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8일 교직원예배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아멘..
음...잠언에서는 게으른 자, 게으른 자를 아주 강력하게 탄핵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가난하고 힘든 집안에 태어나서 부지런히 꼼지락 거리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죠. 왕의 가문에서 태어나서 호의호식하며 살았는데, 이 사람의 글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게으름에 대한 철저한 미움, 거기에서 오는 신앙적인 탄핵,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뜻밖이죠. 그러므로 이것은 자연적인 성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판단을 해도 과히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생각합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면 모두 부지런해집니다. 저는 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불타는 인간이라면 그가 어떻게 게으를 수가 있겠습니까..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 해도 물론 부지런할 수 있습니다. 태생이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있죠.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도 지속적으로 게을러 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체질적으로 약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강하게 되지 못 할 수는 있습니다. 질병이 있던 사람이 주님을 깊이 만났는데도 그 질병을 십자가처럼 사도바울의 경우와 같이 지고 살아야 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에서는 부지런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게으른 사람들의 은혜의 체험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게으르기 때문에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열매이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사람의 은혜의 체험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원 받았는가...혹은 우리가 예정되었는가 하는 것들을 우리는 전망적으로 많이 살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인 튜레틴은 말하기를, “우리는 예정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다, 우리가 예정 되었는지 선택되었는지를 미래를 바라보면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런 책을 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양심의 책을 보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자신의 마음 속의 양심에 비추어 나의 마음 안에 나의 삶 속에 주님이 선택한 자로서의 열매, 기쁘게 예정하신 자로서의 열매가 있는가..그것을 가지고 고민하고 씨름을 해야지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의 삶은 짐승과 같은 삶입니다.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 수가 있겠으며, 100번 양보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 속에 살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풍부함에 이르는 사람과 궁핍함에 이르는 사람, 두 사람을 기가 막히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풍부함에 이르는 사람은 두 가지 조건을 가졌는데, 삶의 실천에 있어서 부지런한 사람이고, 정신적으로는 경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함은 육체의 부지런함만이 부지런함이 아니라, 정신의 부지런함이 어우러질 때 그것이 진정한 부지런함이 되는 것입니다. 존 오웬이 우리를 성화로 소명하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은 일체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성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 부지런함은 우리의 육체의 부지런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과 육체의 부지런함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런 종류의 부지런함이죠. 육체가 아무리 부지런할찌라도, 정신이 게으르면 그 사람의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삶입니다. 