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0-11)
녹취자: 박은희B
그러니까 우리가 이틀 동안에 살펴보았던 29편에 그 앞부분에 나오는 자연계의 큰 변화는 어쩌면 홍수 때를 생각하면서 이 시인이 지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합니다. 그런 그 자연적인 홍수의 때에도 결국은 그 모든 위엄 있는 폭풍과 물과 자연의 변동과 이런 것들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자연적인 이런 질서가 아니라 인간세상이 사는 세상 속에서의 도덕적인 질서, 이것은 더더욱 하나님이 강력히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의 삶에 간섭하셔서 그래서 그들의 풍파가 많은 삶 속에서도 결국은 하나님이 그 모든 세상과 인간의 일들을 통치하시는 통치 주 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인간들은 환난과 풍파, 시련과 고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예전에는 하나님이 모든 사상에 없다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들은 언제든지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몰라보았지만 그러나 오늘 성경에 29편에 3절 이하서부터 나와 있는 이 많은 백향목이 꺾이고 사슴이 낙태를 하고 하는 것 같은 이 커다란 자연 속에 변동이 일어나는 것 처람 인생전체의 뿌리가 흔들이는 것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 거기에서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 이런 것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듯이 똑같이 또한 그런 인생의 풍파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모든 인간의 세상사에 인간들의 일에 간섭하셔서 풍파 많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 당신자신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위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자신에 대한 많은 답을 사실은 인간자신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많이 찾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자신이 바로 인간이 유래하게 된 본고향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들이 많이 깨닫고 알게 될 때에 인간이 누군가 하는 것을 바로 알게 되고 바로 거기에 인간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하고 인간이 머물러야할 우주에서의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답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모든 관심들이 인간 자신에게로 시작을 해서 인간 자신에게 끝납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거듭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육적인 사람은 육신에 매인 사람은 자신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이지만 하나님에게 매인 사람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의 기쁨이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한사람은 행복한 것이 최고의 가치지만 한사람의 가치는 거룩해지는 것이 가치입니다. 또 전자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지만 후자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생의 가치입니다. 이렇게 틀린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은 바로 그렇게 홍수가 일어나서 커다란 자연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러는 비범한 변동 속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왕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셔서 그래서 당신자신의 위엄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일가는 본분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가를 깨닫고 그 하나님 앞에 부복하며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복은 자기를 중심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아무리 많이 애를 써도 인간은 행복해 질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은 우주의 모든 사물들의 질서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위치에 정확하게 자기를 둘 때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사람이 그 올바른 질서 속에서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 그때에만 인간은 행복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사랑하는 것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서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이것이 주권사상입니다.
결국 이시인은 이 커다란 자연의 현상, 홍수, 폭풍과 같은 백향목의 뿌리째 꺾이는 그 커다란 자연의 현상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이 모든 인간세계의 통치 주 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 질서를 이 커다란 자연현상의 변동을 통해서 이 모든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엄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바로 인간의 도덕적 질서를 통치하시는 주재자로서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자연 속에도 나타내시고 인간의 영혼 안에도 나타내십니다. 당신의 위엄도 이 자연세계 속에 드러나고 그리고 도덕적인 질서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자신이 만물과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심을 입증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 보여주시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시인은 오늘 이 성경에서 결국은 이러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며 그리고 어그러진 자에 의해서 고통을 받을 때에 힘을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 큰 위엄을 가지신 분이 그 위엄의 정체가 바로 힘입니다. 위엄의 정체가 바로 힘입니다. 힘이 뭡니까? 힘이 뭐예요? 도저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혹은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을 변동시켜놓는 에너지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변동시켜놓는 그 원인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셔서 그래서 백향목은 그대로 심겨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이 그것을 뿌리째 뽑아서 그래서 길길이 뛰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변함없이 있는 것 같은 것들도 바꾸시고, 또 변하는 것 같은 것들도 요동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실 수 있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세상의 사물도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게 바로 힘입니다. 그 무한한 힘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숙명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상태에 머물고 싶은데 시간이 끊임없이 그를 뒤흔들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일 때에 그는 그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순응하면서 사는 자기의 체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당신자신의 백성을 위해 힘을 주셔서 운명과 같은 상황을 바꿔 놓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결국 시인은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백성들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백성들에게 결국은 평강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불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평강을 자기의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 지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면 그분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힘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질서들을 바꾸어 놓아서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향이어야 됩니다. 그런 건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으로 가면서 힘만 빌려 쓰려고 하는 사람들 있지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힘을 빌려주시지 않으십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