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새벽예배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시 119 : 25)
녹취자 : 김용재
히브리서를 저희가 아마 거의 2년 약간 안 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빠짐없이 쭉 했는데 방송실에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마는 중간에 녹음을 조금 빠뜨렸습니다. 굉장히 애석하게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내일 부터는 빠진 부분을 채워 넣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 2장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채워 넣겠습니다. 다 잊어버리셨습니까? 2년 전에 들은 것. 다 채워 넣기로 하고 오늘은 119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히브리서 9장 27절 같은 거 기억나시겠지만 한 30분 정도 설교 시간에 했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는데 그래서 그거 녹음해서 전도용으로 쓸려고 했는데 녹음이 안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좀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miss된 부분을 다시 복구할 때 잘 복구가 되도록 그러면은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시편을 우리들이 한 절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진토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아파라고 하는 것인데 티끌입니다. 그래서 이 흙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생각 여러분 한번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왜 하나님이 하필이면 삼라만상 많은 것들 가운데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을까? 그리고 생기를 불어 넣어서 사람을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있으라고 하니까 다 생겨났지 않습니까? 인간도 그렇게 하시면 될 텐데 굳이 인간을 만드는 장면에 있어서는 흙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빚으셔서 그래서 생기를 불어 넣어서 만드셨단 말입니다. 그 아담이라는 말이 사람 아닙니까? 고유명사도 되고 보통명사도 됩니다. 인류, 사람인데 그게 이제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아담아 라고 하는 히브리 단어가 있는데 이게 흙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애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붉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에덴동산이 있었던 그 쪽을 놓고 본다면 진흙이 많은 지역입니다. 진흙이 많으면 먼지가 많습니다. 티끌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셨는데 굳이 그렇게 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한 다음에 아담을 비롯해서 하와로 하여금 자기 정체를 확인시켜 주십니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그게 굉장히 슬픈 얘기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흙입니다. 결국 그 흙 거기에서 나오는 아파르 티끌 이 모든 것들이 다 무가치함의 상징입니다. 시편에 보면 티끌과 같사오며 티끌이라는 말이 시편뿐만 아니라 많이 나옵니다. 모두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진토입니다. 그것들이 모인 것이 진토란 말입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무슨 말이냐면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에 있어서 자기와 흙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은혜의 빛을 받으면서 내가 정말 삼라만상 중에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존재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혼의 침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이 진토에 붙어 있다는 말은 죄나 어떤 고통 이런 것들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에서 자신의 영혼이 버려져 있는 그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혼의 고귀함이나 생기발랄함과 힘 생명력 이런 것들로부터 멀어진 상태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자신의 영혼이 이렇게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존귀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가 이 질그릇의 보배를 가졌으니. 겉 사람은 후폐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내 안에 사는 이 예수그리스도시니 내가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렇게 대조가 되지 않습니까?
내 육신 죽어도 괜찮다. 내 육신 날마다 후폐한다. 나 내 육체는 질그릇과 같이 가치 없다. 그렇지만 내 안에 주님이 소중하시다.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 우리의 영혼이지 않습니까? 존귀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집 자체는 그렇게 크고 훌륭한 집이 아니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 집에 잠깐 묵었다면 한없이 그 집이 존귀해 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이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셔서 은혜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그런 자부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그런 상태로부터 멀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습니다. 깊이 낙심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자가 그렇게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을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에는 인간이 절대로 무기력해 지지 않습니다. 무기력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빛이 들어오면서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 거룩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가.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것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 그 다음에는 무기력해 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내가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구나. 열렬해 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침체의 경우에는 한없이 무기력해 지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침체되고 하나님 앞에 내가 정말 무기력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습니다. 그런 침체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방법을 뭐라고 했냐면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그러니까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인간의 영혼을 소생시키겠다는 약속이 이미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약속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죄에 무감각해진 영혼을 말씀 속에 각성시키고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없게 어두워진 자의 마음을 밝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고백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뭐냐면 말씀이 약속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혼을 살리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와 불순종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깊이 침체에 빠진 영혼을 위한 치료제는 다른 곳에는 없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도 침체에 빠진 그 영혼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매 순간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 하여금 신자로써 그리고 인간으로써 하늘자원에 힘입어 살게 하는 유일한 원천이 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가까이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놀라운 치유의 작용을 일으킵니다. 은혜가운데 있는 자는 미끄러지지 않게 보호하고 미끄러지려고 하는 자는 말씀을 통해서 붙들어 주고 그리고 이미 미끄러진 자들은 그 말씀이 일으켜 세워주셔서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축복들, 눈에 보이는 많은 축복들은 일반 섭리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감동이 절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에 직접 행하시는 이 축복은 영적인 축복은 잊히지 않고 오래가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나 긴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는데 나중에는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뭐냐면 그렇게 기도 응답을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 이상하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 같은 기쁨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에 나옵니다. 주께서 저희 구하는 것을 주셨으나 저희의 영혼은 탈의하게 하셨도다. 그게 바로 일반적인 섭리를 통해서 받는 그 축복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베푸시는 그 축복은 우리를 소송하게 하고 강한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생각해 보십시오. 예전에 하나님이 큰 집을 주시고 좋은 직장을 주시고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고 물질을 주시고 권세를 주시고 이런 사람들은 쉽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어도 지금 그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계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영혼의 축복이 갖는 축복성입니다. 이것을 많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늘 가까이 그래서 단지 그 말씀을 읽고 그럴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자신 속에 들어와서 자기를 계속 깨닫게 하고 감격하게 하는 그런 은혜 속에서 살아갈 때 진토에 붙은 것과 같은 영혼이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