 그 때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였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믿는 도리의 순종, 복음의 도리를 믿는 순종, 복음의 도리를 통해서 거룩해져가는 거룩함의 순종, 복음에 계시된 도리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예배의 순종. 이런 모든 분야에서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당신이 보내신 아들과 더불어 화목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기대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이신데도 순결하셨어도 고난을 통해서 더 온전케 되고 순종을 배우게 하셔서 당신 자신의 몸을 대속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제사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도리를 기억해보면 우리의 믿음의 결국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배우게 됩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죄도 죽일 수도 없고 거룩함도 이룰 수 없고 하나님과 친교도 없고 둘 중에 하나만 남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삶이 남든지 배교적인 삶이 남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온전하고 순전한 당신의 아들인데도 받으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 온전케 하신 후에 그 아들의 희생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순결하지 않고 죄가 많은 우리들은 얼마나 더 많이 순종해야 되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이 겨우 거룩해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