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새벽예배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 13: 44)
녹취자: 김용재
유대인들이 로마시대에 어디든지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의 일행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주님께 특별히 부름을 받았지만 그래서 도처에 어디든지 가서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전하는 그곳에 항상 흩어진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가깝게는 로마시대 때 이주한 사람들이고 멀게는 바벨론 시대 때에 흩어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그렇게 많이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와서 구약성경을 새롭게 해석한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회당을 사용해서 많이 복음을 전했는데 회당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런 회당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이루어지고 교육이 이루어지고 했었는데 여기에는 엄격하게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가르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은 광범위하게 그 회당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일행도 회당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는 신약성경이 없었을 때니까 구약성경을 전하지 않습니까. 똑같이 그들도 구약성경을 가지고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구약성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해석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에 경륜하셔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 얻게 하시고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이런 것들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들은 구약성경이 의미하는 올바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소위 얘기하는 유대교에 눈이 어두워져서 구약성경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뜻을 해석해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비롯한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옳게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 받은 사람들이 그러한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그리고 그 속에서 올바로 복음을 해석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고 이렇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도 보면 그렇게 은혜를 받고 변화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했더니 유대인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바울과 그 일행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반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반박이 사도바울의 변증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워낙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 때 사도바울이 그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말하기를 원래 이치로 치자면 먼저 유대인들인 너희에게 이 복음이 전해져야 하지만 너희들이 강퍅해서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이방의 빛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담대하게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축해버리고 담대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성령을 늘 접하고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예언을 날마다 접하는 그 많은 유대인들은 전혀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많은 이방사람들은 처음 듣는 복음인데도 그들이 그렇게 기뻐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온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다고 했으니까 큰 도시가 아니었겠지만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담대하게 말씀을 전했더니 유대인들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도시든지 간에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바로 여기에 모인 이방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얼마나 대조를 이룹니까. 구약성경에 대해서 친숙했던 사람들은 그 말씀이 선포되자 거절하고 오히려 성경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말씀이 선포되자 예수를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대조이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하고 있는 오늘 우리자신의 속에 있는 두 마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계속 그 말씀을 그리워하고 말씀을 섭취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으로부터 마음이 굳어져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고 은혜를 받는다면 그들이 얼마나 더 많이 변화되겠습니까. 사도바울이 바로 그 일의 증인 아닙니까. 원래 유대인 이었고 그도 역시 오늘 자신이 설교할 때 자신에게 반박하고 대드는 유대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굳게 생각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되었을 때 그 때 참 생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주님을 진실하게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일들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날마다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가며 주님을 의지하는 그런 성도의 삶을 우리들이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힘닿는 대로 이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이처럼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지푸라기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크신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