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27 새벽설교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행전 28장 30절~31절)
녹취자: 이지수
사도 바울의 로마에서의 생활은 황제에게 재판을 청구했기 때문에 법상으로는 아직까지는 재판에 계류 중 인 죄수의 신분이기는 했지만은 그러나 아주 관대한 대우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가택연금 상태 정도 그렇게 있었고 그래서 거기에 2년 동안을 있으면서 재판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거기에 그렇게 있는 동안에 유대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듣기위해서 나아온 것이죠. 그런 기회로 활용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한 가르침을 펼쳤던 것이죠.
이것이 배경이 어떻게 되나 하면은 그리스 떄도 마찬가지고 로마시대 때도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은 굉장히 탐구적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만하던 땅에서는 항상 사상이 발전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노예도 있죠, 그다음에 생활도 넉넉하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뭔가 신기하고 새로운 사상을 찾아나서는 거죠.
그래서 이제 로마시대 이전에 그리스 시대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주 고대 그리스로 가면 이 나라가 하나로 큰 나라로 통합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이 작은 마을이요, 그래서 우리로 말하자면 동네 정도 될까? 그런 성 하나가 하나의 나라요. 폴리스라고 그러는데, 거기에 만 명 많으면 십만 명 이렇게 모여서 사는데 이렇게 모여서 한 나라를 형성하는데 그 각 성마다 그렇게 말을 잘하고 새로운 사상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은 끝임 없이 새로운 사상을 말하고 사람들과 논변을 하고 그래서 도시가 건설되면 항상 누구든지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발언대를 만들어 놓는 거예요. 사람들이 시장을 나왔다가 한가하니까 거기 죽 안거나 서서 올라가서 새로운 사상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 거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면 멸시를 당하고 좋은 얘기를 하면 많은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거죠. 이러한 전통이 로마시대까지 죽 내려와요.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에게 많은 사람들이 말을 들으러 오는 거죠. 이때에 사도 바울이 펼쳤을 그 논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단순하게 예수 믿으면 천당가고 안믿으면 지옥간다 라는 식의 그러한 논변은 아니었을 거라 보는 거죠. 그 당시 발달한 로마시대의 살면서 뛰어난 지성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뿌리부터 설복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그 예수 믿는 이 사상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는 그런 유능한 논변들을 펼쳤을 것이고 그러한 논변들이 바로 기독교 교리의 체계였을 거라고 모두 다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러한 논변들을 죽 펼쳐서 이교의, 그 말하자면 불신자들의 철학이나 이교의 사상들 보다 이 예수를 믿고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기독교 사상이 그 모든 철학과 사상에서 진리를 찾아서 방황하던 그것의 최종적인 답이다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다. 로마서라는 것들이 그런 교리에 체계라고 보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볼 때 사도 바울에게 있었서 이런 기독교 사상의 전체의 교리가 단번에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 씨앗이 다메섹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가 누구신가 진정으로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교회가 무엇인가 창조가 무엇인가 종말은 어떻게 오는가 인간은 누구인가 이런 것들을 차츰 깨달으면서 확장되게 되는 거죠. 특별히 옥석에 있으면서 쓴 특별히 로마에 있으면서 그러면서 많은 묵상들을 통해서 말하자면 자기 신앙의 체계를 다듬은 거죠. 그런 것들이 로마서에 반영된 거죠. 정말 탁월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수많은 사상가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봐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능하게 논변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사람들의 강력한 논변들은 그냥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을 해서 더듬는 그런 식의 것이 아니라 한 번에 그 눈앞에 모든 사물에 대한 이치와 수많은 진리들이 여러 개의 지평에 속해 있는 진리들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그 사람의 눈앞에 신천지처럼 떠오르는 것이죠.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그러니까 무슨 책이나 참고서가 필요없이 그저 사람들을 세워놓고 인간에부터 혹은 하늘에서부터 혹은 들이나 풀에서부터 무엇에 부터 이야기 하던지 간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완성하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한꺼번에 확 드러나는 것이죠. 이러한 것이 바로 기독교 사상의 묘미에요.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을 가르치실 때도 그러더군요. 그것을 보면 아무것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얘들아 공중나는 새를 보라 한번 생각해 봐라 제네들이 창고가 있냐? 그런데도 저렇게 날아다니고 저렇게 살지 않느냐? 그게 왜 그러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주님이 먹이시고 기르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는 것은 바보같은 것이다. 공중에 나는 새가 얼마나 하찮으냐,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고 기르시는데 너희들은 어떠냐? 그러면서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한마리, 들에 핀 백합 한 송이에서 인간론 창조론 구원론 이 하나님의 모든 세계를 한꺼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탁월한 사상을 사도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물러간다. 이 사람은 인류역사상 몇 없을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고 지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사용하셔서 주님을 만나긴 만났고 구원이 무엇인지 알기는 알았지만 그것이 정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수많은 당시의 이 사상들에 대한 어떻게 그들의 사상의 답이 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죠. 그러니까 펼쳐내는 거죠. 놀라운 거죠.