가치 없는 것들을 위해서 많이 허비하며 사는 사람들일수록 육체는 부지런하나 정신은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풍부함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부지런한 자의 경영’이라고 말합니다. 풍부함에 이르는 사람은 삶의 실천에 있어서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최근에 신문에서 잠깐 보니까, 길병원입니까? 이길여 박사라고..이화여대 의과대학을 나오고 50년대 말인가 60년대 초에 달동네에서 쪼그만 병원을 개업을 하고, 지금은 뭐 어마어마한 그러한 그 학교와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을 이루었습니다. 자기는 4시간 이상 자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예요. 평생 4시간을 잤대요. 지금 아마 70이 훨씬 넘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그렇게 젊음을 유지하면서 자기의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서 목표를 세운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죽도록 고생해도 월급 한 푼 안 받는 못 받는데, 하루에 4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다는 거예요. 조셉 얼라인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유 배달부가 지나가는 종소리가 들리면 잠에서 깨자마자 하나님 앞에 침상 머리 맡에서 회개하기 시작했다죠? “저 사람은 육체의 건강을 위해 우유를 팔러 다니는 사람인데, 복음을 전하는 나는 저 사람만도 부지런하지 못합니다...”라고 말이죠. 29살에 죽었지만, 그는 69세를 산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죽었어요. 이러한 것들을 보면 제일 중요한 것은 육체의 부지런함입니다. 육체의 부지런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남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의 육체를 놀리지 않는 것이에요.
저는 미국을 갈 때마다 영국이나 이 구라파 하고는 참 틀리다라는 걸 느껴요. 그게 뭐냐면 여러분 템포가 느려요. 뭐 그래서 유리한 것도 있겠죠. 근데 미국은 보면, 음식점에 들어가면 영국 음식점은 불친절해요..이번에도 가서 느낀 게 팁을 달라고는 거기 그렇게 써 있는데 전혀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정말 불친절해요. 불친절한 게 그냥 불친절한 게 아니라, 손님을 위해서 움직이기 싫어하는 거예요. 미국은 안 그래요. 영원히 영국은 미국을 이기지 못합니다. 두고 보십시오. 영원히 못 이깁니다. 거기 가면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이 티셔츠 하나 딱 입고 여름에..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합니다. 근데, 하여튼 대부분의 웨이트레스들이 등 뒤에 티 자로 물이 뿌려져 있어요. 그게 뭐냐면 등에서 솟은 땀이 티셔츠에 티 자로 베는 거예요. 땀이 송알송알송알송알해요. 세어 봤어요. 내가 한 번 식사할 때 평균을 레스토랑에서 나한테 웨이트레스들이 몇 번을 찾아오는지...6번이에요. 커피 드릴까요? 맛있으세요? 불편한 건 없으세요? 뭐 좀 더 드릴까요? 음식이 맘에 드세요? 항상 기분이 좋아요. 열군데 들어가면 한 군데 정도 좀 마음이 상해서 나오지 나머지는 정말 박수를 쳐 주고 싶어요. 어떻게 저렇게 할까..근무 시간 중에 어디를 앉는다...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말 들으니까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원래 그 회사에서 좀 페이는 1000불에서 1500불 정도...1000불 정도 되고 팁으로 걷어가는게 1500불 정도 된대요. 그러니까 2500에서 3000불의 수입을 올리는 거예요. 웨이트레스들이...그리고 친절하면 누구한테 서빙을 받게 해 달라고 얘길 하고 들어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이 미국을 이끌어 온 발전의 원동력이에요. 기본적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렇게 살아야 돼요.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가면 제일 싫은 게 지저분한 겁니다. 청소를 안 해요. 오늘도 와서 제가 2층서부터 교회 전체를 한 25에 걸쳐서 돌았는데 청소를 안 해요. 부지런하지 않은 거죠. 자기가 코 박고 맨날 있는 사무실인데 그 섬기는 정신으로 유리창 한 번 삼 일에 한 번만 닦아도 그렇지 않은데 안 해. 이런 것들이 육체의 게으름이에요. 이런 게으름을 가진 사람은 결코 풍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풍부함에 이르는 사람은 경영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 본문을 보면 눈길을 끄는 것이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르게 하고...이렇게 짝을 이루려면 히브리시의 댓구법에서 당연히 게으른 자의 조급함은 뭐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근데 다 빼버리고 조급한 것은 궁핍에 이르느니라...