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6일 교직원예배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7-10).
얼마 안 되는 신앙생활이지만 신앙생활을 하던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든 우리에게 가장 큰 그 위험이 있어요. 그 위험은 절망이에요 절망... 믿는 사람이 절망 할 수 있느냐? 물론 절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오래 전에 민수기 14장인가를 여러 주 동안 설교한 적이 있는데, 절망하는 마음이에요.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낙심하는 마음도 마찬가지거든요?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살다가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낙심할 때가 있고 또 사역을 하다가 보면 사역의 어려움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지 못 하는 자신의 한계, 이런 것들 때문에 또 내가 원하지 않는 질서들 때문에 낙심할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러한 낙심은 그러한 낙심은 잘 반응하기만 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쇄신되는 기회가 돼요. 솔직히 얘기해서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까? 나는 내 경험에 의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만만한 사람이 주님 의지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확신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깊이 의지할 수 있겠어요? 네? 설교에 있어서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준비된 설교를 앞에 놓고 엎드려서 상한 마음이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불가능합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자기 신뢰거든.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의존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시로 낙심하게 하시는 거죠. 그리고 그게 없으면 살아있는 경건일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잘못 다루어지고 또 낙심하는 일들이 오랫동안 경건의 능력으로 처리되지 않고 자신 속에 쌓이게 되면 이 낙심과 절망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굳어짐을 도입하게 됩니다. 도입하게 돼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내 얼핏 생각은 잘 안 나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 몸에 쌓이면 안 되는 그런 영양소나 약성분 같은 것 있잖아요 그죠? 그것들이 건강한 사람들은 섭취하고 활용해서 쏟아내고 섭취하고 쏟아내고 이렇게 하면서 되는 거죠. 비슷한 예가 소금 같은 거 아니에요? 그것 없으면 살 수 없잖아요? 신장이 나빠지게 되면 그걸 잘 걸러내지 못 하죠. 그러면 그것들이 쌓이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죠. 음식물이나 물 속에 있는 독소의 성분들이 걸러지지 못 하게 돼요. 그래서 결국은 걸러지지 못 해서 결국은 약이고 영양이 되는 성분들이 독소로 변하게 되는..그래서 온 몸에 이 독소에 감염이 되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근데 그 절망하는 마음은 아주 필연적으로 시기는 각각 틀리지만 밑바탕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반드시 깔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품게 되면 그가 어떤 행위를 하면서 살든지 간에 이 마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서서히 잠식되기 시작해요. 그래서 굳어진 마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한 마음이 경건의 능력으로 다루어지면 하나님을 향한 상한 심령, 깨어진 마음이 되어서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찾게끔 만들어 주지만, 만들어 줍니다.
요즘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다시 읽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참 그 브레이너드가 수시로 상한 마음이 돼요. 그리고 항상 그 상한 마음 때문에 숲 속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걸로 결론이 나죠. 그것은 바로 상한 마음이 가져다 주는 그 경건의 능력으로 다뤄질 때 가져다 주는 놀라운 효과에요. 그리고 그렇게 상한 마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거예요. 왜 그런지는 길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제가 생략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뤄지지 않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음이 굳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내포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경건의 능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이 욥이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은 순전한 사람이었잖아요. 그쵸? 그리고 늘 자녀들을 위해 발견되지 않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그러는 사람이었어요. 그 때에 욥 가까이에서 늘 욥을 돕고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할 때 늘 수발을 들고 기쁨으로 욥이 섬기는 하나님을 함께 섬기며 늘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아내였어요. 그 아내였어요. 그가 늘 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봉사했겠죠.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환란이 겹쳤어요. 큰 재앙이 내려 재산이 전부 불 타 없어지고 자녀들마저 죽임을 당했어요. 그리고 욥 자신마저 그 악창에 걸렸어요.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헌 데가 났어요. 가려움을 이기지 못 해서 깨어진 기왓장으로 자기 몸을 벅벅 긁으면서 이제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 때 그 아내가 깊이 절망하게 되었어요. 그런 절망 속에서 그 절망 속에서 아내가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하나님을 욕 하고 죽어 버려라”..이게 하도 민망하니까 성경에는 그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욕 하고’ 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욕 하고’라고 하는 단어가 원래 히브리말로 ‘칼날’이에요. 저주하다 라는 뜻이에요. 근데 이제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하도 민망하니까 이것을 바꿔서 정 반대로 바꿔서 ‘바라크’로 바꿨어요. 그게 이제 ‘축복’이란 뜻인데 직역을 하면 ‘하나님을 축복하고 죽어 버려라’ 그렇게 말했을 리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라..소망은 소망은 우리를 인도하는 천사와 같아서 데리고 가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어요. 그게 소망의 특성이에요. 소망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손 잡고 이끌어서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하는 목표가 있어요. 그러나 절망은 목표가 없어요. 절망의 마지막 목표는 하나님을 욕 하고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목표에요. 그게 목표가 될 수 있겠어요? 허무죠. 허무죠.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 못 하는 거죠. 그래서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사람들이 소망으로부터 끊어지도록 만들고 싶어해요. 그리고 절망하게 만드는 거죠. 절망하면 마지막에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지 성령은 우리에게 절망을 주시지 않으셔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동안에 모든 것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 때에도 깊이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살아왔으면서 마지막에 이 절망에 붙잡히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시험이 있을수록 우리의 가슴을 너무 믿지 말고 우리의 머리를 믿어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식들, 지금 제가 가르쳐 드리는 이런 진리들을 붙잡아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우리의 영혼에 큰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