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새벽예배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 3:5-6)
녹취자: 박미은
다시 한 번 여기서 이제 섬기는 자로서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세가 했던 역할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은 장래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들을 그 것을 모세가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래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뭐냐하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들이 씨앗을 봄에 심습니다. 심으면은 필수적으로 씨앗에 필요한 것은 이제 온도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습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습기를 머금으면 시간이 흘러 가면은 그 속에서 이제 적절한 습기와 온도가 맞으면서 양분 이런 것들이 맞으면서 속에서 이제 씨앗이 이제 트이게 됩니다. 씨앗이 트이게 된다는 것은 씨가 껍질이 깨트려지는 겁니다. 터지고 그리고 거기에서 쭉 뿌리가 나오고 잎이 나오면서 완전히 씨앗을 싸고 있던 껍질을 벗어버립니다. 그리고 이제 씨앗하고는 전혀 비슷하게 생기지도 않은 그런 식물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그러한 식물이 씨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식물이었다라고 하는 점에서는 씨앗으로 존재할 때와 싹이 나고 뿌리가 솟아서 완전히 싹이 트여서 새로운 식물이 될 두 사이에 연속성이 있지만 그러나 껍질에 의해서 갇혀있는 동안에 모양이나 크기나 이런 걸로 볼 때에는 그 씨를 보면서 그렇게 파랗게 줄기 가진 잎이 나온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상상이 잘 안갑니다. 그런 면에서 두 개가 불연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두 개가 불연속성이 있으니까 그러면은 그 두 가지가 같은 것인 동시에 또한 다른 것으로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지만 이미 벌써 그 율법을 받고 율법을 가르치고 심지어는 모세 자신이 사역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날 위대한 구원의 역사에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온전히 뿌리가 자라고 잎, 줄기, 가지가 자라서 구원이라는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 그 껍질이 깨트려지고 싹이 트여져서 성장하는 일이 있어야 된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가 같은 나무라고 하는 점에서는 연속성이 있지만은 그러나 갇혀있는 씨와 자라난 나무사이에 외향적인 모습이나 기능 이런 것들을 보면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불연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앞에 있는 것을 예표라고 뒤에 있는 것을 실체라 이렇게 부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직접 보지 못해도 해를 등지고 앉았는데 누가 탁 나타나게 되면은 그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그걸 보면서 이게 동물이 온게 아니라 사람 이구나 나무가 선 게 아니라 사람이 지금 걸어 왔구나 키가 큰 사람이 걸어 왔구나 머리가 단정하고 너풀너풀 하지 않는걸 보니까 남자가 왔구나 이런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말하자면 예표입니다. 뒤를 돌아보니까 아는 사람 누굽니다. 그게 실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가 그런 예표 혹은 그림자의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야기한 것들은 당시대에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타날 일들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아주 분명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시면서 그러면서 점점점점 더 그 예표가 실체로 분명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기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런 그림자였고 예수님이 실체였습니다.
그럼 그림자가 중요합니까? 실체가 중요합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실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통해서 그 실체가 올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그림자 역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체가 나타날 때는 더 이상 그림자에 메이지 않아도 그 실체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예수그리스도와 모세는 뛰어난 율법 수여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율법을 수여해주신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없애려고 오신 것이 아니요 완성하기 위해서 왔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유도 그런 것이 였습니다.
나는 이제 두 번째로 보면은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종입니다. 종으로 봉사하였지만 예수님은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면은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그 앞에서는 모세를 집에다가 비유하고 예수님을 그 집을 지은 창조주에다가 비교했는데 왜 여기서는 또 사환과 아들로 비교를 했겠습니까? 앞에서는 존재를 이야기 한거고 여기에서는 존재라기보다는 섬기면서 살아간 삶 자체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 자체로 보면은 모세가 집이라고 칠 때에 예수님은 그 집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섬기는 면에서 본다고 할 것 같으면은 여기에서 모세는 사환이었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집의 아들이셨습니다. 사환과 아들의 차이는 뭐냐하면 사환은 아무리 열심히 충성을 하고 주인의 마음에 든다고 할지라고 기업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삯을 받는 겁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는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분이 예수님이셨고 모세는 단지 그 집에서 충성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나열이 편지를 받는 히브리 사람 중에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은 모세는 매우 뛰어난 자신들의 신앙의 권위의 최종적인 것이고 여기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뛰어난 인물 일수 없다 선지자 일수도 없다 나사렛에서는 그런 사람이 날 수 없다 라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를 사환으로 비교하면서 예수님은 그 사환이 일하던 집의 주인의 아들이다 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를 끝까지 붙들고 진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쓴다면 우리가 그의 집이 될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업으로 물려받을 때에 우리들이 그분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어떻게 입니까? 그분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가 주님이 지켜주실 것이라고 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취소될 수 없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들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이 당시에는 이제 배교의 위험도 있고 하니까 배교하지 않고 주님을 굳게 붙들고 신앙으로 살면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세는 우리를 위해서 충성한 하나님의 사환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라고 하는 집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을 상속자이니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이다 하는 신앙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면은 이 교회와는 비교도 안되는 아주 강력한 왕국이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다 무너졌습니다. 모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왕국에 비하면은 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이 교회는 정말 약했습니다. 그랬는데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큰 왕국을 무너뜨렸던 그런 힘의 열배 혹은 백배를 가지고 교회를 무너뜨릴려고 이세상의 정치가들이나 혹은 사상이나 아니면 교회 안에 섞여 있던 그런 가라지들의 음모나 박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공격이 왔지만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예수님이 그 교회의 상속자로써 교회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이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서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개인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이 세상의 힘으로 우리를 이렇게 파멸시킬 수 있고 그렇지만은 그러나 절대로 주님께서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환난이나 시련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