상상일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이 지혜자는 부지런하고 머리도 영리한 사람과 게으르고 머리도 나쁜 사람을 대조시킨 게 아니라 부지런하고 영리한 사람과 부지런하고 머리 안 쓰는 사람을 대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지런하고 경영이 있다는 것은 머리 속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에요. 근데 이것은 보통 에너지가 들어가는게 아닙니다. 여러분, 한 시간동안 일하면 배고프지 않아도 한 시간동안 심혈을 쏟아 부어서 서류를 작성하든지 공부를 하면 허기가 확 밀려옵니다. 그렇게 이 뇌의 활동이 이 육체의 에너지를 태우는 힘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 보면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은 살 찐 사람이 있어도 정신을 많이 쓰는 학자나 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배 나온 사람들 보는 것 쉽지 않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로부터 공부 많이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배 나오고 그리고 볼따구가 처진 사람 본 적 있습니까? 대부분 머릿속에 들은 사람은 바짝 마른 사람이에요. 그렇게 에너지를 태우는 거예요. 한 두 시간 매달려서 막 매달리면 에너지가 타요. 전 대학원 다니면서 그런 것 많이 경험했어요. 87년도에 데모를 해 가지고 막 학교가 거의 휴강 상태였어요. 그러면 아침 먹고 가서 연구실에 나가서 쭈그리고 앉아 가지고 공부하고 점심 때 거기서 도시락 싸 준 것 까 먹고 그리고 버티고 앉아서 들입다 공부합니다. 5시 반, 6시 돼서 일어나려고 하면 현기증이 확 돕니다. 벽을 붙잡고 쓰러질 뻔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그게 뭐냐면 체력은 약한데 엄청난 에너지를 뺏어 가는 거죠. 그것은 기질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은 하기 싫어하는 거죠. 여기에서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자기가 좋아해서 거기에 끌리는 것은 그것은 부지런함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놀음하는 것,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야유회 다니는 것, 이것은 부지런함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그 텔레비전 망가졌을 때 들쳐 매고 전파사로 뛰는 것, 이것은 부지런함이 아니란거죠. 게으름의 한 수단이죠. 여기서 얘기하는 진정한 정신의 부지런함은 육체의 부지런함은 자기가 하여야 할 의무에 대해서 부지런한 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게 덕목이 있는 거죠. 그런데, 육체가 부지런할 뿐 아니라 정신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면밀하게 계획을 짜는 거예요. 반성하고 어떻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 돈의 낭비는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풍부함에 이릅니다. 우선은 그런 사람들은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물질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해 전에 미국에 갔을 때 일이었어요. 한국에서 화학 선생을 하던 어느 집사가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가 봤자 자기 전공은 살릴 수가 없죠. 영어를 못 하니까..그래서 들어간 곳이 자동차 정비 공장에 가서 기름칠을 하기 시작했어요. 시카고라고 하는 곳이 날씨가 변덕이 심한 지역입니다. 제가 갔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거의 포도송이 만한 진짜 계속 맞으면 쓰러질지도 모를 그런 우박이 막 산더미처럼 쏟아집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뭐냐면 주차장이 끝이 안 보이게 주차했던 승용차 위에 이게 떨어지면 꼭 요만한 망치로 실컷 차를 두드려 놓은 것처럼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직장 생활하고 회사 생활 하는 사람들인데 차를 그 꼴을 해서 어떻게 차를 다닙니까.. 그러니까 한꺼번에 카 센타로 몰리는 거예요. 근데 그걸 수리를 하려면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뭐 빨라야 1주일 길면 열흘 그렇지 않으면 20일까지도 걸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 동안에 난리가 나는 거예요. 이 머리 좋은 사람이 생각을 한 거예요. ‘야..이게 진짜 아무리 고친다고 하더라도 차를 워낙 잘 만들어서 큰 고장이 안 나요. 특히 미국차는...그러니 이걸 해 봐야 돈도 남는 게 없고 그래서 생각하니까 우박이 떠오른 거예요. 이 때에 다른 공장에서 일주일에 하는 것을 우리가 더 빨리 한다면 돈을 벌 수 있겠다...’