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24일 새벽예배
우리가 여기는 영원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 : 14 - 15)
녹취자 : 김용재
이틀에 걸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결국 신앙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성 밖에서 죽으신 것처럼 그 능욕을 지고 또 신자도 신자들끼리 모여 있는 이 교회가 아니라 영문밖에 라고 묘사되고 있는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 그것이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신앙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우리가 거하여야 할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를 참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도 항상 고난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늘 눈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왜냐면 그 분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가니까 다시 말해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이 세상을 위해서 살아야 하니까 항상 거기에는 고통과 그리고 아픔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고통과 아픔이 뒤따르지만 그런 고통과 아픔이 뒤따르는 가운데 우리들이 계속해서 이 세상을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 때문에 우울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마치 은혜 받은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뭔가 많이 잘못된 것처럼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가 뭐라고 우리에게 권면 하냐면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찬미의 제사를 우리 주님께 드리자 그게 우리를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찬미의 제사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미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내신 것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주신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의 계획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찬미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찬미가 우리의 속에 가득 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사라고 표현한 이유는 뭐냐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신 것도 제사라고 표현이 되지 않습니까? 자기 몸을 스스로 제물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드리시고 그리고 죽으신 것 아닙니까? 그것을 여기서 찬미의 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선을 행하고 우리가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왜 선을 행하고 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복을 많이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동기는 축복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을 자판기에 집어넣으면 커피가 쏟아지는 것 같은 그런 원리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결과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게 만들어 주는 것은 감사입니다. 무슨 감사냐면 우리와 같은 죄인을 그 억만 죄악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리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 모든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그런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마음속에 넘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향한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 은혜를 받을 때에 동일한 정도로 우리 안에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주님의 뜻대로 매일매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앞에 덧붙이는 것이 뭐냐면 우리가 여기는 영원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 세상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도성이 없다 결국 이 세상이 아무리 번영하고 그리고 훌륭한 것 같아도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손바닥 뒤집듯이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시고 다시 건설하시기도 하시고 하시니 그런 변화무쌍한 곳이 바로 이 세상에고 진짜 우리들이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완전한 나라 보좌가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는 오직 장차 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능욕을 지고 예수의 영문 밖으로 나아갈 때에 그때 우리에게 많은 고난이 있어도 그 때문에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때로는 나그네요 객인 것처럼 취급을 받아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해서 산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예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서 사는 사람들의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주심으로써 예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 절에서 얘기 한 것과 같이 우리가 은혜를 받자 우리가 진동치 못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았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자 그래서 그 은혜의 힘으로 우리들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예수의 능욕을 지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를 위해 채우고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우리의 고난 속에서 새로워지고 또 그것이 우리의 삶속에서 다시 구현되는 그런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 또 오늘 이처럼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삶이 사실 주님의 계획하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우리들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우리들이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자기만족적이고 현세적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서 내가 심정적으로 편안하고 갈등과 번민이 사라지고 그리고 어떻게 은혜를 받아서 내가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리고 어떻게 내가 순종해서 그것을 담보로 축복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하는 것에 우리의 많은 관심들이 집중되어 있고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성경도 우리에게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 전체에는 적절한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이 세상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몸은 이 세상에 있고 섬기는 것도 이 세상을 위해 섬기지만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게 되고 하나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