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새벽예배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19~22)
녹취자: 이새봄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결심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믿지 못하게 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결심도 참 대단합니다. 그래서 이고니온에서 핍박을 받아서 루스드라로까지 오게 되었는데 거기까지 이 유대인들이 추격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따라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깨닫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우리의 열심이 복음을 반대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의 열심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런 마음과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제 이렇게 추격한 사람들이 결국은 핍박하게 되는데 결국은 사도바울을 돌로 치게 됩니다. 돌로 친다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뭐냐하면, 신성모독한 사람들, 율법을 중대하게 범죄해서 정상참작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져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이렇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이미 당시 국권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의 법의 관할 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이 바울을 이렇게 자신들이 재판도 없이 사적인 감정으로 돌로 치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담대해졌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일에 이렇게 헌신하는 것을 보십시오. 굉장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을 돌로 쳤다, 라고 하는 소식이 로마에 들리고 만약에 고발을 했다면 이 사람들은 살인죄로 구속이 되고 형벌을 받을 위험이 있는 사람들인데도 그 일을 감행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그들이 종교적인 신념이 뛰어났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얼마나 사랑없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주 강력한 복음에 대한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고 그것들이 복음을 전도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언제나 이러한 박해, 이런 고난이 늘 있기 마련이고,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들이 매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때를 얻지 못하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는데, 자신이 몸소 실천하던 바를 그대로 아들같은 디모데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정황보다는 훨씬 나은 시대에 있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복음을 전해도 이렇게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무서운 핍박같은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소극적이고 안일한 지도 모릅니다. 원래 복음의 정신은 이처럼 큰 핍박과 고난을 이기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이것이 바로 복음 속에 있는 진정한 정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보면, 결국 핍박을 당해서 사도 바울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고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겁이 나니까 성 밖으로, 성 안에 내버려두면 수사의 대상이 될텐데 성밖으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더 놀라운 일들을 사도들이 하게 되었는데, 깨어나서 그 다음날 다시 성으로, 깨어나서 다시 성으로 들어가고 그그리고 하루를 보낸 다음에 다시 다른 곳으로 다니는데, 그 다른 곳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핍박을 받았던 동네들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교회를 방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유는 자신들을 이렇게 핍박했으니까 틀림없이 자신들로 인해서 복음을 듣고 믿게된 제자된 많은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박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이 받는 박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 이 지체들이 박해를 받아서 신앙을 버리면 어떻게 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제 그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방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영혼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사도바울 일행의 따뜻한 목양적인 마음들을 우리들이 읽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들 하나하나를 긍휼이 여기면서 그래서 붙들어 주고자 하는 목양적인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단지 복음만 전하고 휙 지나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것 그 자체가 영혼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주님을 믿게 만들었으면 믿은 주님을 끝까지 붙들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돌봐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정신과 목양자의 마음이 항상 같이 가야하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바로 그런 정신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돌아가서 그들을 믿음에 굳게 붙어있으라고 강권하게 됩니다. 결국은 그들이 영구히 예수 믿게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지체들의 곁에 남아있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을 주와 믿은 은혜, 말씀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부하면서 마음을 굳게하고 믿음을 굳게하라,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놀라운 은혜는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란도 많이 당하게 될텐데 그런 환란을 당할 때 두려워하고 미끄러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굳게 붙드는 성도들이 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점점더 점점더 이제 굳센 믿음 가운데 살도록 그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전도할 때 뿐만이 아니라 전도한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고 그래서 결국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그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려고 하는 이런 신앙의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