그리고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해 가지고 어느 날 큰 프랭카드를 붙입니다. “우리 공장은 3일안에 고쳐준다3일안에 못 고치면 돈을 안 받는다” 그러니까 막 그 차를 보험회사에서 그 공장으로 다 보내 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보험에서 1주일 고친다 그러면 4일 동안 렌트카를 빌려 줘야 되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3일만에 된다니까..천막 쳐 놓고 공법을 감추기 위해서 천막 쳐 놓고 직원들하고 그걸 고치는데 나 보고 좀 가르쳐 달랬더니 나한테도 안 가르쳐줘요. 어쨌든지간에 남의 공장에서 1주일 만에 하는 것을 여기서 3일만에 완성했어요. 돈을 많이 벌었어요. 정신이 부지런한 거예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제일 좋은 사람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부지런히 생각하고 육체의 부지런함도 있어서 그것들을 실행하는 사람이에요. 두 번째는 시키는 거라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에용. 세 번째는 시키는 데 능력이 모자라서 잘 못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가장 나쁜 사람은 시켜도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궁핍함에 이른다고 오늘 성경은 선언하는 거죠. 참 놀랍습니다. 정말 놀라워요. 그래서 이렇게 육체도 부지런하고 정신도 부지런해서 자기 일을 잘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은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물질도 많이 벌게 됩니다. 그리고 명예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어디서든지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제가 전도사 때 데리고 있었던 자매 하나가 있었는데 상고를 나왔어요. 근데 하여튼 똑똑해. 그리고 부지런하고..상고에서 은행을 들어가는 것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연고대 들어가는 것과 같았거든요. 그렇게 많이 못 들어갔어요. 근데 하여튼 좋은 은행에 들어갔어요. 월급도 많이 주는데, 자기는 그 생활보다는 아이들 가르치는 생활이 너무 좋으니까 그 회사 월급의 반도 안 되는 유치원 선생 월급을 받고 그리고 유치원에 취직을 했어요. 마지막 사표를 내고 떠나는 날, 인사부장이 그러더래요. 사표를 받아주면서 ‘야 내가 네 사표는 받아주지만 지금도 난 네가 안 갔으면 좋겠다 사표는 네가 냈지만 네가 생각이 바뀌어서 우리 은행에 다시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 오너라 내가 특채해주마’ 이렇게 직장생활을 해야 되는 거죠. 평탄할 때는 생각이 안 나도 어려움이 닥치면 생각이 나는 사람 ,‘ 아 그 사람이 여기 있었으면 지금 잘 해 낼텐데...다시 부르면 안 될까..’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교회가 어려워지고 힘들어질때 생각나는 사람이겠습니까? 이게 바로 풍부에 이르는 거죠. 자기는 일하던 그 자리에서 떠났는데도 자기는 떠나도 자기 이름은 그 회사에 남아. 그래서 높임을 받아. ‘옛날에 자네가 오기 전에 아무개라는 사람이 여기에 근무하다 갔는데, 참 그 때가 좋았어.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경영도 있고, 훌륭하게 자기의 일을 감당해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지. 더도 안 바라네. 자네가 그 사람처럼만 해 주게. 그러면 충분하네’ 이러면 여러분들은 떠났어도 여러분들의 이름은 여기에서 높임을 받는 거죠. ‘자네가 오기 전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참 힘들고 지옥 같은 세월을 보냈네. 제발 그렇게는 하지 말게’라면 여러분들은 떠났어도 여러분 이름은 여기에 남아서 땅에 떨어지는 거죠. 이게 섬기는 것이 단지 섬기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랫동안 직장생활 하고 직장 선교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낙인 찍힌 사람들이 풍성한 은혜 생활 속에 사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은혜 충만하고 신앙 신실한데 승진 못 하는 사람은 봤어요. 그러나 자기의 일에 있어서 열심이 없고 그리고 직장 다니는 것 자체를 지옥에 오는 것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더 심각한 궁핍이에요. 조금 가난해도 부유해도 그것은 큰 차이가 아니에요. 사람에게 박수 갈채를 많이 받아도 덜 알아주어도 그건 작은 차이야. 그러나 중요한 건, 주님께 인정을 받는 삶이죠. 그래서 정말 몸이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이 정신도 아주 현저하게 부지런해서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내가 여기 왜 있고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 살고, 그리고 내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하고, 내가 오늘 행하는 이 일이 내일의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고 나를 여기 보내신 하나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되새기면서 사는 사람들,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그 이번에 영국에서 그 여자 수잔? 