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새벽예배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행 15:1-3)
녹취자: 윤은정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어디에든지 아주 기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그것을 잘 안 믿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 믿는 것은 두 부류로 나뉘어 진다고 봅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아에 마음이 강팍해져서 복음 자체를 거절하는 사람들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복음을 순수하게 그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이렇게 변경시켜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변경시킬 순 없지만은 그 복음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들을 거기에 첨가해서 그렇게 옳지 않은 방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어디든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우리가 이제 이단이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단은 이제 둘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처음서부터 기독교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슬며시 기독교속으로 들어와서 기독교의 탈을 쓰는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기독교였던 사람들이 나중에 미끄러져서 잘못된 가르침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 다 각기 잘못된 경우인데, 이 시대에도 늘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유대인들이겠죠? 사람들이 뭘 가르쳤냐면은 문맥으로 볼 때에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한 것은 아닌데, 예수님만 믿는 것 가지고는 너희들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또 필요한게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율법을 지켜야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또 율법도 지켜야지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을 믿었지만은 그러나 진짜 복음으로서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지만은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우리들이 구원을 받겠느냐? 그러니까 우리들이 옛날에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율법을 잘 지키고 그러면, 율법을 잘 지켜서 사는 공로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공로와 합쳐져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쳐 주면은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은, 이제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유일성,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그리스도만으로 온전히 구원을 얻게 되는 이런 것들이 이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만으로 구원을 받아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된다고 하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공로로서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말하자면은 과소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은 그것은 진정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기독교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들어와서 가르치게 되니까 당연히 교회에서 이제 그렇게 가르치지 말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변론이 생겨난 것입니다. 자기네들은 그 가르침이 맞다. 또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도바울을 비롯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도리로 볼 때에 율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그러면서 커다란 변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커다란 변론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15장에서 소위 얘기하는 예루사렘은 공의회! 공의회라고 하는 것은 교회전체가 모여서 회의를 해서 그래서 거기에 뭔가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는 그런 것을 공의회라고 그러는데, 기독교 역사상 첫 번째 기독교 공의회가 열리는 말하자면은 계가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나 바나바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논리에 졌을리는 없는데, 이제 논리싸움이 일어나면서 커다란 변론이 일어나니까, 교회에서 그런 교리적인 변론들이 일어나게 되면은 변론이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집니다. 믿음이 견고하고 평소에 교리를 잘 배워서 그것을 체험하면서 든든하게 서있는 사람들이 아니면은 넘어집니다. 그래서 교리를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교리를 탄탄히 배워서 아주 굳건한 신앙이 될 때에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할 때에 그것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이런 말하자면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에 관한 복음지식을 소유하고 있어야 된단 말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거기에서 싸움을 접고 교회가 아주 지혜로운 결정을 내립니다. 뭐냐면, “우리의 복음이 사도들로부터 말미암았으니까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사도로서 우리에게 이 복음을 전해주었지만, 그렇다면은 우리가 원래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모두 보고 예수님을 보았던 그 사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그럼 거기서부터 최종적인 답을 짓자.” 이런 지혜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쓰여지지 않았으니까 구약성경에 대한 예수님이 내리셨던 새로운 해석을 따라서 이 문제를 판단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결국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일단락됩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와 및 형제 몇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보고 그리고 사도들의 답을 듣도록 하자.”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따라가게 됩니다.
교회에는 말하자면은 이러한 질서, 그리고 질서에 호소하는 지혜, 이런 것들이 이런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막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질서라고 하는 것이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주님을 믿고 살아갈 때에도 필요하지만은, 이런 어려움이 왔을 때 교회의 질서가 서 있으면은 그 질서 안에서 모든 것들을 잘못되어가는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질서안에 권위가 있고, 그 질서안에 말씀이 있고, 그 질서안에 성도들이 그 권위에 복종하는 신앙이 있을 때, 그때에 교회의 질서는 교회의 어지러움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때에, 어지러운 일을 만나게 되었을때에 놀랍게 그것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기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하고 그렇게 교회의 결정을 따라서 그래서 이제 사도바울과 바나바 일행들이 이제 예루사렘으로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마리아에 이르러서 사마리아를 거쳐서 유대를 거쳐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데, 가는 과정도 그냥 가지 아니하고, 교회가 있는 곳에 들러서 그래서 거기에서 형제들과 만나서 교제를 하며 이방인들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들이 주님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변화되는 그런 놀라운 역사들이 그들의 간증이 됩니다. 그때에 온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면서 그러면서 그 복음의 소중함과 그리고 이방인들과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우리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이렇게 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지지 않으면은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그런 때였으니까 그러니까 이 소식이 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커다란 기쁨과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선교를 보냈는데, 선교에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서, 선교의 열정이 있어서 교회들이 선교를 했는데, 자신들이 보낸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그 선교에 대해서 보고를 할 때에 듣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그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교회의 얼마나 커다란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 주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할 때에 교회가 다시 한번 그런 사명감에 굳게 붙잡히고, 또 주님께 감사하는 그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제 교회는 더더욱 더 사랑의 끈으로 하나로 굳게 뭉쳐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오는 성경이 우리에게 보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루살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똑같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는 똑같습니다. 은혜받은 교회가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한 교회는 자기들에게 임무를 주어서 복음을 전하게 한 그 교회와 하나의 연관을 이루면서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의지하며 그렇게 매일매일 살아가게 되는 그런 복된 삶을 우리들이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같이 기도하겠습니다.