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12
목 차
아첨하는 자와 교만한 자(시 12:1-4) 9
고통 받는 의인의 소망(시 12:5-8) 14
아첨하는 자와 교만한 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시 12:1-4)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더불어
다윗이 하나님 앞에 탄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시인이 하나님 앞에 탄식하고 있는 바는 경건한 자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경건한 자가 끊어지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고 사랑하면 신자의 마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면 그런 신자들로 이 세상이 꽉 차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갈망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쉽지 않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 전에는 이 세상을 부패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한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사랑하며 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친구이지만,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경건한 자가 이 세상에서 끊어진 것에 대해서 탄식하고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성도가 성도답게 살지 않을 때에는 성도와의 교제를 원하지 않지만, 성도가 참으로 성도답게 살 때에는 성도와의 교제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면 수시로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외톨이가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을 함께 경외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됩니다.
경외하지 않는 자의 특징 1: 아첨함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악한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둘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 그들은 아첨하는 자들입니다. 아첨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입니다. 아첨하는 이유는 진실과는 상관이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첨은 대부분 자기보다는 훨씬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물들의 질서가 재편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첨하기 마련입니다. 큰 권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다스린다든지, 물질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의 사물의 질서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든지, 이런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첨해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일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첨과 자랑은 상반된 것입니다. 아첨은 비굴한 것이고 자랑은 교만한 것입니다. 사람 앞에 비굴한 사람이 사람 앞에 교만합니다. 그래서 아첨이 사람에 대해서 행해지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의 근원이고, 하나님만이 자기 자신의 도움이시다는 신앙 고백 속에서 살아갈 때, 인간은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첨이 타인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서도 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아첨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태도와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어떤 두려움, 내가 복을 받기 위한 것,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일은 없이 어떤 행동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거나 복을 받아보려는 태도들이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치면서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려고 나왔는데 그 중에는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은 자마다 하나님이 찍어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는 죄를 버리는 진지한 참회가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죄를 깊이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 없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잘 보여서 자신에게 임하는 진노를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아첨입니다. 또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떤 일들을 행해서 하나님 앞에 복을 받으려는 태도 같은 것들도 하나님께 대한 아첨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아첨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악한 것입니다. 신자의 신앙생활이 점점 더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삶이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진실해 져야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자기편이 되어서 부패한 자신의 욕구, 자기 부인이 없는 자신의 이익, 방종한 삶, 이런 것에 대해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자기 아첨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첨이 얼마나 악인에 속한 특성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아첨에 빠지게 되면 자기 의가 쌓이지 자신을 엄격하게 정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자기를 깨뜨리고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항상 부패한 욕망, 죄된 생각, 이런 것들로 달려가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감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내세를 묵상하는 일들이 필요한데 그렇게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니까 아첨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될 때에는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 아주 비굴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고 안 살고 하는 것은 상관이 없이 자기 자신의 이익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게 아첨을 하는 것입니다.
경외하지 않는 자의 특징 2: 자랑함
둘째, 그들은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원래 이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기리다’라는 뜻입니다. ‘기리다’라는 뜻은 찬송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자기 스스로 찬송하고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나 자기 소유 같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높이고 칭찬을 해서 궁극적으로 자기를 높이려는 것을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랑이 계속해서 넘쳐나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의 영적인 삶은 황폐해집니다. 그래서 자기를 자랑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라는 고백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의존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세리와 바리새인 둘이 성전에 올라갑니다. 세리는 성전에 올라갔는데 자신의 죄가 떠올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숙이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두 팔을 벌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고개를 들고 기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세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 앞에 울면서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고, 하나님께 대한 의존이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를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하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게 해 주시니 감사하고, 십일조를 드리게 해 주시니 감사하고…”했는데 그것은 모두 다 자기 자랑입니다.
