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은 우리 안에 생명은 너희 안에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1-12)
녹취자 : 오희열
이렇게 교회창립 40주년을 맞이하고 또 임직식, 은퇴식을 맞게 된 여러분께 심심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사도바울이 가장 고난에 가득 찬 사역의 기록들을 남긴 성경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바울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당했던 많은 수고와 고생들을 언급하는 가운데,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시련과 고통, 특히 교회를 섬기면서 당하는 환란과 어려움들을 어떻게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가 제일 먼저 상기시는 것은, 우리가 그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잠시 살면 썩어 없어질 우리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보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잠시 육체로는 고난을 당하고 스러져가도 예수가 우리 안에 있는 한 언젠가 우리는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살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욱여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해도 박해를 받은바 되어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우리는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어려운 일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 복음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늘 있지만, 하나님은 놀랍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이 시련과 모든 고난을 사용하셔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도 아름답게 하시고 그가 섬기는 교회도 동일하게 아름답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두 가지로 제시하는데 첫째, 섬기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죽음, 그리고 섬김을 받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생명, 그래서 오늘 성경은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바로 그 앞에서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죽으셨고 그래서 우리가 다시 그분의 죽음을 짊어진다는 것이 불가능 할 것 같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안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에 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믿음을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 신앙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들에게만 이 고난이 커다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교회를 섬길 때,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만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근본적으로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 아닙니다. 또 우리 육신도 자기를 위해서 살기를 원하지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믿음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다가 고난과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격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언제나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 그리고 일평생 자신이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큰 은택을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감격,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중요한 도리입니다. 그런 구원의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시련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그 큰 은혜를 입어 형벌 받을 나를 구원하셨으니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죽을 차례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깊은 헌신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것이 정말 놀라운 은혜라고 하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하나님은 모든 교인들을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끔 하시지 않습니다.
어느 곤충학자가 개미를 기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80%는 열심히 일을 합니다. 오죽했으면 지혜자가 말하기를 “개미에게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 한 20마리는 놀더랍니다. 그래서 핀셋으로 그 20마리를 다 끄집어냈더니 남은 80마리의 20%인 열댓 마리는 또 놀더랍니다.
절대로 모든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여러분도 옛날에 언젠가는 교회의 구경꾼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지면서 우리가 웃을 때 울었고, 우리가 먹고 마실 때 금식하고 우리가 즐거울 때 고난을 받고 근심하며 주님의 교회와 함께 하고 아파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은 우리가 오래 교회를 다녔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도 아니고, 고난의 크기는 은혜의 크기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 가운데 고난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또 고난을 받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고 예수 믿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을 위해서 애 끓이며 고난을 당했을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보니까 그 헛된 것들이 아니라 정말 소중한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위하여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교회,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간구하고 당신의 신부처럼 사랑하시는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주님의 교회의 직분자가 된 사람들은 밤이나 낮이나 생각해야 합니다. 이 벌레 같은 인간을 위해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내가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그리고 주님이 내게 주신 그 큰 은혜를 기억하면서 예수님이 친히 신부처럼 사랑하셔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교회를 눈물겹도록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위해서 기꺼이 죽는 것입니다.
(찬양)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의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그 고난의 피로 우리가 영원한 죄에서 용서를 받았고 그 큰 고난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예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으니 주님의 교회를 잘 보호하고 양육하도록 기꺼이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그렇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생명이 너희 가운데 역사하느니라”입니다. 가정이 상처받고 깨어지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집안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은혜를 많이 받으면 가족들이 모래알같이 흩어져도 그 어머니가 주님의 교회에 나와서 새벽마다 남편을 위해서 빌고 자녀를 위해서 웁니다. 그러면 놀랍게 그 가정이 하나씩 둘씩 예수를 믿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가장이 가정을 위해서 은혜를 받고 가정을 위해서 잘 죽으면 자녀들이 변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사람이 이 교회를 위해서 죽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한 분량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누가 교회를 위해서 죽을 것인가? 그것은 각자 자신의 마음에 손을 얹어보면 압니다. 주신 바 은혜의 크기대로 각기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을 때, 양떼들에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회사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돈 있고, 건물 있고, 땅 넓고, 주차장이 크면 그것이 곧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령한 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오디오의 음향은 좋은 음향기기가 만들지만 설교시간에 하늘을 가르고 임하는 천둥소리와 번개불 같은 성령의 놀라운 각성케 하심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지도자의 죽음은 이렇게 영혼들에게 신령한 은혜를 입게 만들어줍니다.
여러분이 오늘 임직을 받는 분들을 포함해서 교회에서 은혜 받은 지도자들이 교회를 위해 잘 죽어서 영원히 사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