(예화)똑같이 여행을 하고 왔는데 누구나 다 기행문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죠. 물론 쓰기야 쓰죠. 우리 딸이 어디에 갔다와서 학교에 어디 갔다 온 것을 내는데 어디를 갔다 무엇을 먹었다. 그다음에 내려서 또 먹었다. 그런 것 밖에 못쓰는 거죠. 먹는 것을 좋아하니까 먹는 것에 관심이 많으니까 휴게소에서 내렸다. 핫바를 하나 사먹었다. 조금 가다가 다음 휴게소에서 내려서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너 어떻게 해서 기행문을 쓰라는데 웬 먹는 얘기 밖에 없냐.' 그러니까 어려운 거에요. 보기는 다 같이 봤는데 모두 다 같이 감탄을 했는데, 써 낼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을 매우 귀하게 사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아직 기독교가 어떻게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대한 답이 되는지, 기독교가 어떻게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최종적인 답이 되고 이교의 사상과 이교의 철학들이 그렇게 찾고 싶어 하는 것들의 진리가 어떻게 이 기독교 안에 있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예견하는 거예요. 틀림없이. 사도바울이 로마에 이태동안 있으면서 엄청난 사상적인 발전을 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런 증거들이 에베소서나 이런데 많이 나타나게요. 아주 깊은 성찰로 들어가요. 이 사람이 그냥 하나님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훈련, 그다음에 유대교에 대한 구약대한 깊은 이해, 그다음에 자기 온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그 진리를 찾고자하는 합치하고자 하는 노력,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주님과의 경험에서 오는 그 신령한 경험들을 이렇게 사상의 언어로 표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사상을 보면서 그러면서 이 끝임 없이 그 사상 속에서 그 사상의 물을 먹게 되는 거죠.
이 사상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기록의 힘이에요. 만약에 사도 바울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어마어마한 선교적인 일들을 이루잖아요. 실제로 사도 바울이 다녔던 곳을 제가 다 다니지 않았지만, 가서 보면 거리상으로 볼 때, 엄청난 거리에요. 그걸 그 당시 교통도 불편하던 그 시대에 그 엄청난 거리를 여행을 다녀요. 그렇게 열성적이고 엄청나게 선교사역을 했는데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렇게 하고 그냥 죽어버리고 아무 기록도 남겨 놓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그 사람은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나님과 만난 놀라운 경험, 구원의 역사, 교회의 세워짐, 세운 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어거하고 그 다스려가는 이런 일,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13권의 책이 남아요. 그것도 아주 짧은 것, 전부다 합쳐봐야 한권도 안 되는 그런 짧은 내용의 13권의 책이 남아서. 그래서 그 이후에 하나님의 진리의 탐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의 역사가 바울의 13권의 책들에 대한 해설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 기록의 힘이라는 것이 그렇게 위대한 거예요. 엄청나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러한 놀라운 기독교 교리의 체계들을 세우는데 있어서 로마에서 이 2년이 엄청나게 기여했을 거라 보는 거죠. 이때에 상당히 사상적으로 원숙해져 있고 신앙의 세계에 대한 깊은 체험, 이런 한 것들을 통해서 진리의 빛을 한없이 받게 되는 거죠. 교회에 하나님께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넓은 주차장, 큰 대지, 큰 건물 그런 것들이 아니에요.
지식의 빛이에요. 진리의 빛. 그 지식의 빛이 있는 곳에 끊임없이 사랑이 생겨나는 거예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은혜를 받았을 때 그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요. 지식의 빛이 있는 그곳에 사랑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실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이에요. 하나님이 한 시대에 교회에 그런 지식의 빛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허락하실 때 그리스도 교회에는 찬란한 빛을 지니게 되고 그 빛을 지닌 사람들이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지식의 빛을 가진 사람들이 해석해서 그래서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요. 그것들을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가고 하나님을 섬겨가는 어두운 인생의 길 등불로 삼아 그 길을 걸어가요. 굉장한 것이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저도 책을 쓰고 있는데, 저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겠어요. 책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겠어요. 아마 훨씬 저보다 오래 책이 남을 거예요. 설교자는 설교할 수 있을 때도 설교할 수 있고 설교할 수 없을 때 설교할 수 없지만 그러나 책은 설교자가 설교할 수 없을 때도 설교하러 가지 못하는 곳에서도 심지어는 이젠 죽고 사라져서 설교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도 여전히 남아서 사람들을 죽 일깨우는 거죠. 결국은 사도행전을 보내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실패하지 않아요. 반드시 성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거예요.
19세기의 프랑스의 볼테르 사상가가 예언을 했어요. 과학이 굉장히 발달하니까 이 비과학적인 성경은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백년 후에 그 사람의 집이 성서공회가 되었어요. 그렇게 복음의 힘은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흔들리게 마련이에요. 결국은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방황하고 타락하면 타락할 수록 이 기독교신앙의 필요성은 점점 증가되는 거죠. 교회가 어떻게 이 복음을 끝까지 붙들고 우리가 28장에서 끝난 사도행전을 29장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들이 이것을 펼쳐나가는지 이에 달려있는 거죠. 여전히 고통하는 세상의 유일한 대안은 복음뿐이에요. 이것을 확신하고 붙들 사람들이 교회요 그리스도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