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새벽예배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9절-18절)
녹취자: 박효준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다메섹의 경험을 또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다메섹의 경험을 이야기 하게 되는 것은 결국은 자기를 움직인 하나님께서 자기를 움직인 그 핵심이 무엇인지 그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앞에서 이미 사도가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도 예전에는 자기를 고소하는 사람들, 유대인들과 꼭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유대인과 아주 똑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 핵심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를 움직이셨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른 사람, 예전과는 다른 삶, 예전과는 다른 인생의 목표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다메섹에서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강력하게 움직이신 사건의 핵심이 무엇이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가 바뀐 그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 이제 이 사람에게 있어서 이렇게 커다란 전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교 안에 있을 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본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본 하나님과는 너무 다른 하나님입니다. 다른 하나님 이었다기 보다는 하나님에 관해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라고 하는 통로를 통해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어느 부분만 지식을 가져서 그 지식을 가지고 나머지 지식이 없는 부분은 자신들이 선을 그으면서 하나님을 만들어 냈으니까 그 하나님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셨던 그 하나님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형제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사도가 하는 것입니다.
‘ 나도 예전에 나를 고소하던 사람과 똑같은 입장에 서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알고 그리고 그를 따르고 믿는 사람들을 지금 하는 방식과 똑같이 내가 붙잡아다가 심문을 하기도 하고 또 그를 증거하는 스데반을 죽이자고 하는데에 가편투표를 하고 그런식으로 인생을 살면서 결국은 여기까지 온것이다. 그러다가 열심이 뛰어나서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청해 다메섹으로 달려가는 그 길에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거다.’
그러면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유대인들이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그 말을 못하게 합니다. 사실은 유대인들에 관해서 생각을 해보자면 이해가 안갑니다. 왜냐하면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들은 기적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신앙이 종교이고 우리가 믿는 신앙이 참된 것이라면, 헬라인들은 자기가 알아듣게끔 지혜롭게 이야기를 해줘야만 그게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이었고, 유대인들은 기적을 보여주면 ‘아! 하나님이 과연 그들 가운데 계시구나’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든지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게 하셔서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든지 그런것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다른 기적은 오히려 구하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래서 사도가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못믿습니까? ‘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기적을 구하면서 하나님이 그것도 못하신다고 그러면 그 분이 하나님 이실 수 있느냐 이 얘기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능력을 안 믿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실 수 가 없다. 안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일과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해하고 나니까 비로소 나사렛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일수가 없고 또 죽은 자는 하나님이 다시 살릴수 없다 라고 생각이 된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에 이런 의문이 들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여태까지의 모든 신앙의 확신들과 신념들을 다 부셔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관심은 지금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서 이방인인 로마사람들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오셨다고 하니까 이것이 맘에 안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편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어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이 함정이 편견입니다. 편견이 왜 신앙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냐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과 사물들의 질서는 이러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분이어야 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셔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진짜로 그렇게 가르쳐주시는 진리를 따라서 형성 되어야 할 믿음의 규칙이지 자기가 그 규칙을 만들어서 하나님 에게 명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 교만이 모든 악의 어머니입니다. 그 교만 때문에 우리들이 죄를 짓게 되고 교만 때문에 부주의 하게 되고 교만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고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안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절제가 모든 덕의 어머니라면 이 교만은 모든 악덕의 어머니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사람들이 지금 자신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이 악에 빠져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끊임없이 우리 중에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잘못된 신념을 계속 해서 버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버려야 합니다. 버리고 또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고 못박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쥐꼬리 만한 신앙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전부인것 처럼 그리고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교만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의 말씀은 겸손한 자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가운데 이 진리를 깨달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