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새벽예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일에 선하게 행하여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아멘 (히 13:18)
녹취자: 양현정
사도가 어떠한 형편에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은 어쨌든 물리적으로 이들과 떨어져 있고 마음속에 속히 이들을 만나고 싶은 정이 가득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쩌면은 사도가 투옥되거나 혹은 다른 물리적인 환경에 의해서 이제 이들과 떨어져 있게 되었고 마음속에는 이들을 만나고자 하는 뜨거운 사모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그들에게 가서 그들을 만나고 싶으니까 그렇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하는 것을 보아서 무엇인가 그 어떤 힘에 의해서 상황에 의해서 만날 수 없도록 반강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리고 또 깊이 변화되어서 그래서 그 목회자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이런 그 성도의 교제에 대한 깊은 갈망 그런 사모함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목회자를 그리워하고 목회자는 성도를 보고 싶어하는 그런 아름다운 교제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녀를 양육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 순종하고 부모 시키는대로 하면 참 효자입니다. 그리고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녀들이 그렇게 교육을 받으면 좋은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 부모와 자식간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요즘들은 가족들이 흩어져도 가족들을 별로 안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간에도 그 이상이 존재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고 싶어 하고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그런 것들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이 있어서 사랑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그리워하고 자식이 부모를 깊이 애착해하는 그런 그리움과 사모함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부모가 자식을 그리워하고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그러면서 사랑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도 이러한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잘 접대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라는 그런 알량한 어떤 기대나 교인들에게 친절하게 잘 해주면 자신이 목회하는데 협조를 해줄 것이라는 계산적인 생각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 받고 그래서 구도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왜 영적인 연합이 있으니까 함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면서 그러면서 하나가 되어서 그런 삶, 그렇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도가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교인들을 사랑하고 교회는 목회자를 존경하고 그리고 함께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이러한 진정한 행복 그것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 이제 중국에 단기 선교를 가는데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어차피 놀러가는 것이 아니고 전도하러 가는 것이니까 좀 많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그 교회 중직자들이 모여서 맨날 다투고 얼마 아닌 일 가지고 그렇게 마음상해하고 그런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이제 아내를 일찍 여읜 장로님 한 분이 그렇게 몇 년 동안 실의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였다 합니다. 목사님이 잘 다독여서 중국을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 명이 갔는데 떠날 때는 관광이나 하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락을 해서 중국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고 사는지를 보여달라고 그리고 오지로 오지로 보내서 그래서 거기에서 이제 선교현장을 보고 왔는데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복에 겨운 것입니다. 목자 잃은 양떼같이 그렇게 유리하고 600명 700명 심지어 1000명이 모여도 자기들을 돌보아줄 목회자가 없어서 주일이면 텔레비전 상자 올려 놓고 한국의 교회 목회자들의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정말 그 그런 곳에서 그렇게 보고 그 생활은 얼마나 열악하겠습니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한 번 보고 오니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많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못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가 보십시요. 가서 이렇게 보십시요. 아마 커다란 도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목양을 받으면서 말씀의 빛 가운데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또 하나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성경 여러곳에서 이러한 권면이 나옵니다. 골로새서에서도 에베소서에서도 여러 곳에서 사도바울의 서신서마다 심지어는 문제가 있는 교회의 편지를 쓰면서 문제가 있는 교인들을 다루면서도 오히려 기도에 있어서는 그 교인들에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벌써 한 7,8년 지났습니다만은 목자와 양 시리즈를 하면서 아마 이시대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와 함께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목회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교인들이 목회자를 의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사용하기 원하시지 교인들이 의지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하면 목회자를 붙들도록 계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매달릴 때에 그때에 그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쓰시는 목회자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목회자를 붙드셔서 내 영혼을 고치시고 그리고 일하셔서 나를 변화시키시고 나를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해주셔서 그런 일들을 목회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하는 그런 소망과 고백을 가지고 우리들이 매일매일 살아가야 하는 것입이다. 우리들의 하나님의 그런 큰사랑과 그런 은혜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보여주실 때에 그것을 우리의 영혼의 축복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많은 축복들은 일반적인 섭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지만 영혼의 축복은 영혼 위에 하나님이 실제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한 인상과 주님에 진리에 대한 생각과 각오들이 우리영혼에 깊이 아로새겨지게 만들어서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 순간마다 그렇게 영혼의 축복을 받고 그리고 그렇게 영혼에 아로새겨진 주님의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목회자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존경하고 목회자와 양떼들을 사랑하고 그러지만 결국 그들 가운데 높임을 받은 것은 목회자도 아니고 양떼도 아닌 우리 주님이셔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없어져버리게 되면 중세시대의 교회처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높이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신할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하려 함으로서 선한양심을 가진 줄 확신한다’ 그 악인은 범사에 행하는 악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에 쌓여있는 것이 악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편안한 시대에는 편안하게 살면서 어느 정도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악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핍박을 받는 다든지 선택을 강요받는다든지 결국은 우리 마음속게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일행과 함께 범사에 선을 행하려고 애를 썼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속 에 있는 선한 양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세 상에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들은 많은 죄를 짓게 되죠.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에 거리끼는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더 큰 담벼락을 만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냅니다. 양심의 기능은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송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에 거스르는 죄를 저지르면 양심에 의해서 발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이 우리를 받아주신다 하더라도 양심이 우리의 영혼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삶이 계속해서 고통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그래서 그 양심의 악들을 털어버려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목회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힘썼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를 잘하고 교인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교인들의 순종과 복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양떼들이 돕지 않으면은 사실 그 목양이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고 구석구석 그 영혼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그들에게 결코 섬김으로 구걸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섬김을 부탁하지 않습니다. 구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편에 서서 그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함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과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졌다고 확신을 할 때에 양심에 거리낀다는 악과 죄가 없다고 확신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하나님과 함께한다 그 인지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소망을 우리의 큰 목자 되신 예수님께 두고 하나님께 두고 얼마를 이세상에 살게 하시든지 간에 우리에게 주셨던 큰 선물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양들이 그리스도의 품에 와서 돌아가고 새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꿈꾸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되기를 깊이 힘쓰고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