자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 뽐내고 자랑하다 못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뽐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할 리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정말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면 자신에 대해 아첨하기는커녕 자신에 대해 엄격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진실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첨하는 대신 진실해지고 자랑하는 대신 겸비해집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마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고통 받는 의인의 소망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시 12:5-8)
여호와께서 일어나신다
악인의 정체는 아첨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압박을 받고 고통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지난날을 회상한 것입니다. 그 회상은 하나님은 가련한 자의 탄식과 곤핍한 자의 고통에 대해 귀를 기울이시다가 그분께서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고 하십니다.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멈추었던 상태에서 다시 일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실 이런 표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태만하시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특별히 당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악인들에게 고통과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일어나리라 그들이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는 말씀은 고통을 받을 때 의로운 사람이 생각해야할 바입니다. 이 안전지대는 원수들의 공격이 없는 보호받은 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악인이 어쩌지 못하도록 당신의 보호하시는 곳입니다.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길에 안전지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들이 막 바쁘게 다니는 도로인데도 한 복판에 절대로 차가 들어갈 수 없도록 가로차선이 그어져 안전지대의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막혀져 있습니다. 어떤 벽을 쌓아서 막은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차가 다닐 수 없도록 보호가 된 곳입니다. 안전지대에 하나님께서 고통 받는 자기의 자녀들을 두신 곳입니다. 당신의 자녀를 보호하시기 위해 ‘나 여호와가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것을 시인이 악인들에게 고통을 받으면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의 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편에 있고 그들을 깊이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입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전히 고통을 당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도움을 입지 못해서 그렇게 괴로움을 당합니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있는 중입니다. 고통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괴로움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신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올바르고 믿음으로 살아도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변화 시키십니다. 그래서 연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원수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악인들에 의해서 괴로움을 당해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를 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련한 자의 탄식과 고통 받는 자의 압제를 인해 반드시 일어나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건져주십니다. 우리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바뀌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깊은 세계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의 본거지가 되는 뿌리를 바꿔놓길 원하십니다.
시인은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미하기 때문에 마치 흙 도가니에 일곱 번이나 연단한 은과 같이 순결하도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왜 갑자기 고난을 이야기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집니까? 여기에서 모든 말씀을 가리키지만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계명으로서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반드시 축복해 주신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굉장히 무겁고 힘든 계명처럼 느껴짐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명이 참 진실하고 우리가 그렇게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안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송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순한 사랑으로 마음이 꽉 차면 확신이 생겨납니다. 성경이 아무리 우리에게 어려운 명령을 해도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이며, 그 말씀 따라 살면 나는 참 행복해질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시인은 그것을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은과 같이 순결하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은이나 금이나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으면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14K금이 싸고 18K금이 더 낫지만 그것도 싼 것입니다. 그런데 순금이 비쌉니다. 순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비싼 것은 순은입니다. 여러 번 용광로에 넣어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걸러낸 순도 99.99%의 순은은 매우 귀합니다. 그러한 순결한 은과 같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귀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지체가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환란과 시련이 많고, 교회에서 들려주는 말씀대로 살기는 너무너무 어렵고,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진리를 들기만 했을 때는 2/3쯤 믿었지만, 진리를 따라 실천해본 후에는 진짜 하나님의 말씀임이 자신에게 입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은 같아서” 너무나 귀하고,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을 충분히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납니까? 고난과 시련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계명을 꽉 붙듭니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말할 수 없는 사모함이 마음속에서 깊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이 나타납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꽉 붙드는 사람, 그의 계명을 순결한 은처럼 여기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찬송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모든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공장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꽉 차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게 됩니다. 마음에 헛된 꿈이 꽉 차있으면 가치도 없는 헛된 일에 골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꽉 채워서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이기면서 믿음으로 이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까지 보존하리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여호와께서 이 길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들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조금도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악인들이 날뛰고 하나님 편에 서있는 의로운 사람들이 여전히 악합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 상황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악한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지키실 것이다”라는 확신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확신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분을 의지하며 걸어갑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12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