수잔 보엘이라는 여자가 아 진짜, 못 생겼대...41살이 되도록 키스 한 번 못 해본 처녀라고 하던데 참, 놀랍죠. 나 그 사람 사연은 자세히 모르겠는데 그 전에도 된 폴 포츠라는 사람이 있잖아요. 아주 깊이 감동을 받았어요. 나와서 뭐라고 했냐면 뭘 한 번 해보겠냐고 하니까 아리아를 한 번 해 보겠다고 하니까 심사 위원들이 아주 비웃음에 가득찬 표정으로 뭘 하겠냐 하니까 부르겠다고 하니까 레슨도르마를 부르겠다고 하니까 “흥” 그랬답니다. 울려퍼지는 그 순간에 온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모았대요. 그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평생 한 번 불러보는게 꿈인데 가망이 없을 것 같애요. 정말 그렇게 핸드폰이나 팔던 그 얼굴 그렇게 못 생긴 사람이 그걸 부르는데, 이번에도 수잔 보엘도 그 노래를 부르면 부를 때 많은 사람이 그 유튜브를 보면서 뭐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무슨 힐러리 클린턴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렇게 그 폴 포츠도 그렇게 큰 감동을 준 거예요. 소감을 물었어요. 그래요. 이렇게 나와서 상금도 타시고 그럴텐데 어떠냐고 그러니까, 상금 타며 뭐 하시겠냐고 그러니까, 그것이 저에게 충격이었어요. “노래 선생한테 과외비가 6개월치가 밀렸습니다. 빨리 갖다 줘야 됩니다. ” 그러니까 핸드폰을 팔면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핸드폰 팔면 가서 핸드폰이나 배우지, 그렇잖아요. 근데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노래를 배우기 위해서 용돈을 모으고 생활비를 줄여서 그 과외 교습을 받으면서 자기 꿈을 키운 거예요. 결국은 부지런함 아니에요? 한 번에 그 사람이 일 주일안에 레코드 사에서 제안을 받은 것만 12억 개런티였어요.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경우죠. 그게 바로 풍부함에 이르는 것이죠. 육체가 부지런하고 정신이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기회가 주어져요. 실패할지라도 끊임없는 기회가 주어져요. 왜냐하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그늘 아래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을까 혹시나 사람들이 나를 지겨워 하지 않을까 ”제가 주일날 이 가방을 메고 들어가니까 몇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러고 심지어 우리 집사람이 제발 그 가방 좀 치우라고..그래서 내가 얘기해 줬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이 가방을 왜 주일날 어울리지도 않게 이 말쑥한 양복에다가 그 그것 가방을 그렇게 나도 안다..단정한 가방을 손에 들고 목사처럼 들어가는게 좋은 줄 안다.. 근데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자기암시가 있다. 그게 뭔 줄 아냐? 그리고 내가 우리 집사람한테 얘길 해 줬어요. ‘이것을 메고 들어간다. 난 설교 준비가 끝났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설교를 기대해. 그리고 들어가요. 잠시 후 나는 강단에 올라서 내가 설교하려는 본문을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주저함이 없이 유창하게 설교하기를 원해. 그러나 가방을 메고 들어가면서 생각하는게 뭐냐면 나는 학생일 뿐이다. 나는 배우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지금 대가로서 이 교회에 설교단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다가 방금 잠깐 나온 학생으로서 이 단에 오르는 것이다. 설교가 죽을 쑨 날은 별 볼일 없지만 설교가 힘이 차고 성도들이 감동을 받은 날은 걸어올 때 어깨가 펴치죠. 그 때 가방을 메는 거예요. 나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가 아니라,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들의 위대한 선생이 아니라 학생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가방을 메고 들어온 것처럼 이 설교가 끝나면 이 가방을 메고 다시 공부하러 간다.’ 자기 암시에요. 이 가방에는 항상 내가 가장 최근에 공부하는 책들이 들어 있어요. 항상..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는 게 없다. 나는 지금 발전하고 있는 중이고 더 많이 발전하고 난 후에는 지금의 나를 부끄러워할 지도 모른다..그러니 내가 지금 어떻게 나를 자랑할 수 있으랴..생각을 가지고 들어가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주님 앞에 나는 학생일 뿐입니다..생각을 가지고 한 가지 방면이 아니라 삶의 모든 방면에서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풍부함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