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새벽예배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 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헤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 5:8-12)
녹취자: 이민희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며 살겠노라고 고백을 하던 이 시인이 시편5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악인들로 둘러싸인 가운데서는 어떻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시인은 자기를 둘러싼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이 주의 길을 시인 앞에서 곧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자기 앞에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곧게 해주십시오’.
이 뜻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우선 하나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주의 길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도를 말하는데 악한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번성하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안계시는구나 하나님의 법이 굽었구나 혹은 휘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되고 주님을 거스리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 못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말로만 듣던 하나님이 계시는것같다’ 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이 흥하고 의인이 계속 고난을 당하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물론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야 이것은 잠깐이고 악인은 뱀피와 같이 필시 마르고 의인은 번성할 것이라 하고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주님의 길이 하나님의 법칙 그대로 되게 해달라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는 데 그길이 주의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원수들에 의해 압제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그래도 믿음을 가지고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무릅쓰면 하나님뜻대로 살겠지만 많은 방해를 받겠지요. 유혹을 받거나 시련을 만나거나 원수들의 공격을 받는다던지 하면 시인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데 상당한 현실적인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길을 순종하며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주의 길을 곧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에 의해 많이 애워싸여서 고통을 받고, 그 원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죽 나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같고. 수많은 악한 말들을 토해내고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시인을 괴롭히기 위해 온 힘을 쏟고 하는 이러한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는 악한 원수들에게 애워싸여 있는데 그런 속에서도 이 시인은 주의 길을 곧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 흔들린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환경이 어려울 때 더욱 주의 길을 곧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그 길을 걸어갑니다.
(예화)
불길이 약할 때에는 물을 뿌리면 불이 꺼지지만 불길이 워낙 강할 때에는 물을 뿌리면 그 불은 더 맹렬히 타오릅니다. 특히 기름에 불이 붙었을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참으로 있는지 없는지를 하나님께서는 종종 물을 끼얹어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십니다.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야합하고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오히려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주의 길을 곧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희를 정죄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어떻게보면 이것은 사랑이 없는 기도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악한 사람들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땅에 하나님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에 대한 탄식입니다. 악을 행한 원수들에 대한 미움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 전체를 이런 식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저희를 정죄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원수들을 향한 미움이라기보다는 그들로 인해 가려진 하나님의 영광, 그들로 인해 훼손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간절한 갈망을 갖게 되면 이 땅에 공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부르짖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부르짖음입니다. 오늘 시인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성도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그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그 마음을 토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사실 그 사람에게는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만이 온전히 영광을 받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토로할 수 없고, 그렇게 하나님앞에 간절히 토로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님이 자기와 교통하시고,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악,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들을 정죄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고백하는데, 자신은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자가 이 죄와 슬픔이 많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 주님께 도망가는 것, 이것이 신자가 이 고통많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 피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원수들이 자기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힐 때 이 시인은 그것들과 싸우고 현실에서 그들을 변화시키려 애를 쓰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피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그 분의 위로와 도움심과 은혜를 앙망한다는 표현입니다. 현실을 개혁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한 모든 위로와 힘, 사랑과 자비를 주님께로부터 공급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내가 주님께 피합니다’ 그러면서 간절히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피하면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들로 애워 쌓이고 고통이 극에 달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 시인은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사림이 되기를 결심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이 시인의 고백에 비춰보십시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 분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지 못하는 지에 대해서 거꾸로 말합니다. 시인은 고난과 시련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피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고난과 시련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러한 때가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할 때 라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살아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도저히 자신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시련과 고난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주님을 사랑할 때이며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실패와 죄로 인해서 자신은 더 이상 희망이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을 나아가고 사랑할 때라고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