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주를 찾으며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
녹취자 : 김세나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일 째 새벽에 무덤이 있는 동산을 향해 오르고 있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여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올라간 것이 아니라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넣어드려 장사를 지내기 위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무덤에 도착했을 때 굳게 닫혀있어야 할 무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을 들여다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간데가 없었습니다. 여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제자들에게 달려갔고 베드로와 또 한 제자가 급히 무덤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그 중 한 제자는 무덤 속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만,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고 예수님이 입으셨던 수의만 개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거기에 없다던 자신들에게 안타깝게 호소하던 이 여자들의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거기에 오래토록 머물러 있으면 예수님과 한패라는 죄목으로 어떠한 불이익을 받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 마저도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보고 가 버렸습니다만, 그 빈 무덤을 이 여자들은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갔고 예수님도 거기에 계시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 여자들은 그 무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안 계신 그 무덤에 앉아 이 여자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울고 있느냐 라고 되어 있는 동사가 희랍에서는 소리 내어서 엉엉 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어른들인 이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 계신 것을 알고 통곡하고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대조가 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의 무덤에 대한 태도를 봅니다. 예수가 거기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저 덤덤하게 돌아가버린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은 울며 예수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는 굳센 믿음까지는 이 여자들에게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며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오늘 우리 시대의 조국 교회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은 이 교회를 한 알의 밀알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결코 교회는 교회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치는 그 자신의 영광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썩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을 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여줄 수 있을 그 때에 그 것이 가장 훌륭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하시기 전에 먼저 무엇이 있었는지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새벽을 맞이하기 전에 삼일 동안 무덤에서 장사지낸바 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부끄러움과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사시는 영광을 친히 얻으시고 우리에게도 그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는 십자가가 없는 복음이 복음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이 빠진 번영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의 원리를 져버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한 알의 밀알로 잘 썩어 죽는 것입니다. 자신은 죽고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충만하게 사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충만하게 사신 그리스도가 이 나라위에 이 민족위에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그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고 함께 그 분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하고 그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조국교회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이 죽지 않는 부분들이 부끄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광은 이 세상 나라의 영광과는 다릅니다. 많은 세력과 교인의 수와 물질과 높은 건물과 그리고 높아진 명예를 가지고 이 세상 나라와 다투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가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가치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크기를 가지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하신다면 아마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아마도 이집트나 중국이나 로마와 같은 나라를 역사상으로 선택하셔야 되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등대와 같은 것입니다. 어두운 밤바다에 떠있는 그 작은 떠있는 등대로 말미암아 수많은 배들이 안전하게 항구에 도피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치는 등불입니다. 세상이 어둡다는 핑계를 교회는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어둡기 때문에 교회는 진정으로 가치 있고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더더욱 밤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사랑하는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이 거기에 안 계신 것을 알고 덤덤하게 돌아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 여인들을 보십시오. 막달라 마리아는 한때 일곱 귀신이 들려 버림받은 자의 삶을 살던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 무덤 앞에서 오늘 통곡하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제자들에게 없었던 그 무엇이 이 여자들의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에 쳐다보고만 돌아갔던 제자들과는 달리 이 여자는 통곡하며 울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여러 개도 아니고 단 하나의 차이가 이 여자들로 하여금 통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죽음이 예수님과 이 여자들 사이를 갈라놓았고 누군가가 시체를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그런 도적질이 이 여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음도 도적질도 갈라놓을 수 없는 끈끈한 끈이 이 여자들과 예수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이 여자들은 오늘 통곡하며 울며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바로 이렇게 울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닌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나라와 민족, 사회 구석구석 심지어는 교회 구석구석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을 이 모든 동위에 전하고 이 나라에 전파하던 선조들의 순교신앙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이 나라의 등대가 되겠다고 하던 그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들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민족과 함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둡기 때문에 더 찬란한 불빛이 필요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순결한 모본이 필요합니다. 쓰러졌기 때문에 정의가 필요하고 도덕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모든 현실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역사적인 짐들을 지고 있습니다. 나라고 분단되어서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남북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고 미움과 원망과 질투, 시기들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사회 구석구석 갖은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말할 수 없는 양극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념에 따라서 나라와 민족이 갈리고 사랑하던 동포애들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물질주의로 치닫는 이 광경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고 도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치가 혼탁하고 모든 사회와 문화들이 이 세속주의에 휩싸이고 있는 그 때에 이 바로 이 모든 광경이 예수 그리스도 없는 빈 무덤과 같은 광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깨어난 자들입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모여서 울부짖고 주님의 얼굴을 진정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이 주님의 교회에 가득차고 교회에 가득 찬 영광은 이 모든 땅에 그리스도의 도를 알리는 이방의 등불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라는 더 부강해져야 될 것이고 부강해 질수록 순결해지는 나라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시대의 교회위에 맡겨준 위대한 사명들을 이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넘어서 그리고 이 모든 세계에 번영된 조국의 미래를 향하여 우리들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님이 주신 축복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해서 그리스도 교회는 이 민족의 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동포들을 끌어안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든 이웃과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온전히 십자가에 버리신 그 밀알의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들은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빈 무덤과 같이 보이는 형편이라 할지라도 울며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 친히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위대한 사도들이 아니라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때는 일곱 귀신까지 들렸던 아주 비천한 이 여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권위 있는 사도들도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을 이 여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듣고 자신들도 증인의 역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순결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의 증인이 되도록 조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과 능력이 교회 안에 먼저 충만히 나타나 등대와 같은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바로 그 불빛을 따라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도 어느 위대한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조국이여 염려하지 말아라. 우리가 여기에 있노라 라고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신실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