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9일 교직원예배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 25:21-22).
아마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자기에게 악을 행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일 겁니다. 사실, 용서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그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요? 너무 어려운거죠. 왜냐하면, 미움이라고 하는 거는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미움의 감정을 살인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런데, 그, 그래서 그 악인들이 고통을 받고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잘 안되고 고통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그게 비존재로 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거 에요. 그 인간의 미움이라는 게 그런 거거든요! 없기를 바라는 건데 .... 그러니까 그가 주리고 배고프면 기뻐하겠죠! 왜냐하면 그게 죽음으로 점점 다가가는 거고, 또 죽음을 흉내 내는 것이잖아요. 음....... 그래서 우리들이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내심 기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라 이 얘기에요.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거거든요. 자비를 베풀라는 얘기죠. 그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감정에 반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떻죠? 너무 너무 미워서... 그래서 저 사람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힘이나 권력이 나에게는 없어요. 그럴 땐 어떻게 되죠? 자기를 사라져버리게 하는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이 이렇게 미움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면은 자기 자신이 죽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거 에요. 그렇게 그 힘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사랑을 뒤집어놓고 생각하면 되요.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벌판에 내다 놔도 살 것 같잖아요.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이면은 왕궁에 살아도 못 살 것 같은 거죠! 그래도 살 수 있으면 그거는 진짜 미워하는 게 아니죠. ‘벌판에서 어떻게 둘이 그렇게 살 수 있냐’ 이렇게 말하면 진짜 사랑하는 게 아니듯이 왕궁에서 그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으면 진짜 미워하는 게 아니죠! 그처럼 인간의 이 미움이라는 감정은 훨씬 강력해요. 어떻게 보면은 사랑의 감정보다는, 현실적으로 볼 때 사랑의 감정보다는 미움의 감정이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마치 힘의 위대함을 느낄 때가, 공터에 집이 계속 지어졌을 때에 힘의 위대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폭탄 같은 거를 퍼부어가지고 막 그거를 부셨을 때 힘의 위대함이 느껴지듯이 현실세계에서는 오히려 악의 위력이 선보다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미움의 파괴력이 사랑의 건설적인 힘보다 훨씬 강력하게 느껴지는 거 에요.
근데 이제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건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걸 정면 적으로 거스려 살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 에요. 그게 뭐냐 하면, 원수들을 보살피라고 하는 것이었죠. 근데 이것은 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여기에는 엄청난 자신의 변화가 필요한 거 에요. 미워하고 저 사람이 원수인거를 아는데도 그것을 극복하고 선대해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어...내게 선을 행한 자에게 마음이 끌리고 악을 행한 자를 배척하는 인간의 이 기본적인 감정의 체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야 되요. 그거보다도 더 높은 가치가 자기를 움직이고 있어야 되요. 그래서 진정한 자비심이 종교에서나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현실세계를 떠나지 못해요.. 그런데 종교는 영원을 다루어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셔요. 그러한 빛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강한 본성, 선대해 주는 자에게 마음이 끌리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미움이 생기는 이것을 거스를 수 있는 어떤 가치, 이런 것들이 신앙 안에서 주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뭐라 그러냐면,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그러니까 현실세계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큰 고통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면 그거보다도 더 큰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 그리고 보상을 떠나서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올바른 도리라고 하는 신앙, 이것 때문에 선을 행하게 되는 거.. 이것이 바로 신앙 생활 이에요.
오늘 성경에 보면은 숯불을 피워서 머리에 놓는 것 같다 그랬는데 뭐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그렇게 원수에게 선을 행하면 선을 행할수록 너를 미워하는 그 원수의 받을 하나님의 심판은 커져간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고, 정 반대로 이게 악인의 머리에 이글거리는 숯불은 진노의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의 감동을 가리킨다 이렇게 표현하는데 둘다 해석의 근거는 있다고 보는데 저는 후자의 해석을 훨씬 더 본문과 어울린다고 봐요. 전자의 해석이라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 잘 해주는 이유가 심판받게 하기위해서.... 이건 말이 좀 그렇잖아요. 안 해줄 라면 해주지 말지.. 열심히 자기의 원수들에게 선대를 해주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저 인간이 심판받게 하기위해서.. 그거는 아닌 거 같고, 그래서 감동인 거 같애요. 감동. 그래서 감동이에요. 그래서 그 악인은 쉽게 감동받지 않거든요. 그런데 꾸준히 선을 베푸는 거... 그러면 받드시 감동을 받아요. 또 그것이 선을 행하는 사람의 승리에요. 그러니까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인생살이에서의 그 승리를 남을 짓밟고 일어서서 뭐 1등이 되고. 하는 그런 속에서 이 삶의 승리를 이야기 하면 안되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승리는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 나 때문에 그것을 승리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음.... 살면서 한두 번 선을 행한 거 이거는 그렇게 기억에 많이 안 남아요. 그런데 어... 꾸준히 선을 행하며 모든 악한 사람들이나,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선의로 이해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악한 행동으로 갚지 않고 자비를 베풀면, 그것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강물은 지나가 버리고 나면 다시 지나온 지점으로 돌아가지 않지만 땅은 그 강물이 지나간 흔적을 남기죠. 그래서 꽃피고 열매 맺고 새들이 깃들고 수초들이 돋아나고 하듯이 악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의 인생도 그러하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은 삶의 소망이, 사람이 생에 대한 집착을 끊고 죽음으로 가까이 가잖아요? 그러면 죽기 직전에 두 가지 심리적인 현상이 일어나요. 하나는 뭐냐 하면 일생동안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확 스쳐가는 거 에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은 아무도 미운사람이 없는 거 에요. 몰라 또 중국 영화에서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이 원수를 갚아다오 그러고 죽는 사람에게는 모르지만은 일반적으로는 죽기 직전에 파노라마처럼 그 어마어마한 양의 영상이 확 지나가요. 그다음에 모든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사라져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미움이라는 거 자체가 자기의 이 지상의 삶에 대한 집착에서 생겨나는 거 에요. 대부분... 신령한 것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집착에서 생겨난 것이 말하자면은 원수 맺는 것이고 미워하는 것인데 그 삶의 집착을 딱 내려놓으니까 미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죠. 용서하게 되는 것이죠.. 그게 신앙 없는 일반인의 삶속에서도 그런 모형들이 일어나게 되요. 그러면은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은 ‘네게 상을 주시리로다’ 그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이 현실의 세계의 너머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대한 소망가운데서 살면 용서할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고 모두 자비를 베풀 수 있고 그런 마음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