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새벽예배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사도행전 28:16-19)
녹취자 : 이민희
아무리 믿음이 좋고 결단력이 있어도 지혜가 없으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바울은 이 두가지를 훌륭하게 겸비한 사람이구나’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보면, 진짜 고난을 받는 이유가 예수님 때문인지 자신이 슬기가 없어서인지 구별이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기도 하고, 우리 삶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을 때도 고난이 오기 마련입니다.
로마에 들어간 많은 죄수들 모두가 황제에게 재판을 받을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에게는 혼자서 생활하도록 군사 1명을 붙여주었습니다. 특별한 배려였다고 여겨집니다. 긴 여행 중에 지친 몸을 사흘정도 추스르고 난 다음에 사도가 사람들을 불렀는데 그 사람들이 누구냐면 로마에 있는 유력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부를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랍비’라고 하면 깊이 존경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쉽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랍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바울을 이정도로 생각을 했겠지요. 이렇게 유지를 모아놓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참 슬기로운 태도였습니다. ‘내가 재판을 받으려고 여기에 왔는데 혹시 당신들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을 당사자로 하는 재판을 하겠다고 하니 동족을 모함하고 어렵게 하려는 불순한 송사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우리 조상들이 믿는 교훈을 배척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루설렘에서 유대인들이 나를 고발하였고 그래서 재판을 받았더니 잘못한 것이 없어서 나를 풀어주려고 하였는데 유대인들이 안된다고 적극 반대했기 때문에 내가 어쩔수 없이 황제에게 송사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의도는 이 송사를 통해서 내가 죄가 없기 때문에 내 무죄를 확증하고 풀려나가기 위해 온 것이지 동족을 모함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라고 상세히 고한 것입니다.
이게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에 대한 적대감을 없애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가 로마에 온 진짜 이유는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관심사는 거기에도 유대인이 있는데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로 인해 시험을 받았고 ‘유대인들로 인하여 받은 시험을 찾고’라고 성경에서 말했듯,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자신이 고통 받는 것은 능사가 아닌데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방해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에서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그러면 유대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요 복음을 전하려는 자신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고 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유대인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지혜로운 태도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진리의 이유가 아니고는 다른 것들 때문에는 이들과 부딪치지 않는다’라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정중하게 자신들이 자기가 여기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태도인지 모릅니다.
기독교는 참 대단합니다. 가는 곳마다 회사가 생기면 신우회가 태어납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우리나라에는 직장인 선교 총연합회 같은 곳이 있어서 한 회사 한회사의 신우회가 산업별로 묶이고 산업별로 묶인 신우회가 전체로 묶여서 전 공무원 신우회, 전 금융인 신우회같이 기가 막히게 조직이 잘 되어있습니다. 점심시간에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그럽니다. 저도 교회 안에서 변화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회심하고 침체에 빠져 방황하던 중 창고에 모여 함께 성경공부 하던 신우회모임(6-7명)에서 변화되었습니다.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직장생활 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잘 이행해야만 본이 되고 빛이 됩니다.
(예화)
어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일주일에 한두번 모이는데 12-1시까지 점심시간에 모이고 그러고나서 밥을 먹으로 가고 1시30분에 돌아 옵니다. 상사가 ‘도대체 예수 믿는 사람은 뭐냐’고 야단을 치니까 거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왜 자기를 핍박하냐‘고 그러니깐 예수 안 믿는 관리자가 말하기를 ‘난 당신들이 누구를 믿건 상관없다. 제발 1시에만 제자리로 돌아와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올바르지 않은 태도 때문에 오는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신앙 때문에 오는 고난과 박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살고 그 다음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했는데도 내가 진리를 견지한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의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을 때. 그것이 바로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입니다. 오늘 사도는 그런 모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그들과 부딪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그리고 자기의 동족들에 대해 이해를 표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해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잘 정제된 생활의 태도,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존재하는 많은 걸림돌들을 제해버리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힘들게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할 때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박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요 착각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삶의 태도, 누구에게도 누를 끼치려 하지 않고, 누구도 진리외의 다른 이유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서로 맞서는 위치에 있지 않으려는 배려, 이해, 이런 것들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이요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