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새벽예배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자기 죄를 위하고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아멘 (히 7:26-27)
녹취자: 양현정
대제사장은 한명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위해 하나님 앞에 죄를 속하고 그리고 또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뵈옵는 일을 하는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도 죄가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속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자기도 죄가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먼저 자기의 죄를 제사를 통해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그리고 그 다음에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참 복잡합니다. 죄를 속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그 사람이 죄와는 무관하고 순전해야 하는데 인간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위한 제사를 먼저 드려서 죄속함을 받고 그 상태에서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대제사장이였지만은 예수님은 그런 연약한 인간대제사장들하고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이러한 숭고한 일을 위해서 봉사하고 수종들지만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자신도 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 용서를 필요로 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상관이 없고 순결하신 분이었고 악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할 만한 스스로를 위해 제사를 드려서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할만한 어떤 더러움과 불결 같은 것들이 예수님에게는 일체 없으셨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를 위한 그런 제사를 드리실 필요가 없었다는 그러한 예수님이 우리에게는 합당하다 합당하다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죄인의 형편에 맞는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면 어떻게 죄인의 형편에 맞느냐 죄인이 만약에 아까 이야기한 그런 인간대제사장의 도움을 받을 경우에는 계속해서 대제사장도 자기의 죄를 대신 드려야 하고 그가 드려지는 죄는 그런 연약한 인간이 짐승을 제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잠시 성공하는 것 같았으나 잠시 하나님과의 길을 여는 것 같았으나 그러나 그 제사 자체가 유한했기 때문에 또 다른 제사를 필요로 했지마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죄 없는 분이었기 때문에 이 비참한 인간에게는 합당한 것이 없다. 왜 한번에 자기 자신을 재물로 하나님 앞에 바쳐서 속죄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하는 효과를 갖는 그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이제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언제든지 주님이 그 나라를 받아주신다 구해주신다라는 분명하고 확실한 길을 열어주셨으니까 죄인에게는 그것이 합당하단 것입니다. 언제나 죄가 있는 인간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하는 그 인간들이 그 사람 대제사장의 불완전한 속죄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것은 합당하지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합당하지 않았다라는 것은 효과적이 아니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같은 제사를 드리며 또 용서받지 못한 죄를 위해 기도 드려야 하는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될 때에 그것은 인간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흠없는 분으로 오셔서 재물을 드리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고 동시에 제사를 드려주셨다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흠 없으신 그 성품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드리신 이 속죄의 희생이 영원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흠없는 재물이셔야 했습니다. 짐승을 죽여서 드린 제사가 죄 있는 사람이 수종을 든 그 제사가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길을 잠시 열어줄 수 있었다면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제사장이 되어서 흠없는 자신의 사람의 몸을 쪼개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그것이 영원한 속죄의 길을 연다고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제사장과 예수님의 대제사장인 것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으며 동물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동물의 피가 잠시 속죄의 길을 연다면 예수님의 피가 영원한 속죄의 길을 연다는 것은 그런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있었던 어느 제사장도 그런 제사를 드려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었으니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도 없고 악도 없고 흠도 없는 모습으로 이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순전하고 순결하신 분,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악과 더러움과 유한함도 없는 순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순전한 사람으로 이세상에 내려오셨고 그 순전한 흠없는 몸을 우리를 위한 재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가 있게 된 것입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항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손쉽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흠 없고 점도 없으신 예수님이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고 버리셨다는 사실을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고 버리셨다는 그 사실을 항상 가슴에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아버지와 은혜의 교제를 나눌 수 있을 때에는 항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찬송이 우리들 가슴에 메아리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예수그리스도께 우리의 많은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피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항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그 희생을 통해서 이른 구속의 핏길을 걸어서 살아계신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교제와 은혜를 누리는 것이 그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아버지와 의 관계가 불화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을 때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이 속죄의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런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송양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를 죄와 죄의 비참에서구속해 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불화하게 살수 있는가 생각하면서 다시 뉘우침과 참회속에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런 착한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