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새벽예배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행 14:23-8)
녹취자 : 양일구
I. 본문해설
오늘 본문말씀은 바울 일행의 안디옥 귀환입니다. 1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고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길에, 바울 일행은 각 성읍들을 재차 방문하여 위로와 격려를 주고 교회를 굳게 세웁니다.
A. 안디옥 교회를 굳게 세우는 바울 일행
우여곡절 끝에 핍박을 받으며 복음을 전한 바울 일행은 죽다시피 하다가 다시 살아나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고 계속 전해졌습니다. 사도들은 안디옥에서 곧 다른 곳으로 가야 될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이 떠나기 전에 했던 일이 오늘 날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일이 있으니까 그냥 떠나간 것이 아니라, 안디옥에서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고 그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 했습니다. 사도들이 가고 나면, 교회는 장로들이 돌볼 예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선교전략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빨리 교회를 세운 다음에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그 장로는 오늘 날 우리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장로들 보다는 오히려 목사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잘 다스리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그 교회를 이끌어가게 했습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던 때였습니다. 지역에다가 큰 교회를 세우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것이 아니라, 가정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별로 예배를 드리고, 한 지역 전체에 있는 많은 가정교회를 묶어서 그것을 교회로 부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라고 부르는 것의 개념은 에베소 지역에 있는 가정의 모임들이 모두 합쳐져서 에베소 교회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 지역 전체를 돌보는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목사나 장로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교사들도 있고, 다양하게 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를 주님의 몸으로 세워가게 되었습니다.
B. 교회를 향한 기도
그런 의미에서 장로들을 모아서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금식은 유용성이 있습니다. “밥을 굶어서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라는 개념보다는, 마음과 모든 영혼의 시선을 그 분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식이 가지고 있는 의의입니다. 금식을 하면서 날짜가 오래 되면, 실제로 많은 시간을 육체의 힘을 쏟아서 열렬하게 기도하는 것은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금식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마음과 모든 시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육체가 쇠약해지게 되면,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던 많은 정욕 같은 것들도 죽지는 않지만 함께 쇠퇴하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들이 영적인 것에 마음을 집중시키기에 아주 좋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모두 모아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그들을 위해서 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들을 부탁하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저들을 굳게 붙들어 주시도록 매달리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자“ 이것이 바울 일행이 갖고 있었던 생각이며 기도였습니다. 사도들이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돌봐주시도록 하는 간절한 간구가 되었고, 또한 이것은 사도들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며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모아놓고 부탁한 것과 같이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다시 말하면, 그들이 오랫동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는데, 그 가르친 복음의 말씀이 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가르친 사람은 떠나도 말씀은 살아서 계속 울려 퍼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그들이 그 말씀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도록 하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떠나도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그 사람의 마음에 울려 퍼져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가 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이 교회들에게 기대했던 바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도는 갔지만, 장로들이 남아서 계속 그 말씀을 가르치고, 교인들의 마음속에 은혜를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니까, 그렇게 살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 일행이 안디옥을 떠나며 세워진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C. 복음이 주는 기쁨
그리고 이제 자리를 옮겨 앗달리아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거기서 다시 교인들을 만납니다. 만나서 또 똑같이 주님의 은혜가 그들을 붙들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그 동안에 있었던 선교의 상황을 보고 합니다. 그 선교의 상황이 어떠했는가 하면,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그들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많은 역경을 넘기면서 고난을 받았지만 단순히 고생한 기록이 아니라, 그것은 고난 속에서 시련을 당하면서 많이 괴로움을 당했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전파했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자신들이 일했지만 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환경의 문을 여셔서 믿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각 사람의 마음을 여셔서 그들의 마음속에 믿음이 받아들여지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일행에게는 이것보다 큰 기쁨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교회의 교인들도 그 일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또 그 속에서도 복음 전도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의 한 형제가 되었다는 소식은, 다른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마지막으로 도착한 앗달리아에 있는 많은 교인들에게도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공동체는 선교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어린교회와 모든 성도들과 사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다시 이들이 하나님의 선교의 계획을 따라서 전도 여행을 떠날 준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러한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복음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소식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 일을 위해 함께 헌신하며 그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붙들려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매달리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때, 그것이 정말 복음의 가치를 안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 교회의 목적
“오래 머물러 있었다”
사도 바울 일행이 앗달리아 교회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앗달리아 교회에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연약한 교회들을 굳게 세우고 지도자들을 굳게 세워주기 위해서 두란노에 그러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오래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목회적인 기간을 갖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단순히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드는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은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세우고 교회를 굳게 하고 자신들이 사역지를 옮겨도 그 교인들이 교회에 세워진 장로나 감독들과 함께 교회를 온전하게 세워가기를 바랬던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들 역시 이 두 가지 일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참다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그들의 삶을 바로 잡아주며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할 때, 교회가 든든히 세워집니다. 그렇게 든든히 세워진 교회가 선교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이번 주간에도 많은 지체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데 여기저기서 소식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이루어지고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어 주고, 이 일들을 우리들이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든든히 세워졌기 때문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일을 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의 마음을 갖고 복음을 전해서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먼저 은혜 안에서 견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변화된 신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과 변화되지 않은 신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이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서 오래도록 머물렀던 것일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이렇게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갖고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고, 그래서 이제 복음을 위해서 많은 족속들에게 헌신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져가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