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새벽예배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히 3:15-16)
녹취자: 윤은정
모세와 예수님이 하여튼 어떤 식으로든지 비견이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을 얻은 많은 사람들은 모세가 애굽에서 이끌고 나온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견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광야에서 모세에 이끌려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불순종과 잘못을 보면서 또한 ‘예수님에 의해서 이끌려져 나온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떤 경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이끄시는 경륜은 달라졌습니다. 모세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을 때에는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끄셨고, 이제는 은혜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끄시니까 경륜은 각각 다르지만 사람은 같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죄인들입니다. 그쪽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죄인들이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아서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었던 커다란 죄가 뭐냐하면 하나님을 경노케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경노한다’라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불쾌나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어떤 분노가 분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때에 그랬다는 겁니까? 마음을 강퍅하게 할 때 그 때의 화가 분발하는 역사가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하게 화가 분발하는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너희도 그럴 수 있다. 그때처럼 그렇게 하지 마라. 그게 바로 너희를 위해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게 구약에서 나오는 인용된 성경구절입니다. 그래서 ‘강퍅하게 한다’라는 말은 뭐냐하면 히브리말로 ‘히트하자크’라는 말인데 ‘하자크’라는 말은 ‘강하다’, ‘묶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강하게 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이 강한 자를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약한 자를 좋아하신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약하고 강한 것이 결국은 두 가지가 있는데 좋은 의미에서 강하고 약할 수가 있고, 나쁜 의미에서 강하고 약할 수가 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강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결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그 일. 거기에 대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이 그 마음에 밀려와서 그렇게 순종하며 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들과 더불어 무단히 싸우면서 나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에는 강한 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강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강한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강해서 세상이 무엇인가 그 사람의 마음을 좀 바꿔 보려고 해도 녹녹하게 그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되어 있는 그런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또 세상에 대해서는 강하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매우 약합니다. 매우 약하니까 잘 휩니다. 잘 휘니까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에 잘 굴복하고, 정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잘 순응하고, 의지도 하나님의 의지에 잘 복종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는 강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주 약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강하고 약한 마음입니다.
반대는 그 거꾸로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당신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어도 ‘그건 하나님의 생각이시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 거기에 복종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뭔가 당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셔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러고 또 하나님께서 당신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셔도 그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슬려도 마음 안 아파하던 사람이 자기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면 하나님이라도 그 왕위에서 퇴위시키려고 하는 그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강해지게 되면은 세상에 대해서는 매우 약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약간의 실망을 주면 깊은 좌절에 빠지고 세상에 뭔가 좀 희망을 주면은 아주 부당한 기대를 갖고, 아주 세상을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이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하고 대신 제사를 드리고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어겼을 때에 그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이 거역하는 불순종을 영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뭐냐 하면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 얘기 하면서 ‘불순종 하는 것은 사실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거스르고 제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사실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결국은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는 그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이겁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다음절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누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느냐:? 애굽에서 구출되어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그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그랬습니까? 그거야 자기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틀리니까 자기의 고집과 생각대로 완고하게 행한 것인데,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해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열대 재앙을 보고, 정말 평생 잊혀지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에 참 신이시라고 하는 그 강력한 증거를 본 거 아닙니까? 그렇게 크고 놀라운 증거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이 오직 살아계신 유일한 신이시라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발견하고 거기에서 깊이 엎드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애굽을 등지고 사실 광야로 뛰쳐나온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듯이 동시에 또한 예수님에 의해서 은혜언약에 의해서 이끌려서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 신자로 나온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믿으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불순종하고 하나님반역하고 거역하고 하는 이 죄는 그 회심이 진실했느냐, 진실하지 않았느냐 그 문제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 안에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계획을 보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변화를 얻고 새롭게 된 모든 사람들도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할 인간이 될 수가 있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이것을 이야기하는 게 ‘너희 스스로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결국은 누가 강퍅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꾸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복종하려고 노력하지 않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래서 우리가 믿는 도리에 사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고 매일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루에도 인간의 마음이 여러번 바뀝니다. ‘불순종이고 뭐고 그냥 내 뜻대로 확 살아버려?’ 그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아니야 그럴 순 없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헤의 보좌에 나아가 우리의 강퍅함을 고하고 주님이 우리의 영혼을 향해 베푸신 그 은혜를 거두시지 말도록 그렇게 호소하는 그런 신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