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새벽예배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는니라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히 4:3-4)
녹취자: 윤은정
그 앞에서 이제 믿음으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던 것! 그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가나안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는 계속 분투하고 투쟁하면서 가시밭길 같은 그 길을 걸어왔고 그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면은 이제 정복을 위한 전쟁은 있지만은 끝나고 나면은 그 땅에서 평안하게 거하게 됩니다. 그것을 이제 안식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식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뭐냐하면은 육체적으로 이렇게 푹 쉬는 것입니다. 그것과 또 하나는 뭐냐하면은 마음에 평안을 누리면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쉬는 것입니다. 어때습니까? 아무 일 안하고 집에서 구들짱 집어 누워있어도 직장을 잃어버리고 자식들은 속을 썩이고 그리고 먹고 살 길은 막막하고 빚쟁이가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 있고 그러면은 그건 쉬는 게 아닙니다. 그렇죠? 그리고 좀 바쁘기는 합니다. 열심히 일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평안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러면은 어떻게 됩니까? 쉬는 것입니다. 그렇죠? 사실 이상적인 것은 그 두 개가 같이 결합되었을 때 그때 진정으로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쉼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두 가지 쉼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육체의 안식과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누리는 영원한 안식을 그 두 개가 합쳐진 아름다운 안식을 바라본 예표적인 안식이었다 이것입니다.
그런 예표적인 안식이었다라고 한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안식이 없습니다. 있었으면 사실 예수님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를 위해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정신적이고 영적인 온전한 안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다음에는 또 땅은 저주를 받아서 가시엉겅퀴를 내니까 고생을 많이 하고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수 있으니까 육체는 그렇게 해서 안식이 없고, 그 인간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안식은 전혀 이 땅에서는 못 맛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 하늘나라에 있는 온전한 안식을 가끔 맛을 보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그런 것 나옵니다. ‘즐겁게 안식할 날 이 날은 기쁜 날’ 그러고 무슨 가사가 나와요? ‘기쁜 하늘잔치에 맛을 보게 하소서.’ 그럽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결합된 것이 뭐냐하면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건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더 많이 하고 싶었던 일은 뭡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을 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아닌데... 난 그냥 직장에서 소처럼 일하는 게 교회 나오면서 긴 설교를 들으면서 그 기다리는 것보다 더 훨씬 좋은데...’. 그것은 자기가 망가졌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집을 나가서 그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가족이 그립고 부모가 그리운 게 그게 정상입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엄마도 생각 안 나고, 아빠도 생각 안하고, 가족도 보고 싶지 않고, 집에서 부를까봐 겁난다.‘ 그것은 가족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정상적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이 안됩니다. 왜? 하나님을 직접 하나님을 뵙고, 그리고 그 하나님만 찬송하고 그 하나님이 주는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그런 집중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주일입니다. 주일은 ‘땀을 흘려야 우리의 수고한데로 먹을 것이다. 땀을 흘려야 네가 식물을 먹고...’ 그런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육체가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거기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리고 주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솔직히 말해서 주일이 나머지 육일보다 덜 피곤하다 이렇게 말하기에는 좀 힘든 사람도 많습니다. 저.... 제가 특히 그렇습니다. 저녁때 되면은 입이 말라서 말이 안 나옵니다. 대충 따져 보면은 한 6시간정도 설교를 합니다. 8시간 정도 예배를 드리고 그러니까 주일이면 피곤이 확 밀려옵니다. 그 대신 뭐냐하면은 하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이 아이고 지겨워... 그 긴 시간동안 어떻게 노동을 해야 되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주일이 하나님을 만나는 그 행복한 날.’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혼이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개가 절묘히 결합된 것을 미리 앞당겨서 맛보는 것이 그것이 주일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일주일동안... 요즘은 주5일 근무다 어쩐다 그러지만은 옛날에 여러분 방직공장이나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한 달에 딱 하루 놉니다. 그러고는 12시간씩 맞교대로 하는데, 그것도 딱 12시간도 아닙니다. 보통 13시간, 14시간, 심지어는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하냐면은 새벽에 6시쯤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자고나서 저녁때 또 출근을 하는 것입니다. 한8시쯤. 그러니까 꼬박 12시간정도를 서서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퇴근을 하니까 낮에 시간을 줘도, 시간이 아닙니다. 왜? 이불 뒤집어쓰고 자고 일어나면은 3-4시인데, 그리고 부시시 일어나 세수하고 다시 또 공장을 가야하니까...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다니지는 않았지만은, 그렇게 노동하던 사람들에게 그 하루 휴일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이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보여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여주셨을까요?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쉬실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무슨 근력을 가진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십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피곤하셨습니까? 그거 아닙니다. 오히려 시편에서는 뭐라고 그럽니까?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우리들을 늘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오히려 노동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야기하는 쉼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나님께서 7일 동안 창조되어야 할 것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것을 하루를 집어넣으셔서 6일 동안 이루어진 창조가 7일로 완성이 되게 하시 것은 마지막 7일은 하나님이 당신의 성품을 따라서 창조하신 모든 세상이 찬란한 당신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하게 드러내신 것을 감상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루하루 창조하시면서도 하나님이 감상을 하셨지만, 마지막에 창조된 세계의 전체를 보시면서 하나님이 감상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의 휴식은 일로부터의 해방이라기 보다는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로부터 영광을 받으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서 인간에게 있어서 안식의 의미가 아주 명료해집니다. 그렇죠? 하나님에게 있어서 안식이 일로부터의 쉼이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로부터 드러나는 신성의 영광의 충만한 것을 즐거워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안식이 어떤 의미가 되겠습니까? 그렇죠. 하나님 한분을 인간이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함으로써 자기 안에 주신 신성의 영광을 하나님을 향해서 최대한 대로 드러내어서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고 그래서 행복해 하는 것! 그것이 ‘성도가 쉰다. 인간이 쉰다.’ 라는 의미라 이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인간이 무조건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확 퍼져버린 것을 쉰다고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아무런 쉼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노동이 해방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아무런 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떠한 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쉬게 하시려고 작정을 하셨다 이것입니다. 그 쉼을 죄로 말미암아서 인간이 모두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 율법 수여자인 모세! 그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안식을 누릴 기회를 주렸지만, 불순종 함으로서 그 안식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통해서 그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그 특권과 그 행복이 크고 놀라운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안식을 늘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매일매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랬듯이 우리도 매일매일 순간순간 안식해야 됩니다. 동시에 창조된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다시 한 번 그것을 감상하시면서 하루를 쉬셨듯이 또한 우리들이 주일에 그렇게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인생 전체가 확대하면 하루하루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그 안식이 영원한 그 안식이 바로 그 7일의 안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이라고 하는 이 말이 우리말로는 하나지만은 히랍어로 들어가면은 둘로 나뉩니다. ‘카타파워시스’라는 말과 ‘사파티스누스’라는 말로 나뉘는데 둘이, 하나는 육체의 쉼을 의미하고, 하나는 영적인 쉼,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말미암는 쉼을 의미합니다. 그 두 개가 하나에 결합된 완전한 쉼이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는 노동이 없느냐? 그러면은 있습니다. 거기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며 삽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 노동으로 말미암은 고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완전한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 안식을 누리며 사는 그러면서 더 완전한 안식을 기다리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